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생산물량 보장시스템 마련을
`반도체 공장(FAB) 없이 반도체를 만들어 판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말이지만, 국내에는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수십 개의 팹리스(FAB―LESS) 반도체 회사들이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경쟁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말복이 지나고 더위도 물러간다는 처서를 며칠 앞둔 지난 19일 오후, 서울 테헤란로에 위치한 토마토LSI 빌딩 4층 회의실에서 국내 팹리스 설계부문의 대표적 기업인 토마토LSI 최선호 사장(44세)과 엠텍비젼의 이성민 사장(43세)을 만났다.
첫 인상에서 다소 대조적인 최 사장과 이 사장이 친분을 나누게 된 것은 몇 년 전 한 모임에서 강사와 청중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모임이 끝난 후 이 사장은 프리젠테이션을 마친 최 사장에게 반도체 시장과 관련한 자료를 요청해 놓았지만, 실상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 사장은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이 사장에게 관련 자료를 보내주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가 쌓이게 됐고 지금까지 서로 존경하는 CEO로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회에서 만나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지만, 작은 약속도 소중히 챙기는 최 사장의 모습에서 배울만한 CEO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 사장은 말한다. 최 사장도 엠텍비젼이 카메라폰의 핵심 부품 설계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언젠가는 이 사장을 한번 만나 업계의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비슷한 연배에 같은 해인 1999년 반도체설계 회사를 시작했다는 유사성을 빼면 아주 대조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 출신인 최 사장은 삼성에서 근무했던 11년의 대부분을 영업 분야에서 활동한 영업맨이다. 최 사장이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CEO인데 비해, 이 사장은 LG반도체에서 10년간 카메라IC를 설계하며, 연구실에서 공력(?)을 쌓아올린 정통 엔지니어 출신이다.
최 사장은 이 사장으로부터 기술적인 조언을, 이 사장은 최 사장으로부터 영업 마인드를 배우는 관계로 발전하면서, 두 사람은 반도체 설계 업계의 공통적인 고민과 관심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그래서인지 이 날 이들의 대화도 토마토LSI가 LCD용 구동IC(LDI)에, 엠텍비젼이 카메라 컨트롤 프로세서(CCP)에 주력하는 업체란 점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사안에서 공동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동업자 의식이라기보다는 업계의 현안이 뚜렷하기 때문에 이견이 크게 없어서다.
한참의 대화가 진행되던 중 최 사장이 먼저 "이 이야기는 꼭 좀 써달라"며 최대 현안을 언급했다.
"팹리스 회사로서 팹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크다. 주문이 많이 밀려와 제품을 대량 생산하려 해도 웨이퍼를 투입할 라인이 없다. 팹을 구하러 다니다 보면 이미 시장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이제 막 국내 팹리스 업체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시점에 파운드리 팹의 절대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서서히 일고 있다는 얘기다.
최 사장은 "국내 비메모리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든 대기업이든 팹리스 업체들에 대해 어느 정도 생산물량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주는 게 필요하다. 대만의 경우 이같은 공조가 잘되고 있다. 대만 TSMC나 UMC는 자국 기업을 위해 파운드리 팹 중 일정부분을 중소 팹리스 업체용으로 준비해두고 있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최 사장의 이같은 말에 이 사장도 공감을 표시했다.
"걱정이다. 국내에서 실질적인 파운드리 업체라면 동부아남 정도인데, 동부가 국내외 주요업체들의 수요를 맞춰주고 나면 국내 팹리스 업체들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여유가 많지 않다. 동부아남과 같은 팹이 하나 정도 더 있으면 좋겠다. 대만의 TSMC나 UMC가 대만 팹리스 업체들과 공조하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팹리스 업체와의 파운드리 업체의 공조체제 구축이 시급한 현안이다."
이들의 걱정은 팹의 부족에 따른 기술유출 문제까지 이어졌다.
이 사장은 "결국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라인을 찾지 못하면 팹리스 업체들은 대만이나 중국에 생산을 맡기게 된다. 이럴 경우 결국 기술 유출문제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국내의 팹리스 업체들이 이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이 단계에서 서서히 노하우가 나올 시점에 이를 해외에서 생산하면 원치 않아도 국내 연구개발 노하우가 해외에 공개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최 사장은 이같은 어려움의 해법으로 국내 팹리스 업체의 공조를 기반으로 파운드리 업체와의 공동 투자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현재 대부분의 파운드리 업체가 대만이나 중국에 있다. 대만 파운드리 업체인 TSMC나 UMC가 추가라인을 건설할 때 팹리스 회사들과 공동으로 투자해, 파운드리 업체는 투자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인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팹리스 업체들은 적절한 자본을 투자함으로써 안정적인 라인 확보와 공동 기술개발 등의 이점을 얻고 있다.
대만 팹리스 업체들은 공동 투자한 팹에서 각 사의 생산일정을 조절함으로써 다소 부족한 생산능력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라인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국내에서 본받아 파운드리와 팹리스의 공생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 사장은 이같은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면 충분히 투자할 의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도 이에 대해 이견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이같은 공동 팹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이제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이 됐다"는 말로 대신했다.
"과거에 팹리스 업체들이 돈을 모아서 팹을 하나 사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사실 그 때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팹을 사더라도 당시에는 충분한 물량을 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팹리스 업체들의 최근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전체 팹리스 업체들의 200㎜ 웨이퍼 월 소모량을 계산해 보면 올해 월 3만∼5만장 수준이 될 것이다. 이 정도면 파운드리 팹 하나는 충분히 돌릴 수 있는 규모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통 팹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본다"고 최 사장은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와 대기업의 인식 공유가 필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대화의 추를 거꾸로 돌려 대담의 첫머리로 가서 최 사장과 이 사장이 각각 영위하고 있는 주력 사업의 시장 현황에 대해 들었다.
LDI를 주력으로 하는 최 사장은 "최근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느끼고 있다"며 "상반기 대비 하반기에 저가ㆍ저사양 제품의 수요 위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며 LCD 시장의 침체 분위기를 전했다.
카메라폰의 핵심 부품인 CCP를 주력으로 하는 이 사장도 "대기업의 경우 카메라폰 수량은 증가하고 있지만, 중소 휴대폰 업체들은 수량이 줄고 있다. 중국으로 수출하는 중소기업이 특히 줄어드는 분위기로 전체 휴대폰 시장의 물량이 줄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다"며 시장 분위기를 언급했다.
세계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그렇더라도 생존을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게 CEO의 역할이다. 이들은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신규 시장 창출'을 첫 번째 해법으로 꼽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데는 2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우선 기업 스스로가 신제품을 빨리 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게 최선이다. 다음으로는 수요자와의 관계 개선이다. 대기업들과의 동반자적인 관계 형성을 통해 공동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해법이다" 최 사장이 강조한 난관 극복의 방법이다.
이 사장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어려운 시장을 극복하고, 미래를 헤쳐나가는 방법을 제시했다.
"멀티미디어라는 말이 수없이 나오던 몇 년 전 멀티미디어는 단순히 오디오 중심이었다. 이때 엠텍비젼이 생각했던 것은 결국 멀티미디어는 오디오에서 비디오로 변할 것이고, 그 시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해법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모두가 휴대하는 범용의 제품에 `눈'을 다는 것이었다. 휴대폰에 카메라를 탑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법이 카메라 컨트롤 프로세서(CCP)였다. 미래에 대한 해법도 비슷하다. 좋은 가격을 받으려면 남들이 안 하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수밖에 없다. 대기업도 경쟁사와 경쟁하기 위해 가격인하 전략을 펼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가격인하 정책을 나무랄 필요 없이 꼭 필요한 신제품을 개발하면 결국 생존의 길은 열리게 돼 있다고 본다"
이제 개화되기 시작한 국내 반도체 설계 업계에서 영업의 강자와 기술강자가 어떻게 서로를 격려하며 미래를 열어갈지 주목된다.
오동희기자ㆍ강경래기자
◇최선호 토마토LSI 사장은
삼성전자 출신 반도체 영업통
마케팅 중심 사업기반 다져
최선호 토마토LSI 사장(44세)은 광운대 응용전자학과 출신으로, 1986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1996년 퇴사할 때까지 반도체 영업만 11년 동안 해 온 반도체 영업통이다. 그는 특히 6년간을 대만에서 근무하면서 대만 반도체 시장과 비메모리 분야, LCD 등의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을 토대로 1999년 토마토LSI를 설립, LCD 구동 IC(LDI) 사업에 뛰어들었다.
영업통 답게 사업초기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대만 지사설립을 시작으로 중국 신천 법인 등 해외현지 네트워크 구축에 나설 정도로 마케팅 중심의 사업기반을 닦았다. 통상적인 기업이 제품이 생산된 후 판로확보에 나서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현재의 토마토LSI를 만든 원동력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최 사장은 2001년 ASIC설계사협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지난해 무역의 날엔 2000만불 수출탑과 개인포상으로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현재 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을 맡아 팹리스 업체들을 비롯한 국내 중소 비메모리 업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이성민 엠텍비젼 사장은
카메라 IC설계 연구원 경력
시장 중심 기술개발에 초점
이성민 엠텍비젼 사장(43세)은 서강대학교 반도체 공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989년부터 1998년까지 10년간 LG반도체에서 카메라 IC 설계 담당 연구원으로 근무한 기술자 출신이다. 그는 기술이 최우선이라는 일반적인 엔지니어의 마인드와는 달리, 우선 연구개발을 통해 상품을 시장에 내놓고 시장 반응에 따라 새롭게 기술을 개발하는 시장 중심의 엔지니어다.
휴대폰에 카메라를 달기 위한 카메라 컨트롤러 프로세서(CCP)를 개발하기에 전에 그는 우선 PC용 카메라를 개발해 시장 반응을 보고, MP3P 외장형 카메라와 CCP를 개발하는 단계를 밟아나갔다. 그의 첫 작품인 `제카'(제대로 된 카메라)는 아직도 PC용 카메라로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순탄하지 많은 않았다. 당초 MP3P 외장형 카메라의 수요가 클 것이라는 고객사의 요청에 이 물량을 크게 늘렸으나 시장의 반응이 냉담해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다.
그는 기술자라도 현장의 감각을 잊으면 당장 시장에서 실패한다는 신념에 따라 지속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동시에 시장의 반응을 체크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는다.
`반도체 공장(FAB) 없이 반도체를 만들어 판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말이지만, 국내에는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수십 개의 팹리스(FAB―LESS) 반도체 회사들이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경쟁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말복이 지나고 더위도 물러간다는 처서를 며칠 앞둔 지난 19일 오후, 서울 테헤란로에 위치한 토마토LSI 빌딩 4층 회의실에서 국내 팹리스 설계부문의 대표적 기업인 토마토LSI 최선호 사장(44세)과 엠텍비젼의 이성민 사장(43세)을 만났다.
첫 인상에서 다소 대조적인 최 사장과 이 사장이 친분을 나누게 된 것은 몇 년 전 한 모임에서 강사와 청중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모임이 끝난 후 이 사장은 프리젠테이션을 마친 최 사장에게 반도체 시장과 관련한 자료를 요청해 놓았지만, 실상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 사장은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이 사장에게 관련 자료를 보내주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가 쌓이게 됐고 지금까지 서로 존경하는 CEO로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회에서 만나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지만, 작은 약속도 소중히 챙기는 최 사장의 모습에서 배울만한 CEO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 사장은 말한다. 최 사장도 엠텍비젼이 카메라폰의 핵심 부품 설계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언젠가는 이 사장을 한번 만나 업계의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비슷한 연배에 같은 해인 1999년 반도체설계 회사를 시작했다는 유사성을 빼면 아주 대조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 출신인 최 사장은 삼성에서 근무했던 11년의 대부분을 영업 분야에서 활동한 영업맨이다. 최 사장이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CEO인데 비해, 이 사장은 LG반도체에서 10년간 카메라IC를 설계하며, 연구실에서 공력(?)을 쌓아올린 정통 엔지니어 출신이다.
최 사장은 이 사장으로부터 기술적인 조언을, 이 사장은 최 사장으로부터 영업 마인드를 배우는 관계로 발전하면서, 두 사람은 반도체 설계 업계의 공통적인 고민과 관심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그래서인지 이 날 이들의 대화도 토마토LSI가 LCD용 구동IC(LDI)에, 엠텍비젼이 카메라 컨트롤 프로세서(CCP)에 주력하는 업체란 점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사안에서 공동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동업자 의식이라기보다는 업계의 현안이 뚜렷하기 때문에 이견이 크게 없어서다.
한참의 대화가 진행되던 중 최 사장이 먼저 "이 이야기는 꼭 좀 써달라"며 최대 현안을 언급했다.
"팹리스 회사로서 팹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크다. 주문이 많이 밀려와 제품을 대량 생산하려 해도 웨이퍼를 투입할 라인이 없다. 팹을 구하러 다니다 보면 이미 시장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이제 막 국내 팹리스 업체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시점에 파운드리 팹의 절대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서서히 일고 있다는 얘기다.
최 사장은 "국내 비메모리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든 대기업이든 팹리스 업체들에 대해 어느 정도 생산물량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주는 게 필요하다. 대만의 경우 이같은 공조가 잘되고 있다. 대만 TSMC나 UMC는 자국 기업을 위해 파운드리 팹 중 일정부분을 중소 팹리스 업체용으로 준비해두고 있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최 사장의 이같은 말에 이 사장도 공감을 표시했다.
"걱정이다. 국내에서 실질적인 파운드리 업체라면 동부아남 정도인데, 동부가 국내외 주요업체들의 수요를 맞춰주고 나면 국내 팹리스 업체들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여유가 많지 않다. 동부아남과 같은 팹이 하나 정도 더 있으면 좋겠다. 대만의 TSMC나 UMC가 대만 팹리스 업체들과 공조하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팹리스 업체와의 파운드리 업체의 공조체제 구축이 시급한 현안이다."
이들의 걱정은 팹의 부족에 따른 기술유출 문제까지 이어졌다.
이 사장은 "결국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라인을 찾지 못하면 팹리스 업체들은 대만이나 중국에 생산을 맡기게 된다. 이럴 경우 결국 기술 유출문제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국내의 팹리스 업체들이 이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이 단계에서 서서히 노하우가 나올 시점에 이를 해외에서 생산하면 원치 않아도 국내 연구개발 노하우가 해외에 공개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최 사장은 이같은 어려움의 해법으로 국내 팹리스 업체의 공조를 기반으로 파운드리 업체와의 공동 투자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현재 대부분의 파운드리 업체가 대만이나 중국에 있다. 대만 파운드리 업체인 TSMC나 UMC가 추가라인을 건설할 때 팹리스 회사들과 공동으로 투자해, 파운드리 업체는 투자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인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팹리스 업체들은 적절한 자본을 투자함으로써 안정적인 라인 확보와 공동 기술개발 등의 이점을 얻고 있다.
대만 팹리스 업체들은 공동 투자한 팹에서 각 사의 생산일정을 조절함으로써 다소 부족한 생산능력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라인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국내에서 본받아 파운드리와 팹리스의 공생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 사장은 이같은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면 충분히 투자할 의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도 이에 대해 이견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이같은 공동 팹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이제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이 됐다"는 말로 대신했다.
"과거에 팹리스 업체들이 돈을 모아서 팹을 하나 사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사실 그 때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팹을 사더라도 당시에는 충분한 물량을 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팹리스 업체들의 최근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전체 팹리스 업체들의 200㎜ 웨이퍼 월 소모량을 계산해 보면 올해 월 3만∼5만장 수준이 될 것이다. 이 정도면 파운드리 팹 하나는 충분히 돌릴 수 있는 규모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통 팹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본다"고 최 사장은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와 대기업의 인식 공유가 필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대화의 추를 거꾸로 돌려 대담의 첫머리로 가서 최 사장과 이 사장이 각각 영위하고 있는 주력 사업의 시장 현황에 대해 들었다.
LDI를 주력으로 하는 최 사장은 "최근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느끼고 있다"며 "상반기 대비 하반기에 저가ㆍ저사양 제품의 수요 위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며 LCD 시장의 침체 분위기를 전했다.
카메라폰의 핵심 부품인 CCP를 주력으로 하는 이 사장도 "대기업의 경우 카메라폰 수량은 증가하고 있지만, 중소 휴대폰 업체들은 수량이 줄고 있다. 중국으로 수출하는 중소기업이 특히 줄어드는 분위기로 전체 휴대폰 시장의 물량이 줄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다"며 시장 분위기를 언급했다.
세계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그렇더라도 생존을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게 CEO의 역할이다. 이들은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신규 시장 창출'을 첫 번째 해법으로 꼽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데는 2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우선 기업 스스로가 신제품을 빨리 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게 최선이다. 다음으로는 수요자와의 관계 개선이다. 대기업들과의 동반자적인 관계 형성을 통해 공동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해법이다" 최 사장이 강조한 난관 극복의 방법이다.
이 사장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어려운 시장을 극복하고, 미래를 헤쳐나가는 방법을 제시했다.
"멀티미디어라는 말이 수없이 나오던 몇 년 전 멀티미디어는 단순히 오디오 중심이었다. 이때 엠텍비젼이 생각했던 것은 결국 멀티미디어는 오디오에서 비디오로 변할 것이고, 그 시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해법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모두가 휴대하는 범용의 제품에 `눈'을 다는 것이었다. 휴대폰에 카메라를 탑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법이 카메라 컨트롤 프로세서(CCP)였다. 미래에 대한 해법도 비슷하다. 좋은 가격을 받으려면 남들이 안 하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수밖에 없다. 대기업도 경쟁사와 경쟁하기 위해 가격인하 전략을 펼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가격인하 정책을 나무랄 필요 없이 꼭 필요한 신제품을 개발하면 결국 생존의 길은 열리게 돼 있다고 본다"
이제 개화되기 시작한 국내 반도체 설계 업계에서 영업의 강자와 기술강자가 어떻게 서로를 격려하며 미래를 열어갈지 주목된다.
오동희기자ㆍ강경래기자
◇최선호 토마토LSI 사장은
삼성전자 출신 반도체 영업통
마케팅 중심 사업기반 다져
최선호 토마토LSI 사장(44세)은 광운대 응용전자학과 출신으로, 1986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1996년 퇴사할 때까지 반도체 영업만 11년 동안 해 온 반도체 영업통이다. 그는 특히 6년간을 대만에서 근무하면서 대만 반도체 시장과 비메모리 분야, LCD 등의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을 토대로 1999년 토마토LSI를 설립, LCD 구동 IC(LDI) 사업에 뛰어들었다.
영업통 답게 사업초기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대만 지사설립을 시작으로 중국 신천 법인 등 해외현지 네트워크 구축에 나설 정도로 마케팅 중심의 사업기반을 닦았다. 통상적인 기업이 제품이 생산된 후 판로확보에 나서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현재의 토마토LSI를 만든 원동력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최 사장은 2001년 ASIC설계사협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지난해 무역의 날엔 2000만불 수출탑과 개인포상으로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현재 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을 맡아 팹리스 업체들을 비롯한 국내 중소 비메모리 업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이성민 엠텍비젼 사장은
카메라 IC설계 연구원 경력
시장 중심 기술개발에 초점
이성민 엠텍비젼 사장(43세)은 서강대학교 반도체 공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989년부터 1998년까지 10년간 LG반도체에서 카메라 IC 설계 담당 연구원으로 근무한 기술자 출신이다. 그는 기술이 최우선이라는 일반적인 엔지니어의 마인드와는 달리, 우선 연구개발을 통해 상품을 시장에 내놓고 시장 반응에 따라 새롭게 기술을 개발하는 시장 중심의 엔지니어다.
휴대폰에 카메라를 달기 위한 카메라 컨트롤러 프로세서(CCP)를 개발하기에 전에 그는 우선 PC용 카메라를 개발해 시장 반응을 보고, MP3P 외장형 카메라와 CCP를 개발하는 단계를 밟아나갔다. 그의 첫 작품인 `제카'(제대로 된 카메라)는 아직도 PC용 카메라로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순탄하지 많은 않았다. 당초 MP3P 외장형 카메라의 수요가 클 것이라는 고객사의 요청에 이 물량을 크게 늘렸으나 시장의 반응이 냉담해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다.
그는 기술자라도 현장의 감각을 잊으면 당장 시장에서 실패한다는 신념에 따라 지속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동시에 시장의 반응을 체크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