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상실
사무관들이 흔들린다
방송통신위원회 내부조직이 흔들리고 있다. 출범 석달, 공무원 조직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사무관급이 바라보는 방통위의 미래는 야박하게 말하자면 어둡다. IT산업을 통해 차세대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핵심부처라는 정보통신부 시절 자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통부가 해체되고 통신과 방송, 융합서비스를 아우르는 거대 행정기관인 방통위로 거듭났지만, 아직도 방통위의 정체성을 모르겠단다. 이곳에서 방통위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고 공무원 생활을 계속해야할 것인지 고민하는 사무관들이 늘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난 2월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정부부처 공무원들은 `2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많은 부처가 합쳐지고 나눠지고 일부는 해체되면서,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과 눈물나는 송별식을 가졌다. 한해를 보내면서 정든 사람들과 나누는 훈훈한 송년, 12월의 크리스마스가 아닌 2월 서러운 이별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에도 지난 2월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 옛 정통부는 내부 설문조사를 통해 새로 만들어지는 방통위에 남고 싶은 사람들을 파악하고 지식경제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로 이관되는 업무를 담당할 사람들을 선별했다.
방통위에 남겠다는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방통위의 미래를 생각했다. 방통위가 갖는 위상과 방송통신융합시대에서 융합산업을 만들어가고 활성화시키는 핵심 부처로서, 정통부에서 가졌던 자긍심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경부나 문화부로 떠나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감싸안고, 다시 방통위에서 만날 것을 다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세 달이 흘렀다. 2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광화문 방통위 청사를 떠났던 사람들이 방통위에 남았던 능력 있는 사무관급 인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특히 지경부로 자리를 옮겼던 일부 인사들은 지경부 내에 자리를 만들고, 오랫동안 정통부에서 호흡을 맞춰왔던 후배 사무관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세 달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방통위 사무관들이 이같은 러브콜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단다. 방통위 조직의 뼈대인 사무관급 인사들의 이같은 흔들림을,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조직에서 오는 생소함, 불안함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분위기가 많이 나쁘다.
그들의 불안감과 부정적인 미래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정치적 색채가 강한 조직으로 바뀌어버린 방통위에서 느끼는 문화적 이질감이 크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산업활성화와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이 가장 큰 미션이었던 옛 독임제 행정부처 정통부장관과는 달리,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산업 활성화 외에 이것저것 챙겨야할 게 너무 많아 심하게 바쁜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두고 있는 부분은 방송권력 찾기인 것 같다. 방송권력이 혹여 잘못된 방향으로 갈까봐, 잘못돼 있다고 생각하는 권력을 교체하려는 데 온 신경이 쏠려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작 방통위 조직을 챙기는데는 너무나 소홀하다. 방통위 내부에서 요즘 흘러나오는 탄식은 볼만하다. "정통부 시절, 돈 좀 되는 조직은 모두 지식경제부에 빼앗겼다.", "수년째 공들여 확보한 산하기관 부동산도 모두 남 좋은 일 시켰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천안의 공무원교육연수원에 방통위가 워크샵을 가고 싶어했는데, 예전 같으면 그냥 가면 될 것을 이번엔 거쳐야할 절차가 너무나 많았단다. 공무원교육연수원의 소유권이 정통부에서 지경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디 부동산뿐이던가. 정통부의 산하기관과 산업진흥예산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우정사업부문의 커뮤니케이션 철학을 간과하고, 금융산업쯤으로 치부해 지경부 산하로 편입하는 발상에 아무 이견도 제시하지 못하는 게 지금 방통위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욕심이 없는 것 같다.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 여전히 소유권이 애매한 부분이 많은 상황인데 발빠른 지경부, 행안부, 문화부는 옛 정통부의 주력 사업들을 알아서 챙겨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방통위의 사무관, 과장급 인사들은 열정이 식고, 생소한 합의제위원회 의사결정 문화에 혼란스러워 한다.
어떤 것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조직은 붕괴된다. 결국 홀로서야 하는 게 세상사라지만, 그래도 몸담고 있는 조직은 비빌 언덕이 되어줘야 한다. 방통위는 지금 비빌 언덕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조직의 뼈대 사무관들의 시각이다.
사무관들의 이같은 시각과 침체된 분위기를 바라보는 고위공무원단의 마음은 어떨까. 서글프단다. 최근 만난 방통위의 한 고위공무원단 인사는 "방통위가 제대로 위상을 갖고 자리를 잡으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면서 "과거 독임제 행정부처와 다른 점은 문화뿐만 아니라, 일하는 방식까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방통위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일이라며 열정적으로 들이대던 적극성도 요즘은 통 보기 힘들다.
조직의 활력은 일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나온다. 그것은 아직 정형화되지 않은 방통위 상임위원조직이 풀어 가야할 가장 큰 숙제이고 역할이다. 자신의 일이 국민을 위한 것이고 나아가 국가에 충성하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 공무원들에겐 생명 아니던가.
정보미디어부장 yklim@
사무관들이 흔들린다
방송통신위원회 내부조직이 흔들리고 있다. 출범 석달, 공무원 조직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사무관급이 바라보는 방통위의 미래는 야박하게 말하자면 어둡다. IT산업을 통해 차세대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핵심부처라는 정보통신부 시절 자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통부가 해체되고 통신과 방송, 융합서비스를 아우르는 거대 행정기관인 방통위로 거듭났지만, 아직도 방통위의 정체성을 모르겠단다. 이곳에서 방통위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고 공무원 생활을 계속해야할 것인지 고민하는 사무관들이 늘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난 2월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정부부처 공무원들은 `2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많은 부처가 합쳐지고 나눠지고 일부는 해체되면서,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과 눈물나는 송별식을 가졌다. 한해를 보내면서 정든 사람들과 나누는 훈훈한 송년, 12월의 크리스마스가 아닌 2월 서러운 이별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에도 지난 2월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 옛 정통부는 내부 설문조사를 통해 새로 만들어지는 방통위에 남고 싶은 사람들을 파악하고 지식경제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로 이관되는 업무를 담당할 사람들을 선별했다.
방통위에 남겠다는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방통위의 미래를 생각했다. 방통위가 갖는 위상과 방송통신융합시대에서 융합산업을 만들어가고 활성화시키는 핵심 부처로서, 정통부에서 가졌던 자긍심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경부나 문화부로 떠나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감싸안고, 다시 방통위에서 만날 것을 다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세 달이 흘렀다. 2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광화문 방통위 청사를 떠났던 사람들이 방통위에 남았던 능력 있는 사무관급 인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특히 지경부로 자리를 옮겼던 일부 인사들은 지경부 내에 자리를 만들고, 오랫동안 정통부에서 호흡을 맞춰왔던 후배 사무관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세 달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방통위 사무관들이 이같은 러브콜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단다. 방통위 조직의 뼈대인 사무관급 인사들의 이같은 흔들림을,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조직에서 오는 생소함, 불안함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분위기가 많이 나쁘다.
그들의 불안감과 부정적인 미래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정치적 색채가 강한 조직으로 바뀌어버린 방통위에서 느끼는 문화적 이질감이 크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산업활성화와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이 가장 큰 미션이었던 옛 독임제 행정부처 정통부장관과는 달리,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산업 활성화 외에 이것저것 챙겨야할 게 너무 많아 심하게 바쁜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두고 있는 부분은 방송권력 찾기인 것 같다. 방송권력이 혹여 잘못된 방향으로 갈까봐, 잘못돼 있다고 생각하는 권력을 교체하려는 데 온 신경이 쏠려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작 방통위 조직을 챙기는데는 너무나 소홀하다. 방통위 내부에서 요즘 흘러나오는 탄식은 볼만하다. "정통부 시절, 돈 좀 되는 조직은 모두 지식경제부에 빼앗겼다.", "수년째 공들여 확보한 산하기관 부동산도 모두 남 좋은 일 시켰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천안의 공무원교육연수원에 방통위가 워크샵을 가고 싶어했는데, 예전 같으면 그냥 가면 될 것을 이번엔 거쳐야할 절차가 너무나 많았단다. 공무원교육연수원의 소유권이 정통부에서 지경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디 부동산뿐이던가. 정통부의 산하기관과 산업진흥예산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우정사업부문의 커뮤니케이션 철학을 간과하고, 금융산업쯤으로 치부해 지경부 산하로 편입하는 발상에 아무 이견도 제시하지 못하는 게 지금 방통위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욕심이 없는 것 같다.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 여전히 소유권이 애매한 부분이 많은 상황인데 발빠른 지경부, 행안부, 문화부는 옛 정통부의 주력 사업들을 알아서 챙겨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방통위의 사무관, 과장급 인사들은 열정이 식고, 생소한 합의제위원회 의사결정 문화에 혼란스러워 한다.
어떤 것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조직은 붕괴된다. 결국 홀로서야 하는 게 세상사라지만, 그래도 몸담고 있는 조직은 비빌 언덕이 되어줘야 한다. 방통위는 지금 비빌 언덕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조직의 뼈대 사무관들의 시각이다.
사무관들의 이같은 시각과 침체된 분위기를 바라보는 고위공무원단의 마음은 어떨까. 서글프단다. 최근 만난 방통위의 한 고위공무원단 인사는 "방통위가 제대로 위상을 갖고 자리를 잡으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면서 "과거 독임제 행정부처와 다른 점은 문화뿐만 아니라, 일하는 방식까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방통위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일이라며 열정적으로 들이대던 적극성도 요즘은 통 보기 힘들다.
조직의 활력은 일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나온다. 그것은 아직 정형화되지 않은 방통위 상임위원조직이 풀어 가야할 가장 큰 숙제이고 역할이다. 자신의 일이 국민을 위한 것이고 나아가 국가에 충성하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 공무원들에겐 생명 아니던가.
정보미디어부장 ykl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