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야, 통신아 어디서든 잘 살거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개편안을 공개하면서, 개편의 대상이 된 정부부처 사람들은 뒤숭숭한 새해를 맞고 있다. 특히 기능분산을 통해 해체 수순을 밟게되는 정보통신부 사람들은 어느 곳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은 부처의 이름이 살아 남는 쪽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 모른다.
작년 11월 초, 정통부에서 오랫동안 주파수 정책을 담당했던 J팀장을 만났다. J팀장은 와이브로 국제표준화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각국의 표를 우리표로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뛰었던 인물이다. 표준채택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듯 표정은 밝았다. J팀장은 "회사 생활하는 동안 이만큼 기쁜 일이 없었다"면서 스위스 제네바 전투(?)를 회고했다. 저녁자리는 아주 짧게 끝났다. 두시간도 채 되지 않아 J팀장은 국정감사 준비를 핑계로 다시 불켜진 그의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스스로 회사원으로 칭했던 정통부 사람들
우리나라 정부부처 가운데 자신이 몸담은 부처를 `회사'라고 표현하는 곳이 있다.
부처와 상관없이 장난처럼 그렇게 부르는 공무원들도 있겠지만, 정색하고 공공연하게 회사로 지칭하는 부처는 국가정보원과 정보통신부다.
국가정보원 사람들이 회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짐작이 간다. 국가 기밀을 다루는 기관이기 때문에 보안상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됐을 터다.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지금이야 상황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서슬 퍼런 독재시대의 안전기획부를 떠올리는 일반 국민들 앞에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이름을 쉽게 내세우기가 어려웠을 게다.
그런데 정보통신부 사람들이 정통부를 회사라고 불렀던 이유는 사뭇 다르다. 자신들의 신분이 공무원임을 망각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차세대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전 세계 IT기술을 이끌어 가는 주무부처로서 어느 조직보다 자부심이 강한 공무원들이다.
정부부처로선 드물게 규제와 진흥기능을 동시에 가졌던 탓에, 그들은 급변하는 기술과 시장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이해하고 리드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도 민간기업화해야 했다는 게 `회사론'의 실체다.
이런 정통부가 기능을 분산하고, 타 부처로 흡수통합이 추진되고 있다. 사실상 해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이 확정되고, 국회논의가 진행중인 상황인데도 정통부사람들은 해체와 통폐합의 대상이 왜 정통부여야 하는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들의 회사가 M&A(인수합병)되는 마당이니, 그 심정은 단지 아쉬움만은 아닐 것이다.
■조직논리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는 목소리
그들은 민간회사가 큰 회사, 혹은 거대 자본의 힘에 인수될 때 피인수 기업에서 통상 나타나는 노동조합의 거친 저항 한번 못해봤다. 회사라고 부르지만, 그들의 신분은 엄연히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가 있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더 큰 조직 논리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드러내지 못하고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아주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정통부 구제에 안간힘을 쏟았을 뿐이다.
이런 서러운 마음은 해체로 가닥을 잡은 후에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음을 확인하면서도 `정보'와 `통신'이라는 이름이라도 남기고 싶은 간절함으로 이어지고 있다. M&A당한 회사가 끝내 회사이름 일 부분이라도 살리고 싶어하는 처절함이다.
1994년 설립이후 14년, 행정고시를 통해 막 정통부에 입사(?)했던 사람들 가운데 승진이 빨랐던 사람들은 벌써 고위공무원단에 편입됐다. 그야말로 청춘과 함께 지나온 직장인 셈이다. 큰 목소리는 내지 못했으나, 어쩌면 그들의 반발과 저항은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한 직장에 평생 몸담고 일하는 문화가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M&A에 휩쓸린 직장인들은 회사의 흥망을 자기 인생의 흥망으로 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지은 1월 16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실에서는 IT분야 정부 기관과 기업, 협회 임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정보통신인 신년 인사회가 열렸다. `정보통신인'이라는 이름으로 갖게되는 사실상, 마지막 신년 인사회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영환 정통부 장관은 "십이간지 순서를 정할 때 원래 소가 1등이었지만 소뿔에 매달려왔던 쥐가 1등을 했다. 오늘 새정부 조직 발표를 보면서 세상일은 소처럼 우직해서만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뼈있는 말로 정통부 해체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사망하는 날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날
이날은 체신부에서 정통부로 이어지는 세월 속에, 정보통신계에 몸을 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던졌다.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은 분위기가 가라앉자 "오늘은 사망하는 날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날"이라며 참석자들에게 힘을 내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는 정보와 통신이라는 단어가 단 한차례씩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회사'라는 말을 같이 썼던 국가정보원에서 `정보'와, 정통부의 핵심 업무였던 통신서비스 전반의 정책과 규제를 흡수하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통신'이 그것이다. 국가정보원에서의 정보는 다른 차원의 의미이기에, 정보통신에 애정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제 `정보'라는 단어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지식경제부를 정보지식경제부로 하거나, 문화부를 정보문화부로 바꿈으로써 `정보통신'의 이름을 살리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같은 간절함까지 밥그릇 챙기기, 세력싸움, 부처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좀 야박하지 않은가.
14년 동안 큰 나무로 자란 정통부. 이제 뿌리와 줄기와 기둥과 잎새들의 조각들은 새로운 나무의 밑거름, 혹은 꼭 필요한 조각이 된다. 정보통신부의 정보와 통신이 산업 곳곳에 파고들어,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양초의 역할을 해낼 것을 믿는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개편안을 공개하면서, 개편의 대상이 된 정부부처 사람들은 뒤숭숭한 새해를 맞고 있다. 특히 기능분산을 통해 해체 수순을 밟게되는 정보통신부 사람들은 어느 곳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은 부처의 이름이 살아 남는 쪽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 모른다.
작년 11월 초, 정통부에서 오랫동안 주파수 정책을 담당했던 J팀장을 만났다. J팀장은 와이브로 국제표준화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각국의 표를 우리표로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뛰었던 인물이다. 표준채택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듯 표정은 밝았다. J팀장은 "회사 생활하는 동안 이만큼 기쁜 일이 없었다"면서 스위스 제네바 전투(?)를 회고했다. 저녁자리는 아주 짧게 끝났다. 두시간도 채 되지 않아 J팀장은 국정감사 준비를 핑계로 다시 불켜진 그의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스스로 회사원으로 칭했던 정통부 사람들
우리나라 정부부처 가운데 자신이 몸담은 부처를 `회사'라고 표현하는 곳이 있다.
부처와 상관없이 장난처럼 그렇게 부르는 공무원들도 있겠지만, 정색하고 공공연하게 회사로 지칭하는 부처는 국가정보원과 정보통신부다.
국가정보원 사람들이 회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짐작이 간다. 국가 기밀을 다루는 기관이기 때문에 보안상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됐을 터다.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지금이야 상황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서슬 퍼런 독재시대의 안전기획부를 떠올리는 일반 국민들 앞에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이름을 쉽게 내세우기가 어려웠을 게다.
그런데 정보통신부 사람들이 정통부를 회사라고 불렀던 이유는 사뭇 다르다. 자신들의 신분이 공무원임을 망각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차세대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전 세계 IT기술을 이끌어 가는 주무부처로서 어느 조직보다 자부심이 강한 공무원들이다.
정부부처로선 드물게 규제와 진흥기능을 동시에 가졌던 탓에, 그들은 급변하는 기술과 시장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이해하고 리드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도 민간기업화해야 했다는 게 `회사론'의 실체다.
이런 정통부가 기능을 분산하고, 타 부처로 흡수통합이 추진되고 있다. 사실상 해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이 확정되고, 국회논의가 진행중인 상황인데도 정통부사람들은 해체와 통폐합의 대상이 왜 정통부여야 하는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들의 회사가 M&A(인수합병)되는 마당이니, 그 심정은 단지 아쉬움만은 아닐 것이다.
■조직논리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는 목소리
그들은 민간회사가 큰 회사, 혹은 거대 자본의 힘에 인수될 때 피인수 기업에서 통상 나타나는 노동조합의 거친 저항 한번 못해봤다. 회사라고 부르지만, 그들의 신분은 엄연히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가 있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더 큰 조직 논리 앞에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드러내지 못하고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아주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정통부 구제에 안간힘을 쏟았을 뿐이다.
이런 서러운 마음은 해체로 가닥을 잡은 후에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음을 확인하면서도 `정보'와 `통신'이라는 이름이라도 남기고 싶은 간절함으로 이어지고 있다. M&A당한 회사가 끝내 회사이름 일 부분이라도 살리고 싶어하는 처절함이다.
1994년 설립이후 14년, 행정고시를 통해 막 정통부에 입사(?)했던 사람들 가운데 승진이 빨랐던 사람들은 벌써 고위공무원단에 편입됐다. 그야말로 청춘과 함께 지나온 직장인 셈이다. 큰 목소리는 내지 못했으나, 어쩌면 그들의 반발과 저항은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한 직장에 평생 몸담고 일하는 문화가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M&A에 휩쓸린 직장인들은 회사의 흥망을 자기 인생의 흥망으로 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지은 1월 16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실에서는 IT분야 정부 기관과 기업, 협회 임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정보통신인 신년 인사회가 열렸다. `정보통신인'이라는 이름으로 갖게되는 사실상, 마지막 신년 인사회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영환 정통부 장관은 "십이간지 순서를 정할 때 원래 소가 1등이었지만 소뿔에 매달려왔던 쥐가 1등을 했다. 오늘 새정부 조직 발표를 보면서 세상일은 소처럼 우직해서만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뼈있는 말로 정통부 해체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사망하는 날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날
이날은 체신부에서 정통부로 이어지는 세월 속에, 정보통신계에 몸을 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던졌다.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은 분위기가 가라앉자 "오늘은 사망하는 날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날"이라며 참석자들에게 힘을 내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는 정보와 통신이라는 단어가 단 한차례씩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회사'라는 말을 같이 썼던 국가정보원에서 `정보'와, 정통부의 핵심 업무였던 통신서비스 전반의 정책과 규제를 흡수하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통신'이 그것이다. 국가정보원에서의 정보는 다른 차원의 의미이기에, 정보통신에 애정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제 `정보'라는 단어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지식경제부를 정보지식경제부로 하거나, 문화부를 정보문화부로 바꿈으로써 `정보통신'의 이름을 살리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같은 간절함까지 밥그릇 챙기기, 세력싸움, 부처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좀 야박하지 않은가.
14년 동안 큰 나무로 자란 정통부. 이제 뿌리와 줄기와 기둥과 잎새들의 조각들은 새로운 나무의 밑거름, 혹은 꼭 필요한 조각이 된다. 정보통신부의 정보와 통신이 산업 곳곳에 파고들어,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양초의 역할을 해낼 것을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