융합(convergence)이라는 용어를 접한 것은 90년대 중반쯤이었던 것 같다. 1994년 미국 NAB(National Association of Broadcasters)에서 발행한 같은 제목의 보고서였다.
방송영역에서 만든 책자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전자 슈퍼하이웨이로의 전이'라는 부제처럼 주로 통신망 발전에 관한 것이었다. 정보고속도로와 같은 네트워크 융합이 방송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방송사업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 제언들을 담고 있다.
제시된 전략들은 지금은 너무나 상식이 되어버린 것들이다.채널이 아니라 콘텐츠, 상품이 아니라 다채널가치, 광고이외 수익원 다원화, 공급이 아닌 수요에 맞추는 전략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융합은 사업자의 비즈니스 전략에 따른 네트워크 융합에서 시작됨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이 시장과 소비자를 중시여기는 실용주의적 융합전략 때문에 1995년 통신법개정과 같은 법제도 융합을 빠른 시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의 디지털융합은 이전의 정보화추진전략과 같이 기술 추동적이었다. 이로 인해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른 초고속인터넷망, 이동통신망구축 등으로 대한민국을 일약 디지털 선도국가로 끌어올린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방송이든 통신이든 신규 서비스는 반드시 신규 네트워크에 기반해야 한다는 이상한 신화를 만든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최첨단 네트워크라 하더라도 통신사업자의 망은 통신사업만 할 수 있다.
만약 통신망을 통해 방송서비스를 하려고 하면 `통신사업자의 방송시장 장악의도'와 같은 험악한 구호가 등장하곤 하였다.이 같은 사회적 통념은 첨단 통신 네트워크에 기반한 방송통신융합 자체를 쉽지 않게 만들어 놓았다.
반면에 유선방송사업자의 통신서비스는 거의 아무런 제약없이 시장에 진입하였고, 이른바 TPS서비스로 케이블TV는 통신사업자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보면, TPS는 방송통신융합이 아니라 같은 망을 통해 방송과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리적 비즈니스 조합일 뿐이다.
TPS로 인해 유료방송 저가고착화, 방송서비스의 번들링화 등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케이블TV를 유료방송시장 절대 강자로 만든 일등공신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불공정한 룰은 통신사업자의 방송사업 진입의지를 크게 압박하게 된다. 별도의 법이라는 우회적 진입으로 완전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IPTV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같은 방송사업자이면서 양방향성이 부족한 지상파방송이나 위성방송에게서 발생했다. 이들 입장에서 본다면 양방향성을 가진 유선망이나 이동통신망과 결합된 비즈니스 전략을 추진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BBC의 캔버스(canvas)나 최근 갈등이 되고 있는 스카이라이프의 DCS는 어쩌면 방송ㆍ통신 네트워크를 융합한 불가피한 대응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낡은 아날로그식의 `특정 네트워크 혹은 전송수단의 특정 방송서비스'라는 원칙 아닌 원칙에 발목 잡혀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대다수 이해당사자들이 현행 방송법의 문제점과 디지털시대에 걸맞는 수평적 규제체계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법 제정이 얼마나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일인가는 지난 20년의 역사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더구나 최근 디지털기술발전 속도를 감안한다면, 1~2년만 지나도 그 기술이 휴지조각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법 제정작업과 함께 기능적이고 탄력적인 대응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통신사업자의 방송장악' `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운 콘텐츠로'와 같은 다분히 정치적인 구호들이 변함없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디지털융합시대가 오기나 할지도 의문이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방송영역에서 만든 책자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전자 슈퍼하이웨이로의 전이'라는 부제처럼 주로 통신망 발전에 관한 것이었다. 정보고속도로와 같은 네트워크 융합이 방송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방송사업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 제언들을 담고 있다.
제시된 전략들은 지금은 너무나 상식이 되어버린 것들이다.채널이 아니라 콘텐츠, 상품이 아니라 다채널가치, 광고이외 수익원 다원화, 공급이 아닌 수요에 맞추는 전략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융합은 사업자의 비즈니스 전략에 따른 네트워크 융합에서 시작됨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이 시장과 소비자를 중시여기는 실용주의적 융합전략 때문에 1995년 통신법개정과 같은 법제도 융합을 빠른 시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의 디지털융합은 이전의 정보화추진전략과 같이 기술 추동적이었다. 이로 인해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른 초고속인터넷망, 이동통신망구축 등으로 대한민국을 일약 디지털 선도국가로 끌어올린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방송이든 통신이든 신규 서비스는 반드시 신규 네트워크에 기반해야 한다는 이상한 신화를 만든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최첨단 네트워크라 하더라도 통신사업자의 망은 통신사업만 할 수 있다.
만약 통신망을 통해 방송서비스를 하려고 하면 `통신사업자의 방송시장 장악의도'와 같은 험악한 구호가 등장하곤 하였다.이 같은 사회적 통념은 첨단 통신 네트워크에 기반한 방송통신융합 자체를 쉽지 않게 만들어 놓았다.
반면에 유선방송사업자의 통신서비스는 거의 아무런 제약없이 시장에 진입하였고, 이른바 TPS서비스로 케이블TV는 통신사업자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보면, TPS는 방송통신융합이 아니라 같은 망을 통해 방송과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리적 비즈니스 조합일 뿐이다.
TPS로 인해 유료방송 저가고착화, 방송서비스의 번들링화 등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케이블TV를 유료방송시장 절대 강자로 만든 일등공신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불공정한 룰은 통신사업자의 방송사업 진입의지를 크게 압박하게 된다. 별도의 법이라는 우회적 진입으로 완전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IPTV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같은 방송사업자이면서 양방향성이 부족한 지상파방송이나 위성방송에게서 발생했다. 이들 입장에서 본다면 양방향성을 가진 유선망이나 이동통신망과 결합된 비즈니스 전략을 추진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BBC의 캔버스(canvas)나 최근 갈등이 되고 있는 스카이라이프의 DCS는 어쩌면 방송ㆍ통신 네트워크를 융합한 불가피한 대응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낡은 아날로그식의 `특정 네트워크 혹은 전송수단의 특정 방송서비스'라는 원칙 아닌 원칙에 발목 잡혀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대다수 이해당사자들이 현행 방송법의 문제점과 디지털시대에 걸맞는 수평적 규제체계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법 제정이 얼마나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일인가는 지난 20년의 역사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더구나 최근 디지털기술발전 속도를 감안한다면, 1~2년만 지나도 그 기술이 휴지조각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법 제정작업과 함께 기능적이고 탄력적인 대응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통신사업자의 방송장악' `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운 콘텐츠로'와 같은 다분히 정치적인 구호들이 변함없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디지털융합시대가 오기나 할지도 의문이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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