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2개월인데… 아직도 공사중?
윤기 나고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서는 적당히 뜸을 들여야한다. 너무 일찍 뚜껑을 열어 밥을 푸게되면 설익을 수 있고, 너무 시간을 끌면 탄다. 그래서 뜸은 늘 `적당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너무 뜸을 들이고 있다. 위원장과 상임위원장이 결정되면 본격적으로 뭔가 일을 시작할 것만 같더니, 이명박 정부 출범 두 달째인데도 어딘지 아직 발동이 걸리지 않는 모양새다. 조직구성도 늦어졌다. 상임위원 임명까지 한 달이 걸렸고 각종 정책들을 모아 큰 그림을 만들고 최종안을 마련해야할 실국장급 인사, 고위공무원단 인사까지는 두 달의 시간도 부족한 모양이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시장이 필요로 하는 실무적인 정책을 완성하는 데 걸림돌이 많다. 조직구성이 늦춰지면서 괜히 좋지 않은 소문도 흘러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월29일 방통위 설치법 발효에 따라 출범했다. 출범까지 겪은 진통이 적지 않았는데, 출범 이후에도 움직임이 굼뜨다. 최시중 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결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해 대통령 임명까지 한참이 미뤄졌고, 결국 방통위 출범 한 달 만인 3월 27일에야 위원장과 상임위원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상임위원이 결정되면 목말라하던 방송 통신 융합정책들이 탄력을 받으며 속속 진행될 것처럼 보였으나, 이 역시 섣부른 기대였다.
방통위 주요조직을 이끌 실국장들을 결정하는 고위공무원단 인사, 각 실국 아래서 실무를 담당하는 팀장과장급 인사를 비롯해 민간인 신분의 방송위원회 출신 인사들의 공무원 신분전환문제도 난제였다. 4월 8일, 힘겹게 과장 팀장급 인사가 났다. 이어 방송위 직원들의 공무원 신분전환도 속속 이뤄졌다.
하지만 금방 이뤄질 것 같았던 고위공무원단 인사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다. 이미 실국장 및 고위공무원단으로 내정된 인사들은 방통위로 출근은 하고 있지만, 공식 인사가 나오지 않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있다. 상임위원 회의에 안건으로 상정되기 전 마지막으로 거쳐야할 실국장 사인이 없으니, 각종 정책도 탄력을 받지 못한다.
문제는 조직세팅의 지연만이 아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를 모델로 삼았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처음 시도되는 `합의제 행정기관' 구조를 띠다보니 정체성도 아직 모호하다. 특히 최고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하는 상임위원회의 기능은 더욱 혼란스럽다. 위원장을 포함해 5인의 상임위원의 역할은 무엇인지, 방통위의 정책 모두를 심의해 표결로 처리하는 것인지, 각 상임위원들의 전문적인 영역이나 특수한 역할은 있는지. 방통위가 최근 마련해 공개한 상임위원 `회의 규칙'도 그야말로 `회의의 규칙'만을 담고 있을 뿐, 그 어느 곳에도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역할이나 기능 혹은 철학은 없다.
진흥정책과 규제정책을 동시에 가져가야 할 방통위로선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사실 다른 행정부처처럼 독임제라면, 실무 과장이나 팀장이 입안한 정책을 실본부국장이 사인하고, 이를 장관이 결재하면 되는 구조다. 그리고 이런 정책은 대부분 산업활성화를 위한 진흥정책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대표적 규제산업인 방송과 통신을 모두 아우르는 행정부처다. 새로운 서비스를 인허가하고 산업활성화를 위해 경쟁을 만드는 진흥정책을 펴야한다. 나아가 잘못된 경쟁을 바로잡기 위한 규제도 병행한다. 규제와 진흥을 모두 갖고 있는 행정부처, 하지만 장관 1인이 최종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 상임위원 5인이 합의를 통해서 혹은 표대결로 정책을 결정하는 구조다. 그래서 상임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상임위원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방통위에선 작은 사건이 있었다. 한 상임위원이 방통위 현안파악을 위해 실무과장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다. 실국장급의 인사가 공식적으로 나지 않은 상황인지라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데, 일각에서는 특정 상임위원이 방통위 내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하는 모양이다. 쿨(Cool)하게 보면 해프닝일 수 있으나, 심각하게 생각하면 현재 방통위의 치밀하지 못한 시스템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특히 방통 위원장은 과거 장관과 같은 행보를 보이며, 마치 독임제 행정부처의 장관 모양새를 갖추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런 위상 역시 합의제 행정기관에서 대표성을 갖는 위원장의 행보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조직의 대표성은 위원장이 갖고 있으나, 위원장은 독임제 행정기관의 장관처럼 주요 정책에 관한 결정권을 독단적으로 갖지 못한다. 따라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대표성과, 정책을 결정하는 결정권자의 신분은 분명하게 구별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이점에서 상임위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조직 대표성은 위원장이 갖지만, 정책결정에 있어서는 각 상임위원들이 위원장에 못지 않은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상임위원들은 행정라인과 더욱 철저하고 긴밀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다. 시장상황과 실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산업분야인 방송통신, 융합서비스를 관장하는 방송통신위원회를 독임제 행정기관이 아닌 합의제 위원회 구조로 만들고, 여기에 위원장을 포함해 5인의 상임위원을 둔 취지는 뭔가.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 아닌, 그림 속 주인공이 된 방통위 사람들이 내 놔야한다.
정보미디어부장 yklim@
윤기 나고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서는 적당히 뜸을 들여야한다. 너무 일찍 뚜껑을 열어 밥을 푸게되면 설익을 수 있고, 너무 시간을 끌면 탄다. 그래서 뜸은 늘 `적당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너무 뜸을 들이고 있다. 위원장과 상임위원장이 결정되면 본격적으로 뭔가 일을 시작할 것만 같더니, 이명박 정부 출범 두 달째인데도 어딘지 아직 발동이 걸리지 않는 모양새다. 조직구성도 늦어졌다. 상임위원 임명까지 한 달이 걸렸고 각종 정책들을 모아 큰 그림을 만들고 최종안을 마련해야할 실국장급 인사, 고위공무원단 인사까지는 두 달의 시간도 부족한 모양이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시장이 필요로 하는 실무적인 정책을 완성하는 데 걸림돌이 많다. 조직구성이 늦춰지면서 괜히 좋지 않은 소문도 흘러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월29일 방통위 설치법 발효에 따라 출범했다. 출범까지 겪은 진통이 적지 않았는데, 출범 이후에도 움직임이 굼뜨다. 최시중 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결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해 대통령 임명까지 한참이 미뤄졌고, 결국 방통위 출범 한 달 만인 3월 27일에야 위원장과 상임위원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상임위원이 결정되면 목말라하던 방송 통신 융합정책들이 탄력을 받으며 속속 진행될 것처럼 보였으나, 이 역시 섣부른 기대였다.
방통위 주요조직을 이끌 실국장들을 결정하는 고위공무원단 인사, 각 실국 아래서 실무를 담당하는 팀장과장급 인사를 비롯해 민간인 신분의 방송위원회 출신 인사들의 공무원 신분전환문제도 난제였다. 4월 8일, 힘겹게 과장 팀장급 인사가 났다. 이어 방송위 직원들의 공무원 신분전환도 속속 이뤄졌다.
하지만 금방 이뤄질 것 같았던 고위공무원단 인사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다. 이미 실국장 및 고위공무원단으로 내정된 인사들은 방통위로 출근은 하고 있지만, 공식 인사가 나오지 않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있다. 상임위원 회의에 안건으로 상정되기 전 마지막으로 거쳐야할 실국장 사인이 없으니, 각종 정책도 탄력을 받지 못한다.
문제는 조직세팅의 지연만이 아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를 모델로 삼았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처음 시도되는 `합의제 행정기관' 구조를 띠다보니 정체성도 아직 모호하다. 특히 최고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하는 상임위원회의 기능은 더욱 혼란스럽다. 위원장을 포함해 5인의 상임위원의 역할은 무엇인지, 방통위의 정책 모두를 심의해 표결로 처리하는 것인지, 각 상임위원들의 전문적인 영역이나 특수한 역할은 있는지. 방통위가 최근 마련해 공개한 상임위원 `회의 규칙'도 그야말로 `회의의 규칙'만을 담고 있을 뿐, 그 어느 곳에도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역할이나 기능 혹은 철학은 없다.
진흥정책과 규제정책을 동시에 가져가야 할 방통위로선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사실 다른 행정부처처럼 독임제라면, 실무 과장이나 팀장이 입안한 정책을 실본부국장이 사인하고, 이를 장관이 결재하면 되는 구조다. 그리고 이런 정책은 대부분 산업활성화를 위한 진흥정책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대표적 규제산업인 방송과 통신을 모두 아우르는 행정부처다. 새로운 서비스를 인허가하고 산업활성화를 위해 경쟁을 만드는 진흥정책을 펴야한다. 나아가 잘못된 경쟁을 바로잡기 위한 규제도 병행한다. 규제와 진흥을 모두 갖고 있는 행정부처, 하지만 장관 1인이 최종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 상임위원 5인이 합의를 통해서 혹은 표대결로 정책을 결정하는 구조다. 그래서 상임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상임위원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방통위에선 작은 사건이 있었다. 한 상임위원이 방통위 현안파악을 위해 실무과장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다. 실국장급의 인사가 공식적으로 나지 않은 상황인지라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데, 일각에서는 특정 상임위원이 방통위 내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하는 모양이다. 쿨(Cool)하게 보면 해프닝일 수 있으나, 심각하게 생각하면 현재 방통위의 치밀하지 못한 시스템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특히 방통 위원장은 과거 장관과 같은 행보를 보이며, 마치 독임제 행정부처의 장관 모양새를 갖추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런 위상 역시 합의제 행정기관에서 대표성을 갖는 위원장의 행보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조직의 대표성은 위원장이 갖고 있으나, 위원장은 독임제 행정기관의 장관처럼 주요 정책에 관한 결정권을 독단적으로 갖지 못한다. 따라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대표성과, 정책을 결정하는 결정권자의 신분은 분명하게 구별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이점에서 상임위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조직 대표성은 위원장이 갖지만, 정책결정에 있어서는 각 상임위원들이 위원장에 못지 않은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상임위원들은 행정라인과 더욱 철저하고 긴밀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다. 시장상황과 실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산업분야인 방송통신, 융합서비스를 관장하는 방송통신위원회를 독임제 행정기관이 아닌 합의제 위원회 구조로 만들고, 여기에 위원장을 포함해 5인의 상임위원을 둔 취지는 뭔가.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 아닌, 그림 속 주인공이 된 방통위 사람들이 내 놔야한다.
정보미디어부장 ykl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