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려운건…'경쟁사 CEO'다
■ 임윤규의 까칠한 통방콘 이야기
이동통신업계 CEO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뉴스메이커다. 그들의 움직임이나 말 한마디가 바로 기사다. 이 때문에 목소리를 듣기가 더 어렵다. 자나깨나 말조심이다.
공식적인 겉치레 싹 걷어내고, 어쩌다 마주 앉아도 그 자리에서 나온 얘기는 모두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Off the record).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질 만큼의 비밀스러운 얘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비보도를 전제로 하는 얘기의 대부분은 경쟁사 심기를 건드려 발끈할 만한 내용 정도다. 속시원하게 마음 깊은 얘기는 하고 싶은데, 그런 얘기가 활자화되어서 또 다른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경쟁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 그 양상이 치열할수록 자극은 더욱 민감하다.
SK텔레콤 김신배 사장, KTF 조영주 사장, LG텔레콤 정일재 사장 모두 전문경영인이다. 우리사주나 스톡옵션으로 주식 약간 갖고 있을지 모르나, 세 사람 모두 샐러리맨이다.
이들은 긴장감으로 따지자면 증권사 객장의 펀드매니저 못지 않다. 가입자 들고나는 모니터 위의 숫자판을 들여다보면 불법이라도, 돈 안 남는 장사라 해도 마케팅비용을 쏟아 붓고 싶다. 포화국면의 시장상황에서 가입자 확보라니. 하루하루 탄 속을 들여다본다면 벌써 시커먼 숯 검댕이가 됐을 게 분명하다.
경쟁사의 가입자를 빼내야하는 가혹한 경쟁의 한복판에서,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신규수요가 많지 않은 3개 사업자 경쟁체제 아래 누군가 가입자를 늘린다면, 그만큼 누군가는 빼앗기는 꼴이다. 현상유지는 엄청난 성공인 셈이다. 현상유지를 위한 치열한 싸움, 그것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외줄 위에 있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끔 궁금해진다. 이통3사 사장들은 누구 눈치를 가장 많이 볼까. 전문경영인, 샐러리맨인 이들 CEO가 눈치를 볼 사람은 그룹의 오너 혹은 모회사일까. 이동통신사업체는 어느 그룹에게나 핵심 주력회사로서 위상을 갖는다. 매출이나 수익 측면보다도 성장동력으로서 이통사업의 가치 때문이다. 이동통신은 기술의 진화가 어느 산업분야보다 빠른, 통합과 융합시대의 코어(Core)다. 그룹의 주력사업을 책임지는 이동통신서비스업체 CEO, 어깨가 무거울수록 이들 CEO는 아무래도 오너의 눈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눈치를 보고, 때론 두려워하는 존재는 오너보다는 경쟁사 사장이다. 경쟁을 만드는 가장 핵심적 요소는 경쟁 상대의 존재다. 상대의 움직임, 전략의 변화는 곧바로 나를 변화시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변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냉혹한 경쟁시장, 그래서 나를 변하게 만드는 경쟁사 CEO가 가장 두렵다.
김신배 사장, 조영주 사장, 정일재 사장은 서로의 마음을 얼마나 알까. 자기 마음도 모르는데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알겠는가만, 적어도 이통3사 CEO들은 서로 상대의 처지정도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것 같다. 물론 서로 만날 수도 없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CEO간 만남은 금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두 눈 부릅뜨고 있는 데다, 만난들 얼마나 따뜻한 얘기 나눌 수 있겠는가. 두 사람간 만남이야 어쩌다 큰 행사장에서 마주치는 정도이고, 세 사람의 만남은 주무부처장관이 만든 거룩한 자리에서나 가능하다. 그러니, 어쩌다 만나 오가는 대화는 따뜻한 듯 보이나 그 안에 시퍼런 칼날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이들 사령탑에게 요즘은 가입자 유치보다 더 중요한 경영사안들이 있다. 유무선통합에서 이제 통신방송의 융합으로 시장환경이 바뀐 데다, 규제기관도 방송통신위로 일원화됐다. 따라서 이동통신사업자에서 벗어나 유무선통합, 방송통신시장에서 위상의 변화를 모색 해야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지배구조의 변화는 핵심이다.
김신배 사장은 올해 들어 하나로텔레콤 인수문제로 두통깨나 앓았다. 공정위가 이런저런 조건도 붙이고, 방통위와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좀 남아 있긴 하지만 무난하게 인수를 완료했다. 하나로텔레콤이 최근 주총을 열고, 본격적으로 SK로 옷을 갈아입었으니 국내적 속앓이는 일단 정리된 모습이다. 하지만 해외사업에서 효율성을 기해야 하는 큰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 그룹 최태원 회장이 해외사업에서 이제는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언급이 없었어도, SK텔레콤 차원에서 벌인 각국의 해외사업들을 새 시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조영주 사장도 힘겨운 한해이긴 마찬가지다. 3G시장에서 1위를 지속하는 양보할 수 없는 목표를 완성하는 게 첫 번째 미션이다. SK텔레콤을 비롯해 LG텔레콤까지 3G시장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시장 리딩메이커 지위를 유지하는 게 만만치 않다. 특히 모회사인 KT와의 합병작업도 난제다.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와는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유선시장의 지배적사업자인 KT와의 합병인 탓에 여러 가지 돌발변수들을 돌파 해야한다.
정일재 사장은 LG텔레콤 CEO로서 LG데이콤과 LG파워콤 등과 함께 LG통신그룹이 우리나라 통신시장에서 당당히 3강으로 자리매김 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특히 이동통신 시장이 2세대(2G)에서 3G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다소 위축되고 있는 LG텔레콤의 브랜드 파워를 회복시켜야 하는 것은 큰 과업이다. 이를 위해 최근 내놓은 3G무선인터넷 서비스인 오즈를 성공시키는 것은 필수다.
무거운 어깨, 이들에게 있어 자신의 변화는 사실 두렵지 않다.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언제 돌발적으로 변할지 모를 상대가 걱정될 뿐이다.
정보미디어부장 yklim@
■ 임윤규의 까칠한 통방콘 이야기
이동통신업계 CEO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뉴스메이커다. 그들의 움직임이나 말 한마디가 바로 기사다. 이 때문에 목소리를 듣기가 더 어렵다. 자나깨나 말조심이다.
공식적인 겉치레 싹 걷어내고, 어쩌다 마주 앉아도 그 자리에서 나온 얘기는 모두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Off the record).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질 만큼의 비밀스러운 얘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비보도를 전제로 하는 얘기의 대부분은 경쟁사 심기를 건드려 발끈할 만한 내용 정도다. 속시원하게 마음 깊은 얘기는 하고 싶은데, 그런 얘기가 활자화되어서 또 다른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경쟁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 그 양상이 치열할수록 자극은 더욱 민감하다.
SK텔레콤 김신배 사장, KTF 조영주 사장, LG텔레콤 정일재 사장 모두 전문경영인이다. 우리사주나 스톡옵션으로 주식 약간 갖고 있을지 모르나, 세 사람 모두 샐러리맨이다.
이들은 긴장감으로 따지자면 증권사 객장의 펀드매니저 못지 않다. 가입자 들고나는 모니터 위의 숫자판을 들여다보면 불법이라도, 돈 안 남는 장사라 해도 마케팅비용을 쏟아 붓고 싶다. 포화국면의 시장상황에서 가입자 확보라니. 하루하루 탄 속을 들여다본다면 벌써 시커먼 숯 검댕이가 됐을 게 분명하다.
경쟁사의 가입자를 빼내야하는 가혹한 경쟁의 한복판에서,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신규수요가 많지 않은 3개 사업자 경쟁체제 아래 누군가 가입자를 늘린다면, 그만큼 누군가는 빼앗기는 꼴이다. 현상유지는 엄청난 성공인 셈이다. 현상유지를 위한 치열한 싸움, 그것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외줄 위에 있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끔 궁금해진다. 이통3사 사장들은 누구 눈치를 가장 많이 볼까. 전문경영인, 샐러리맨인 이들 CEO가 눈치를 볼 사람은 그룹의 오너 혹은 모회사일까. 이동통신사업체는 어느 그룹에게나 핵심 주력회사로서 위상을 갖는다. 매출이나 수익 측면보다도 성장동력으로서 이통사업의 가치 때문이다. 이동통신은 기술의 진화가 어느 산업분야보다 빠른, 통합과 융합시대의 코어(Core)다. 그룹의 주력사업을 책임지는 이동통신서비스업체 CEO, 어깨가 무거울수록 이들 CEO는 아무래도 오너의 눈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눈치를 보고, 때론 두려워하는 존재는 오너보다는 경쟁사 사장이다. 경쟁을 만드는 가장 핵심적 요소는 경쟁 상대의 존재다. 상대의 움직임, 전략의 변화는 곧바로 나를 변화시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변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냉혹한 경쟁시장, 그래서 나를 변하게 만드는 경쟁사 CEO가 가장 두렵다.
김신배 사장, 조영주 사장, 정일재 사장은 서로의 마음을 얼마나 알까. 자기 마음도 모르는데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알겠는가만, 적어도 이통3사 CEO들은 서로 상대의 처지정도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것 같다. 물론 서로 만날 수도 없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CEO간 만남은 금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두 눈 부릅뜨고 있는 데다, 만난들 얼마나 따뜻한 얘기 나눌 수 있겠는가. 두 사람간 만남이야 어쩌다 큰 행사장에서 마주치는 정도이고, 세 사람의 만남은 주무부처장관이 만든 거룩한 자리에서나 가능하다. 그러니, 어쩌다 만나 오가는 대화는 따뜻한 듯 보이나 그 안에 시퍼런 칼날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이들 사령탑에게 요즘은 가입자 유치보다 더 중요한 경영사안들이 있다. 유무선통합에서 이제 통신방송의 융합으로 시장환경이 바뀐 데다, 규제기관도 방송통신위로 일원화됐다. 따라서 이동통신사업자에서 벗어나 유무선통합, 방송통신시장에서 위상의 변화를 모색 해야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지배구조의 변화는 핵심이다.
김신배 사장은 올해 들어 하나로텔레콤 인수문제로 두통깨나 앓았다. 공정위가 이런저런 조건도 붙이고, 방통위와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좀 남아 있긴 하지만 무난하게 인수를 완료했다. 하나로텔레콤이 최근 주총을 열고, 본격적으로 SK로 옷을 갈아입었으니 국내적 속앓이는 일단 정리된 모습이다. 하지만 해외사업에서 효율성을 기해야 하는 큰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 그룹 최태원 회장이 해외사업에서 이제는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언급이 없었어도, SK텔레콤 차원에서 벌인 각국의 해외사업들을 새 시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조영주 사장도 힘겨운 한해이긴 마찬가지다. 3G시장에서 1위를 지속하는 양보할 수 없는 목표를 완성하는 게 첫 번째 미션이다. SK텔레콤을 비롯해 LG텔레콤까지 3G시장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시장 리딩메이커 지위를 유지하는 게 만만치 않다. 특히 모회사인 KT와의 합병작업도 난제다.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와는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유선시장의 지배적사업자인 KT와의 합병인 탓에 여러 가지 돌발변수들을 돌파 해야한다.
정일재 사장은 LG텔레콤 CEO로서 LG데이콤과 LG파워콤 등과 함께 LG통신그룹이 우리나라 통신시장에서 당당히 3강으로 자리매김 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특히 이동통신 시장이 2세대(2G)에서 3G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다소 위축되고 있는 LG텔레콤의 브랜드 파워를 회복시켜야 하는 것은 큰 과업이다. 이를 위해 최근 내놓은 3G무선인터넷 서비스인 오즈를 성공시키는 것은 필수다.
무거운 어깨, 이들에게 있어 자신의 변화는 사실 두렵지 않다.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언제 돌발적으로 변할지 모를 상대가 걱정될 뿐이다.
정보미디어부장 ykl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