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식어버린 '자만'
시장은 용납하지 않는다
2005년 3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빗 2005 전시장. 당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이기태 사장은 모토로라 전시부스를 살펴보고 "예전의 모토로라가 아니다"라는 평을 던졌다. 이 사장은 그 해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모토로라의 약진을 예상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봤다. 글로벌 전시회에 발표되는 신제품은 그 회사가 수년동안 공들인 연구개발투자의 결과물이다. 모토로라는 2005년 그간의 부진을 말끔하게 씻고 레이저 모델을 통해 전 세계 탑2의 위치를 굳건히 했다. 과거 아날로그 시절의 명성을 회복한 화려한 부활과도 같았다.
하지만 방심과 자만은 냉엄한 글로벌 시장에선 일순간 몰락을 자초한다. 후속모델이 지속성을 갖지 못하면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 레이저 후속모델의 실패는 모토로라를 3위로 끌어내렸다. 시장조사기관인 로아(ROA)그룹은 모토로라의 몰락에 대해 "클래식(전통)에 집착하다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 `레이저`의 성공이 모토로라의 발목을 잡은 것"이라며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정상에 선 자, 열정이 식어버린 자만은 곧 추락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시장은 확인시켰다. 모토로라의 실패는 레이저의 성공에 안주하며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통해 소비자를 향하는 마음을 다잡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소비자가 무엇을 찾고, 어떤 감각을 원하는지.
휴대폰의 대명사로 자리한 스타택(StarTAC)과 그 디자인을 답습한 레이저, 두 브랜드는 모토로라의 것이자 휴대폰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이같은 고전에서 탈피하지 못하면서, 모토로라는 2007년 이후 휴대폰 시장의 최대 키워드인 `고객의 욕구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게 시장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비자들은 매 순간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데, 나오는 후속모델 모두가 레이저와 비슷한 `미투(Me, too) 제품이었다.
선택과 집중전략에서도 실패했다. 모토로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모바일 운영체제(OS)를 두루 섭렵하면서 막대한 R&D투자를 단행했으나 소비자는 알 리가 없었다.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만큼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니까. 로아그룹은 이에 대해 "소비자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하려고 했던 모토로라"라는 씁쓸한 분석을 내놨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약진배경은 뭘까. 냉혹한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의 부진, 그 틈새에서 얻은 반사이익인가. 두 회사는 노키아, 모토로라에 비해 R&D투자비용이 많은 것도 아니며, 그들처럼 휴대폰 및 정보통신 한 분야에만 올인 할 수 있는 경영구조도 아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약진 배경을 단순히 경쟁업체의 부진 속에서 나온 반사이익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의 처절한 노력이 눈물겹다.
2008년 1분기 전 세계에서 판매된 휴대폰은 모두 2억8230만대. 삼성전자는 4630만대를 판매해 전 분기 14.1%보다 2.3%포인트 점유율을 높이며 16.4%라는 사상 최고 점유율을 기록했다. LG전자는 1분기에 2440만대를 판매해 3위 모토로라와 차이를 300만대로 좁혔고, 소니에릭슨을 210만대 차이로 제치며 8.6%의 점유율로 4위에 올랐다.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은 각각 12.4%에서 9.7%, 9.4%에서 7.9%로 전 분기 대비 시장 점유율이 줄었다.
삼성과 LG전자의 약진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시장 전문가들은 두 회사가 지속적으로 추진한 사업부문 체질개선과 한국적 마케팅감각이 돋보인 적절한 제품믹스(MIX)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여기에 경쟁사의 부진, 환율 등 대외여건 변화는 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배경은 소비자의 욕구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한 노력, 많지 않은 투자비용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행한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주효한 때문이다.
2005년 하노버 세빗전시장에서 삼성전자 이기태사장과 LG전자 박문화사장은 모토로라의 회생을 예감하면서, 이미 레이저의 성공이후 시장인 2007년을 머릿속에 그렸을지 모른다. 레이저가 만든 슬림폴더 트렌드를 시장에서 무엇으로 뒤집을 것인가. 그 치열한 고민의 답이 2008년 시장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터치스크린과 고품격 디자인의 결합이었을까.
노키아의 성장정체,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의 부진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키아의 콘텐츠사업 전략은 데이터 수익 잠식을 우려하는 이동통신사들의 견제를 받으며 주춤거린다. 총체적 부진에 빠진 모토로라의 회생은 여전히 난망하다. 소니에릭슨도 통신사와 소비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 하는 듯 하다.
반면 삼성전자는 2분기에만 전략모델인 `소울'을 비롯해 프리미엄제품 등 30여종을 쏟아내며 상승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LG전자도 기존 제품이 호평 받고 있는 데다 `블랙라벨 3' 등 전략제품이 잇따르면서 점유율 10% 돌파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기억해야할 게 있다. 2005년 모토로라의 약진을 예상하며 2년 후 시장에 대비했던 당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CEO들처럼, 지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약진을 지켜보며 2년 후 시장을 고민하는 글로벌 휴대폰메이커 CEO가 있다는 사실을. 노키아, 삼성전자, 모토로라, LG전자, 소니에릭슨 등 휴대폰 빅5에 이어 애플, 구글 등 신흥강자들이 호시탐탐 시장 진출을 노리는 정글 속에서 식어버린 열정과 방심은 곧 죽음이다.
정보미디어부장 yklim@
시장은 용납하지 않는다
2005년 3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빗 2005 전시장. 당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이기태 사장은 모토로라 전시부스를 살펴보고 "예전의 모토로라가 아니다"라는 평을 던졌다. 이 사장은 그 해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모토로라의 약진을 예상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봤다. 글로벌 전시회에 발표되는 신제품은 그 회사가 수년동안 공들인 연구개발투자의 결과물이다. 모토로라는 2005년 그간의 부진을 말끔하게 씻고 레이저 모델을 통해 전 세계 탑2의 위치를 굳건히 했다. 과거 아날로그 시절의 명성을 회복한 화려한 부활과도 같았다.
하지만 방심과 자만은 냉엄한 글로벌 시장에선 일순간 몰락을 자초한다. 후속모델이 지속성을 갖지 못하면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 레이저 후속모델의 실패는 모토로라를 3위로 끌어내렸다. 시장조사기관인 로아(ROA)그룹은 모토로라의 몰락에 대해 "클래식(전통)에 집착하다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 `레이저`의 성공이 모토로라의 발목을 잡은 것"이라며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정상에 선 자, 열정이 식어버린 자만은 곧 추락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시장은 확인시켰다. 모토로라의 실패는 레이저의 성공에 안주하며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통해 소비자를 향하는 마음을 다잡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소비자가 무엇을 찾고, 어떤 감각을 원하는지.
휴대폰의 대명사로 자리한 스타택(StarTAC)과 그 디자인을 답습한 레이저, 두 브랜드는 모토로라의 것이자 휴대폰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이같은 고전에서 탈피하지 못하면서, 모토로라는 2007년 이후 휴대폰 시장의 최대 키워드인 `고객의 욕구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게 시장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비자들은 매 순간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데, 나오는 후속모델 모두가 레이저와 비슷한 `미투(Me, too) 제품이었다.
선택과 집중전략에서도 실패했다. 모토로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모바일 운영체제(OS)를 두루 섭렵하면서 막대한 R&D투자를 단행했으나 소비자는 알 리가 없었다.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만큼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니까. 로아그룹은 이에 대해 "소비자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하려고 했던 모토로라"라는 씁쓸한 분석을 내놨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약진배경은 뭘까. 냉혹한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의 부진, 그 틈새에서 얻은 반사이익인가. 두 회사는 노키아, 모토로라에 비해 R&D투자비용이 많은 것도 아니며, 그들처럼 휴대폰 및 정보통신 한 분야에만 올인 할 수 있는 경영구조도 아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약진 배경을 단순히 경쟁업체의 부진 속에서 나온 반사이익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의 처절한 노력이 눈물겹다.
2008년 1분기 전 세계에서 판매된 휴대폰은 모두 2억8230만대. 삼성전자는 4630만대를 판매해 전 분기 14.1%보다 2.3%포인트 점유율을 높이며 16.4%라는 사상 최고 점유율을 기록했다. LG전자는 1분기에 2440만대를 판매해 3위 모토로라와 차이를 300만대로 좁혔고, 소니에릭슨을 210만대 차이로 제치며 8.6%의 점유율로 4위에 올랐다.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은 각각 12.4%에서 9.7%, 9.4%에서 7.9%로 전 분기 대비 시장 점유율이 줄었다.
삼성과 LG전자의 약진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시장 전문가들은 두 회사가 지속적으로 추진한 사업부문 체질개선과 한국적 마케팅감각이 돋보인 적절한 제품믹스(MIX)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여기에 경쟁사의 부진, 환율 등 대외여건 변화는 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배경은 소비자의 욕구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한 노력, 많지 않은 투자비용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집행한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주효한 때문이다.
2005년 하노버 세빗전시장에서 삼성전자 이기태사장과 LG전자 박문화사장은 모토로라의 회생을 예감하면서, 이미 레이저의 성공이후 시장인 2007년을 머릿속에 그렸을지 모른다. 레이저가 만든 슬림폴더 트렌드를 시장에서 무엇으로 뒤집을 것인가. 그 치열한 고민의 답이 2008년 시장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터치스크린과 고품격 디자인의 결합이었을까.
노키아의 성장정체,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의 부진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키아의 콘텐츠사업 전략은 데이터 수익 잠식을 우려하는 이동통신사들의 견제를 받으며 주춤거린다. 총체적 부진에 빠진 모토로라의 회생은 여전히 난망하다. 소니에릭슨도 통신사와 소비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 하는 듯 하다.
반면 삼성전자는 2분기에만 전략모델인 `소울'을 비롯해 프리미엄제품 등 30여종을 쏟아내며 상승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LG전자도 기존 제품이 호평 받고 있는 데다 `블랙라벨 3' 등 전략제품이 잇따르면서 점유율 10% 돌파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기억해야할 게 있다. 2005년 모토로라의 약진을 예상하며 2년 후 시장에 대비했던 당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CEO들처럼, 지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약진을 지켜보며 2년 후 시장을 고민하는 글로벌 휴대폰메이커 CEO가 있다는 사실을. 노키아, 삼성전자, 모토로라, LG전자, 소니에릭슨 등 휴대폰 빅5에 이어 애플, 구글 등 신흥강자들이 호시탐탐 시장 진출을 노리는 정글 속에서 식어버린 열정과 방심은 곧 죽음이다.
정보미디어부장 ykl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