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정액냄새`와 비슷한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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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6-2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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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밤꽃 향기

흐드러지게 핀 밤꽃의 야릇한 향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화려한 모습과 달리 밤꽃의 비릿한 냄새는 묘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밤꽃의 냄새가 바로 남성의 정액 냄새를 닮았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밤꽃이 피면 부녀자들에게 바깥출입을 삼가도록 했고, 과부는 잠을 설친다는 이야기도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밤꽃이 실제로 풍기문란의 원인이라는 근거는 없다.

밤꽃의 비릿한 향기는 스퍼미딘과 스퍼민이라는 분자 때문이다. 라이신과 같은 아미노산이 분해되어 만들어지는 푸트레신과 카다베린이라는 분자도 관련이 있다. 스퍼미딘과 스퍼민은 메티오닌이라는 아미노산의 분해산물이 푸트레신과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밤꽃의 향기는 생물체를 살아 움직이도록 해주는 단백질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밤꽃 향기를 만들어내는 분자들의 이름이 흥미롭다. 스퍼미딘과 스퍼민은 `sperm'(정액)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푸트레신은 `putrefy'(부패)에서 유래됐고, 카다베린은 `cadaver'(사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스퍼미딘과 스퍼민은 사람의 정액에서 처음 발견됐고, 푸트레신과 카다베린은 썩은 살코기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뜻이다.

밤꽃의 향기 물질들은 모두 사슬형 탄화수소에 아민이라고 부르는 질소 작용기가 결합된 `폴리아민'이다. 아민과 폴리아민 분자들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경우가 많다. 밤꽃 향기 물질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푸트레신과 카다베린은 썩은 살코기의 고약한 냄새를 만들어낸다. 입 냄새와 세균성 질염(膣炎)의 냄새와도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밤꽃 향기 물질이 부패 과정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스퍼민은 다양한 생물체와 조직에서 발견된다. 일부 박테리아에서는 중요한 성장 호르몬 역할을 하고, 바이러스에서는 핵산의 나선구조를 안정화시켜 준다.

스퍼미딘의 생리적 역할은 더욱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남성의 성 기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산화질소(NO)의 합성효소를 억제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식물의 성장조절 효소 역할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밤꽃의 향기 물질들이 사람의 정액이나 소변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폴리아민은 화학적으로 염기성 물질이다. 물에 녹으면 수소 이온이 줄어들고, 수산화 이온이 늘어나도록 해준다는 뜻이다. 폴리아민이 강한 산성인 여성의 생식기 환경을 중화시켜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폴리아민이 정자에 들어있는 DNA의 손상을 막아주고, 정자가 수정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뜻이다. 더 복잡한 생리기능에 관여할 가능성도 있다.

밤꽃이 우리가 좋아하는 매력적이고 향기로운 향기 대신 왜 그렇게 고약한 냄새를 풍기게 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물론 우리에게 거부감을 주는 냄새가 더 좋은 밤 열매가 더 많이 열리도록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모든 곤충이 향기에 대해 우리와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살코기가 썩을 때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애써 찾아다니는 곤충도 있기 마련이다. 썩어 가는 살코기도 그런 곤충에게 영양분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릿한 밤꽃 향기가 사람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분명한 근거는 없다. 푸트레신, 카다베린, 스퍼미딘, 스퍼민과 같은 폴리아민이 직접 사람의 성욕을 증진시키거나 억제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정액의 냄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 폴리아민이 기억 속의 상상력을 자극함으로써 생리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는 있다는 뜻이다.

자연의 생태계는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싫어하거나 우리에게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내는 물질이라도 다른 생물에게는 구원의 영약(靈藥)이 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생물은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이덕환(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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