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수컷과 짝짓기 방해하는 번식 본능
동서고금을 통해 여성이 정절을 지키려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이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위협을 당한 여인이 목숨을 던져 정조를 지키거나, 남편이 죽은 후 수절하면서 평생 시부모를 모신 부녀자를 높이 기려 사후에 열녀문을 세워주기도 했다.
나아가 여성의 정절과 관련된 물리적 방법인 정조대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바로 중세 유럽 십자군전쟁 때 십자군 기사들이 원정기간 동안 자기 아내에게 정조대를 채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이 끝난 지 100년이 지나도록 정조대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15세기 초 콘라드 카이저의 `Bellifortis'라는 책에 묘사된 정조대 그림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곤충세계에서도 정조대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곤충 암컷은 수백에서 수천개에 이르는 많은 알을 갖고 있어 맘에 드는 여러 수컷과 짝짓기를 해 알을 낳는다.
수컷 한 개체와 짝짓기를 해 자신의 모든 알을 수정시켰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이 수컷이 유전적 결함을 갖고 있다면 태어나는 수정된 알도 유전적인 결함으로 생존경쟁에서 도태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암컷은 본능적으로 여러 수컷과 짝짓기하는 바람둥이가 된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은 본능이 있다. 따라서 치열한 짝짓기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재미있는 것은 자신과 짝짓기한 암컷이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못 하도록 짝짓기 후 암컷의 교미공을 막아버리고 수태낭(mating plug, copulating plug)을 만드는 것이다. 즉, 물리적인 방법인 소위 정조대를 씌우는 것이다.
수억년 전부터 애호랑나비, 모시나비, 사향제비나비, 일부 개미나 모기는 이런 행동을 해왔다. 아마 정조대를 만든 지구상 최초 생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시나비류가 대표적이다.
모시나비류는 히말라야산맥과 중앙아시아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동으로는 일본, 서로는 유럽대륙과 북아메리카 서부 로키산맥까지 넓게 분포한다. 대부분의 종은 흰 바탕색에 붉은색의 둥근 무늬가 있으며 속명(Parnassius)은 태양의 신 아폴로가 살았다고 알려진 그리스 수도 아테네 근처에 있는 파르나소스 산에서 유래됐다.
우리나라 남한지역에는 모시나비와 붉은점모시나비(보호종)가 서식하고 북한에는 이 2종과 왕붉은점모시나비, 황모시나비(북한천연기념물 제110호)가 분포한다. 모시나비류는 5∼6월에 1회 발생하는데 수컷은 짝짓기 후 암컷의 배 끝(생식기 부분)을 벌집과 비슷한 밀랍 같은 물질로 덮어 씌워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못 하도록 막는다. 그러나 씌워진 부분이 부실하거나 암컷이 날아다니면서 활동하다가 틈이 생기면 다른 수컷이 이 틈을 이용해 짝짓기를 하기도 한다. 수태낭이 없는 암컷은 짝짓기를 하지 않은 처녀인 셈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생물학적인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춘남녀, 즉 호모 사피엔스들이 여러 이유로 결혼을 꺼리거나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에 반해 자신의 분신을 영속적으로 퍼뜨리고 싶어하는 곤충들의 번식본능과 전략은 경이로운 것 같다.
안승락 박사(국립중앙과학관)
◇ 사진설명 : 모시나비의 수태낭. 배 아래쪽에 도끼날 모양으로 튀어나온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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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여성의 정절과 관련된 물리적 방법인 정조대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바로 중세 유럽 십자군전쟁 때 십자군 기사들이 원정기간 동안 자기 아내에게 정조대를 채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이 끝난 지 100년이 지나도록 정조대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15세기 초 콘라드 카이저의 `Bellifortis'라는 책에 묘사된 정조대 그림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곤충세계에서도 정조대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곤충 암컷은 수백에서 수천개에 이르는 많은 알을 갖고 있어 맘에 드는 여러 수컷과 짝짓기를 해 알을 낳는다.
수컷 한 개체와 짝짓기를 해 자신의 모든 알을 수정시켰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이 수컷이 유전적 결함을 갖고 있다면 태어나는 수정된 알도 유전적인 결함으로 생존경쟁에서 도태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암컷은 본능적으로 여러 수컷과 짝짓기하는 바람둥이가 된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은 본능이 있다. 따라서 치열한 짝짓기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재미있는 것은 자신과 짝짓기한 암컷이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못 하도록 짝짓기 후 암컷의 교미공을 막아버리고 수태낭(mating plug, copulating plug)을 만드는 것이다. 즉, 물리적인 방법인 소위 정조대를 씌우는 것이다.
수억년 전부터 애호랑나비, 모시나비, 사향제비나비, 일부 개미나 모기는 이런 행동을 해왔다. 아마 정조대를 만든 지구상 최초 생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시나비류가 대표적이다.
모시나비류는 히말라야산맥과 중앙아시아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동으로는 일본, 서로는 유럽대륙과 북아메리카 서부 로키산맥까지 넓게 분포한다. 대부분의 종은 흰 바탕색에 붉은색의 둥근 무늬가 있으며 속명(Parnassius)은 태양의 신 아폴로가 살았다고 알려진 그리스 수도 아테네 근처에 있는 파르나소스 산에서 유래됐다.
우리나라 남한지역에는 모시나비와 붉은점모시나비(보호종)가 서식하고 북한에는 이 2종과 왕붉은점모시나비, 황모시나비(북한천연기념물 제110호)가 분포한다. 모시나비류는 5∼6월에 1회 발생하는데 수컷은 짝짓기 후 암컷의 배 끝(생식기 부분)을 벌집과 비슷한 밀랍 같은 물질로 덮어 씌워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못 하도록 막는다. 그러나 씌워진 부분이 부실하거나 암컷이 날아다니면서 활동하다가 틈이 생기면 다른 수컷이 이 틈을 이용해 짝짓기를 하기도 한다. 수태낭이 없는 암컷은 짝짓기를 하지 않은 처녀인 셈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생물학적인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춘남녀, 즉 호모 사피엔스들이 여러 이유로 결혼을 꺼리거나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에 반해 자신의 분신을 영속적으로 퍼뜨리고 싶어하는 곤충들의 번식본능과 전략은 경이로운 것 같다.
안승락 박사(국립중앙과학관)
◇ 사진설명 : 모시나비의 수태낭. 배 아래쪽에 도끼날 모양으로 튀어나온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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