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 기어 솔리드 3'
스타일과 혁신 - `페르시아의 왕자-전사의 길` vs `메탈 기어 솔리드 3'
대작 시리즈가 짊어진 무게는 상상 이상이다. 하나의 시리즈가 개발사 개발력의 척도인 양 취급될 뿐만 아니라, 한 편의 흥행이 회사의 존망을 결정짓기도 한다. 오랫동안 시리즈를 사랑해 온 팬들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방향에서 주목하는 팬의 관심은 쉽게 적대적 평가로 바뀐다. 언제나 제작사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 시리즈의 색깔을 유지하는 스타일인가, 점점 낡아버리는 이미지를 개선하는 혁신인가의 선택이다. `페르시아의 왕자-전사의 길'과 `메탈 기어 솔리드 3'는 그 오래된 시리즈의 전통만큼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이 선택을 해야만 한다.
아크로바틱에서 액션으로 `페르시아의 왕자-전사의 길'
`페르시아의 왕자'가 브로드번드의 자랑이던 시절에서 다시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유비아이몬트리올이 `페르시아의 왕자'를 개발한다고 할 때, 팬이 보냈던 의구심과 거부감은 넘기 어려운 장애였다. 조금이라도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을 손상시킨다면 참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는 게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간' 활용 방식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에 매달렸던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우려와 불만은 찬사로 바뀌고, 유비아이는 `페르시아의 왕자'를 일 년에 한 편씩 내놓을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페르시아의 왕자-전사의 길'은 시리즈로 나아가는 첫 번째 작품이다.
놀랍게도 게임은 시작부터 전작을 버린다. 위기 상황에도 여유 있고, 조금은 뻔뻔한 왕자의 이국적이지만 느긋한 모험담 대신, 시작부터 게이머를 몰아넣는 죽음의 공포가 게임을 지배한다. 게이머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괴물의 숨결을 등뒤에서 느끼며, 쉴 새 없이 생존의 전투를 벌여야 한다. 느긋했던 왕자의 얼굴도 죽음의 공포 때문인지, 어두운 그림자에 쌓여 있다. 이런 상황에 걸맞게 전투 부분은 대폭 강화됐다. 콤보나 이도류는 싸우는 재미를 제공한다. 실제 사용은 안 되지만 50여개나 되는 콤보는 자랑할 만하다.
전작의 퍼즐이 아크로틱 액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현실과 과거가 오간다는 설정답게 시간 속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퍼즐 풀기에 포커싱하고 있다. 다른 시간대긴 하지만 같은 공간을 여러 번에 걸쳐 움직이는 일은 썩 즐겁지 않다. 미지의 공간을 모험하며 얻어지던 스펙터클은 사라지고, 퍼즐을 풀기 위해 정신 없이 달려야 하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여기에 스케일을 키우려는 욕심 때문에, 덩달아 거창해진 배경 속에서 캐릭터의 모습은 묻혀버린다. 불편한 시점과 함께 묻혀버린 캐릭터는 플레이의 즐거움을 현저하게 줄인다.
비장한 세계에서 고독한 영웅이 벌이는 거친 사투. 새로운 게임의 방향은 게임을 변화시켰다. 경치를 관람하고, 이곳을 어떻게 통과하나 하며 한숨을 쉬다가도 힘차게 도전할 수 있었던 전작의 여유는 사라지고, 게이머는 살아남기 위한 모험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2차원 평면을 달리던 그 시절부터 `페르시아의 왕자'는 싸움꾼이 아니라 기계 체조 선수였다.
잠입에 대한 근원적 질문 `메탈 기어 솔리드 3'
지금은 많은 게임에서 사용되지만, MSX 시절부터 `잠입'이라는 이름으로 게이머의 손에 땀을 고이게 한 건 `메탈 기어' 시리즈였다. 탑 뷰를 통해 적의 행동을 보며 시선의 향방을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 캐릭터를 자신 있고 분명하게 움직여야 한다. 관측ㆍ판단ㆍ결단으로 이어지는 이 절묘한 순간을 `메탈 기어' 시리즈는 `잠입'이라는 이름 속에 녹여냈다.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3편인 `메탈 기어 솔리드 3-스네이크 이터'는 지금까지 이어온 전통에 근본적 변화를 시도한다.
결정적인 건 레이더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60년대 초반이라는 배경에 소지하고 다니는 레이더를 생각하기는 힘들기도 하겠지만, 스토리가 시스템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레이더를 없앤 건 지금까지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에서 쌓아온 `잠입' 개념에 대한 도전이다. MSX 시절엔 직관적인 탑 뷰였지만, 3D환경 하에선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대신 제공된 것이 레이더다. 레이더를 통해 적의 행동을 예측하고,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3D는 영화적 연출을 위한 장치고, 실제 게임의 핵심 요소는 레이더에서 움직이는 점을 보며 결정되는 균열이 일어난다. 레이더를 없앰으로써 이 균열은 메워진다. 레이더 대신 게이머는 자신의 눈으로 상황을 보며 행동해야 한다. 레이더 안에 포착되던 적의 행동이 이제는 시야를 넘어서면서 짐작할 수 없는 위험으로 바뀌었다. 대신에 위장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더 많은 긴장과 숨막힘, 그리고 조심스러움이 필요해진다. 참지 못한 게이머는 게임을 액션으로 바꿔놓는다.
`잠입'이라는 용어만을 따진다면, 이 변화는 원래의 의미에 한 걸음 다가가는 시도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메탈 기어'부터 내려오던 `적의 행동 경로 파악, 전략의 선택, 과감한 행동'으로 이어져 오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기억이 여기엔 존재하지 않는다. `잠입'이라는 이름 뒤에 실제로 작동하던 건 `레이더로 제공되는 퍼즐 풀기'라는 놀이의 경험이었던 것이다. 코지마식 스토리와 영상이 놀이 요소의 이런 변화를 덮고 있긴 하지만, 어느 순간 느껴지는 이 이질감은 혁신이 짊어지는 필연적인 짐일 것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스타일과 혁신 - `페르시아의 왕자-전사의 길` vs `메탈 기어 솔리드 3'
대작 시리즈가 짊어진 무게는 상상 이상이다. 하나의 시리즈가 개발사 개발력의 척도인 양 취급될 뿐만 아니라, 한 편의 흥행이 회사의 존망을 결정짓기도 한다. 오랫동안 시리즈를 사랑해 온 팬들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방향에서 주목하는 팬의 관심은 쉽게 적대적 평가로 바뀐다. 언제나 제작사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 시리즈의 색깔을 유지하는 스타일인가, 점점 낡아버리는 이미지를 개선하는 혁신인가의 선택이다. `페르시아의 왕자-전사의 길'과 `메탈 기어 솔리드 3'는 그 오래된 시리즈의 전통만큼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이 선택을 해야만 한다.
아크로바틱에서 액션으로 `페르시아의 왕자-전사의 길'
`페르시아의 왕자'가 브로드번드의 자랑이던 시절에서 다시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유비아이몬트리올이 `페르시아의 왕자'를 개발한다고 할 때, 팬이 보냈던 의구심과 거부감은 넘기 어려운 장애였다. 조금이라도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을 손상시킨다면 참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는 게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간' 활용 방식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에 매달렸던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우려와 불만은 찬사로 바뀌고, 유비아이는 `페르시아의 왕자'를 일 년에 한 편씩 내놓을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페르시아의 왕자-전사의 길'은 시리즈로 나아가는 첫 번째 작품이다.
놀랍게도 게임은 시작부터 전작을 버린다. 위기 상황에도 여유 있고, 조금은 뻔뻔한 왕자의 이국적이지만 느긋한 모험담 대신, 시작부터 게이머를 몰아넣는 죽음의 공포가 게임을 지배한다. 게이머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괴물의 숨결을 등뒤에서 느끼며, 쉴 새 없이 생존의 전투를 벌여야 한다. 느긋했던 왕자의 얼굴도 죽음의 공포 때문인지, 어두운 그림자에 쌓여 있다. 이런 상황에 걸맞게 전투 부분은 대폭 강화됐다. 콤보나 이도류는 싸우는 재미를 제공한다. 실제 사용은 안 되지만 50여개나 되는 콤보는 자랑할 만하다.
전작의 퍼즐이 아크로틱 액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현실과 과거가 오간다는 설정답게 시간 속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퍼즐 풀기에 포커싱하고 있다. 다른 시간대긴 하지만 같은 공간을 여러 번에 걸쳐 움직이는 일은 썩 즐겁지 않다. 미지의 공간을 모험하며 얻어지던 스펙터클은 사라지고, 퍼즐을 풀기 위해 정신 없이 달려야 하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여기에 스케일을 키우려는 욕심 때문에, 덩달아 거창해진 배경 속에서 캐릭터의 모습은 묻혀버린다. 불편한 시점과 함께 묻혀버린 캐릭터는 플레이의 즐거움을 현저하게 줄인다.
비장한 세계에서 고독한 영웅이 벌이는 거친 사투. 새로운 게임의 방향은 게임을 변화시켰다. 경치를 관람하고, 이곳을 어떻게 통과하나 하며 한숨을 쉬다가도 힘차게 도전할 수 있었던 전작의 여유는 사라지고, 게이머는 살아남기 위한 모험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2차원 평면을 달리던 그 시절부터 `페르시아의 왕자'는 싸움꾼이 아니라 기계 체조 선수였다.
잠입에 대한 근원적 질문 `메탈 기어 솔리드 3'
지금은 많은 게임에서 사용되지만, MSX 시절부터 `잠입'이라는 이름으로 게이머의 손에 땀을 고이게 한 건 `메탈 기어' 시리즈였다. 탑 뷰를 통해 적의 행동을 보며 시선의 향방을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 캐릭터를 자신 있고 분명하게 움직여야 한다. 관측ㆍ판단ㆍ결단으로 이어지는 이 절묘한 순간을 `메탈 기어' 시리즈는 `잠입'이라는 이름 속에 녹여냈다.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3편인 `메탈 기어 솔리드 3-스네이크 이터'는 지금까지 이어온 전통에 근본적 변화를 시도한다.
결정적인 건 레이더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60년대 초반이라는 배경에 소지하고 다니는 레이더를 생각하기는 힘들기도 하겠지만, 스토리가 시스템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레이더를 없앤 건 지금까지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에서 쌓아온 `잠입' 개념에 대한 도전이다. MSX 시절엔 직관적인 탑 뷰였지만, 3D환경 하에선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대신 제공된 것이 레이더다. 레이더를 통해 적의 행동을 예측하고,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3D는 영화적 연출을 위한 장치고, 실제 게임의 핵심 요소는 레이더에서 움직이는 점을 보며 결정되는 균열이 일어난다. 레이더를 없앰으로써 이 균열은 메워진다. 레이더 대신 게이머는 자신의 눈으로 상황을 보며 행동해야 한다. 레이더 안에 포착되던 적의 행동이 이제는 시야를 넘어서면서 짐작할 수 없는 위험으로 바뀌었다. 대신에 위장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더 많은 긴장과 숨막힘, 그리고 조심스러움이 필요해진다. 참지 못한 게이머는 게임을 액션으로 바꿔놓는다.
`잠입'이라는 용어만을 따진다면, 이 변화는 원래의 의미에 한 걸음 다가가는 시도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메탈 기어'부터 내려오던 `적의 행동 경로 파악, 전략의 선택, 과감한 행동'으로 이어져 오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기억이 여기엔 존재하지 않는다. `잠입'이라는 이름 뒤에 실제로 작동하던 건 `레이더로 제공되는 퍼즐 풀기'라는 놀이의 경험이었던 것이다. 코지마식 스토리와 영상이 놀이 요소의 이런 변화를 덮고 있긴 하지만, 어느 순간 느껴지는 이 이질감은 혁신이 짊어지는 필연적인 짐일 것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