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은 높고 생존의 길은 너무도 멀다
1994년 케이블TV 사업자선정 당시 시장은 프로그램 공급업체인 PP에 주목했다. 독자적인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갖는 것, 케이블TV 사업에 있어 가장 노른자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방송사업자(SO)나 네트워크사업자(NO)에게는 상대적으로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같은 관념은 오랜 시간 지상파 무료방송에 익숙한 사고에서 나온 것이었다.
돈을 내고 보는 유료방송 시장에서는 가입자 기반을 가진 자, 즉 SO의 파워가 그 어느 집단보다 강력했다. PP는 SO의 지배력에 몸을 맡기고 있는 형편이다. SO가 채널을 선택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PP의 콘텐츠도 전파를 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방송통신산업에 있어 우리는 그간 물리적 인프라구축에 투자역량을 집중했고, 네트워크 설비경쟁은 산업에서 늘 앞부분을 차지했다. 전국을 커버하는 네트워크 투자에 수조원이 투입되고, `네트워크의 진화`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사업자가 양산되면서 새로운 네트워크는 금새 또 다시 생겨났다. 설비투자 경쟁 속에, 정부는 투자를 유도해 산업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2008년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네트워크는 좁은 땅덩어리에 비해 필요이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구리선으로 시작된 유선통신망은 초고속인터넷 시장경쟁에 힘입어 xDSL(디지털가입자회선), HFC(광동축혼합망), FTTH(광가입자망)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는 방송통신융합 시대의 핵심 네트워크가 되고 있다. 무선통신망은 아날로그 AMPS망에서 출발해 cdma2000-1x EVDO, 3세대 비동기식에서 WCDMA/HSDPA망과 동기식에서 리비전A망이 있다. 여기에 초고속 무선데이터망으로 출발, 4G에 가장 근접해 있는 와이브로망까지.
방송 네트워크도 만만찮다. 지상파 중심시장에 케이블TV가 등장하면서 전국적으로 케이블TV망이 구축됐고 위성방송, 위성DMB, 지상파DMB 등 새로운 미디어들이 잇따라 상용화됐다. 이제 IP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방송서비스 IPTV까지 나온다.
참 넓고 다양한 길이다.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그에 못잖은 국도까지 천지가 길이다. 여기에 각각의 길은 기술발전에 힘입어 더욱 강력해졌다. 한정된 주파수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압축기술의 발전에 따라 콘텐츠를 더욱 슬림화 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실어 나를 수 있게됐다. 그러니 천지가 길이라는 얘기가, 네트워크가 너무 많다는 얘기가 실감난다.
이제 방송 및 통신네트워크는 각각 고유의 서비스에서 벗어나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진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럼 그 길 위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네트워크와 플랫폼은 천지인데, 그 안에 담길 콘텐츠가 빈약하다. 이처럼 콘텐츠가 차별화 되지 못한다면 넓고 다양한 길은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콘텐츠가 서서히 힘을 얻고 있다. 네트워크와 플랫폼이 소비자 입장에서 다르게 다가오지 못한다면, 차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차별점은 콘텐츠다.
하지만 네트워크와 플랫폼의 홍수시대에 콘텐츠 산업이 중요하다는 거룩한 주장이 여기저기서 돌출하고 있으나, 피부로 와 닿는 활성화대책은 부족하다. 특히 케이블방송계에서 "피말리고 피멍드는 게 PP"라는 PP업계 한 관계자의 표현은 현재 PP업계의 현실을 극명하게 반영한다. PP는 왜 스스로를 피말리고 피멍드는 존재라고 하는가.
케이블TV 방송에서 보급형으로 편성되는 기본채널은 SO마다 다르긴 하지만 통상 50여개. 이 안에는 지상파 4개 채널, 홈쇼핑 5개, 보도채널 2개, 국회방송 등 공공채널 3개, 종교채널 3개를 비롯해 공익채널로 분류되는 일자리방송 등 6개 등이 기본채널에 반드시 편성된다. 따라서 기본형 50여개 자리 가운데 절반 가량이 사실상 고정석이다.
기본형에 편성돼야 케이블TV 가입세대인 1400만 세대에 뿌려져, 그나마 돈 되는 광고를 붙일 수 있다. 그래서 나머지 절반의 자리를 놓고 PP들은 `피'튀기는 전쟁을 벌인다. 4월 현재 PP로 등록된 채널수는 180여개. PP들이 피를 말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멍은 왜 들까. 1400만 가구에 뿌려지기 위한 경쟁이 이렇게 치열하다보니, 제대로 대접받고 들어가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유명 영화채널이나 지상파계열의 드라마 및 오락채널이 아니고선 20여개 남짓한 기본채널을 파고들기 쉽지 않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복수의 채널사업자(MPP) 한 두 곳을 제외하면 이익 내는 게 구조적으로 어렵다. 틈을 비집고 들어가도 이래저래 이익내기는 어렵고, 결국 멍만 든다.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체제작 얘기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 정작 자체제작은 지상파보다 제작비가 더 든다고 한다. 광범위한 시청자층을 가진 지상파는 제작비를 깎을 수 있지만, 케이블은 처음부터 그런 딜(Deal)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체제작이 많은 채널을 기본편성에 우선 배정하고, 좋은 번호를 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장은 한정돼 있다. 소비자가 돈을 더 지불하지 않는 이상, 유료시장의 파이는 제한적이다. 결국 피멍들고 있는 PP, 방송콘텐츠업계가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것은 이익을 나누는 지혜와 함께 PP들의 창작열정을 북돋우는 현실적 정책이 급선무다.
정보미디어부장 yklim@
1994년 케이블TV 사업자선정 당시 시장은 프로그램 공급업체인 PP에 주목했다. 독자적인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갖는 것, 케이블TV 사업에 있어 가장 노른자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방송사업자(SO)나 네트워크사업자(NO)에게는 상대적으로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같은 관념은 오랜 시간 지상파 무료방송에 익숙한 사고에서 나온 것이었다.
돈을 내고 보는 유료방송 시장에서는 가입자 기반을 가진 자, 즉 SO의 파워가 그 어느 집단보다 강력했다. PP는 SO의 지배력에 몸을 맡기고 있는 형편이다. SO가 채널을 선택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PP의 콘텐츠도 전파를 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방송통신산업에 있어 우리는 그간 물리적 인프라구축에 투자역량을 집중했고, 네트워크 설비경쟁은 산업에서 늘 앞부분을 차지했다. 전국을 커버하는 네트워크 투자에 수조원이 투입되고, `네트워크의 진화`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사업자가 양산되면서 새로운 네트워크는 금새 또 다시 생겨났다. 설비투자 경쟁 속에, 정부는 투자를 유도해 산업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2008년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네트워크는 좁은 땅덩어리에 비해 필요이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구리선으로 시작된 유선통신망은 초고속인터넷 시장경쟁에 힘입어 xDSL(디지털가입자회선), HFC(광동축혼합망), FTTH(광가입자망)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는 방송통신융합 시대의 핵심 네트워크가 되고 있다. 무선통신망은 아날로그 AMPS망에서 출발해 cdma2000-1x EVDO, 3세대 비동기식에서 WCDMA/HSDPA망과 동기식에서 리비전A망이 있다. 여기에 초고속 무선데이터망으로 출발, 4G에 가장 근접해 있는 와이브로망까지.
방송 네트워크도 만만찮다. 지상파 중심시장에 케이블TV가 등장하면서 전국적으로 케이블TV망이 구축됐고 위성방송, 위성DMB, 지상파DMB 등 새로운 미디어들이 잇따라 상용화됐다. 이제 IP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방송서비스 IPTV까지 나온다.
참 넓고 다양한 길이다.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그에 못잖은 국도까지 천지가 길이다. 여기에 각각의 길은 기술발전에 힘입어 더욱 강력해졌다. 한정된 주파수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압축기술의 발전에 따라 콘텐츠를 더욱 슬림화 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실어 나를 수 있게됐다. 그러니 천지가 길이라는 얘기가, 네트워크가 너무 많다는 얘기가 실감난다.
이제 방송 및 통신네트워크는 각각 고유의 서비스에서 벗어나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진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럼 그 길 위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네트워크와 플랫폼은 천지인데, 그 안에 담길 콘텐츠가 빈약하다. 이처럼 콘텐츠가 차별화 되지 못한다면 넓고 다양한 길은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콘텐츠가 서서히 힘을 얻고 있다. 네트워크와 플랫폼이 소비자 입장에서 다르게 다가오지 못한다면, 차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차별점은 콘텐츠다.
하지만 네트워크와 플랫폼의 홍수시대에 콘텐츠 산업이 중요하다는 거룩한 주장이 여기저기서 돌출하고 있으나, 피부로 와 닿는 활성화대책은 부족하다. 특히 케이블방송계에서 "피말리고 피멍드는 게 PP"라는 PP업계 한 관계자의 표현은 현재 PP업계의 현실을 극명하게 반영한다. PP는 왜 스스로를 피말리고 피멍드는 존재라고 하는가.
케이블TV 방송에서 보급형으로 편성되는 기본채널은 SO마다 다르긴 하지만 통상 50여개. 이 안에는 지상파 4개 채널, 홈쇼핑 5개, 보도채널 2개, 국회방송 등 공공채널 3개, 종교채널 3개를 비롯해 공익채널로 분류되는 일자리방송 등 6개 등이 기본채널에 반드시 편성된다. 따라서 기본형 50여개 자리 가운데 절반 가량이 사실상 고정석이다.
기본형에 편성돼야 케이블TV 가입세대인 1400만 세대에 뿌려져, 그나마 돈 되는 광고를 붙일 수 있다. 그래서 나머지 절반의 자리를 놓고 PP들은 `피'튀기는 전쟁을 벌인다. 4월 현재 PP로 등록된 채널수는 180여개. PP들이 피를 말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멍은 왜 들까. 1400만 가구에 뿌려지기 위한 경쟁이 이렇게 치열하다보니, 제대로 대접받고 들어가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유명 영화채널이나 지상파계열의 드라마 및 오락채널이 아니고선 20여개 남짓한 기본채널을 파고들기 쉽지 않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복수의 채널사업자(MPP) 한 두 곳을 제외하면 이익 내는 게 구조적으로 어렵다. 틈을 비집고 들어가도 이래저래 이익내기는 어렵고, 결국 멍만 든다.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체제작 얘기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 정작 자체제작은 지상파보다 제작비가 더 든다고 한다. 광범위한 시청자층을 가진 지상파는 제작비를 깎을 수 있지만, 케이블은 처음부터 그런 딜(Deal)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체제작이 많은 채널을 기본편성에 우선 배정하고, 좋은 번호를 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장은 한정돼 있다. 소비자가 돈을 더 지불하지 않는 이상, 유료시장의 파이는 제한적이다. 결국 피멍들고 있는 PP, 방송콘텐츠업계가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것은 이익을 나누는 지혜와 함께 PP들의 창작열정을 북돋우는 현실적 정책이 급선무다.
정보미디어부장 ykl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