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벼룩만화 총서(8권)
저자: 드니부르도, 조안스파르 등
출판사: 현실문화연구
가격: 권당 1000원
“손바닥 크기의 만화에서 전해오는 커다란 감동”
어릴 때 엄마에게 잔돈을 얻어 풍선껌을 사는 재미가 컸다. 껌도 껌이려니와 그 안에 들어있는 조그만 쪽지만화를 덤으로 얻는 낙 때문이었다. 벼룩만화 총서를 손에 받아들자, 구멍가게 문턱을 넘기도 전 성급히 껌 포장을 뜯어읽던 그 조그만 만화책의 설레임이 기억났다. 어른 손바닥에 울라갈만한 앙증맞은 사이즈의 벼룩만화 총서는 ‘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이 작은 판형을 유쾌하게 배신하는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만화 작가들로부터 장편만화보다 단편만화가 더 어렵다는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한정된 지면과 분량에서 팽팽한 긴장을 잃지 않으며, 기발한 반전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창의력과 독창성을 보여줘야만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벼룩만화 총서는 독자인 나에게 만화에서 기대하는 재미를 충분히 채워준 만화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작은 감동까지 보너스로 얻게 되었으니 권당 1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한다면 투자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까.
8권으로 이뤄진 벼룩만화 총서는 각각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더구나 만화의 기법과 형식도 서로 너무 다르다. 즉 요것조것 골라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얄팍한 부피지만 다루는 주제들은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담고 있고, 무거운 시대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을 들여다 보면서 즐거워하는 내게 어떤 이는 ‘엽기적인 만화’ 라는 평을 던지기도 했지만, 나는 그 친구가 이 책들이 보여주는 시각적 독창성과 주제구현에서 드러나는 과감함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총서에는 인간의 자연적이고 아름다운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는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이웃들’, 얼핏 안되는 놈은 안된다는 머피의 법칙을 보는 듯하지만 사실은 희생적인 모성이 허무하게 배신당하는 세태를 가슴아프게 보여주는 작품 ‘산란주의’가 있다. 특히 ‘죽음’에서 죽음으로 상징되는 주변의 재앙과 재난에도 불구하고 생명 본능을 잃지 않는 귀여운 주인공의 유쾌한 이미지는 문득 전쟁의 폐허 위에서 불발탄을 갖고 놀며 맑게 웃는 어린이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대사 한마디 없이 다섯 손가락의 이미지로만 전개된 ‘야만’은 사형제도의 야만성을 여지없이 폭로한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사형 집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악수를 나누는 관계자의 두 손에서는 분노를 넘어선 섬뜩함이 느껴진다. 가부장 사회의 과중한 책임에 억눌린 어느 가장이 벌이는 엉뚱하고 황당하고 유쾌한 일상의 반란을 보여준 ‘황당한 氏 이야기’, 현대 사회에서 생명이 덧없이 유린당하는 상황을 비꼰 ‘목매죽은 꼬마의 발라드’, 어항 속 작은 금붕어가 감히 어항 밖 기상천외한 삶을 꿈꾸며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그러나 그 결말은 얼마나 촌철살인인지!) ‘금붕어, 죽음을 택하다’에 나는 허무한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나 살쪘지, 그렇지?”라고 묻는 엄마와 그 물음에 재빨리 “아냐, 보기 딱좋아.”를 외쳐야만 하는 아빠. 그럼에도 끊임없이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엄마와 질책의 대상이 되는 아빠. 정신병리적인 현대의 가족 구조에서 자란 상처입은 어린 아이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엄마는 문제가 있다’를 읽은 후, 나는 혹시 이것이 오늘의 내 모습이 아닌가라는 씁쓸함에, 다이어트 광고지로 도배된 여성 월간지를 슬쩍 치워버리고 말았다.
벼룩 만화총서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과 표현 방식은 만화라는 매체에 대한 선입견을 말끔히 없애 주었다. 우리 주위엔 어른들을 위한 만화, 소위 발랄한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작품들도 이미 상당히 나와있다. 그렇지만 벼룩만화 총서를 접해 본다면, 그런 작품들도 다분히 획일적이고 평범한 상상력의 나열에 그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작은 판형, 많지 않은 분량이라는 동일한 조건 속에서 각 작가가 보여주는 기막힌 발상과 역량이 평범한 독자인 내게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 드니부르도, 조안스파르 등
출판사: 현실문화연구
가격: 권당 1000원
“손바닥 크기의 만화에서 전해오는 커다란 감동”
어릴 때 엄마에게 잔돈을 얻어 풍선껌을 사는 재미가 컸다. 껌도 껌이려니와 그 안에 들어있는 조그만 쪽지만화를 덤으로 얻는 낙 때문이었다. 벼룩만화 총서를 손에 받아들자, 구멍가게 문턱을 넘기도 전 성급히 껌 포장을 뜯어읽던 그 조그만 만화책의 설레임이 기억났다. 어른 손바닥에 울라갈만한 앙증맞은 사이즈의 벼룩만화 총서는 ‘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이 작은 판형을 유쾌하게 배신하는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만화 작가들로부터 장편만화보다 단편만화가 더 어렵다는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한정된 지면과 분량에서 팽팽한 긴장을 잃지 않으며, 기발한 반전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창의력과 독창성을 보여줘야만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벼룩만화 총서는 독자인 나에게 만화에서 기대하는 재미를 충분히 채워준 만화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작은 감동까지 보너스로 얻게 되었으니 권당 1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한다면 투자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까.
8권으로 이뤄진 벼룩만화 총서는 각각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더구나 만화의 기법과 형식도 서로 너무 다르다. 즉 요것조것 골라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얄팍한 부피지만 다루는 주제들은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담고 있고, 무거운 시대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을 들여다 보면서 즐거워하는 내게 어떤 이는 ‘엽기적인 만화’ 라는 평을 던지기도 했지만, 나는 그 친구가 이 책들이 보여주는 시각적 독창성과 주제구현에서 드러나는 과감함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총서에는 인간의 자연적이고 아름다운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는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이웃들’, 얼핏 안되는 놈은 안된다는 머피의 법칙을 보는 듯하지만 사실은 희생적인 모성이 허무하게 배신당하는 세태를 가슴아프게 보여주는 작품 ‘산란주의’가 있다. 특히 ‘죽음’에서 죽음으로 상징되는 주변의 재앙과 재난에도 불구하고 생명 본능을 잃지 않는 귀여운 주인공의 유쾌한 이미지는 문득 전쟁의 폐허 위에서 불발탄을 갖고 놀며 맑게 웃는 어린이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대사 한마디 없이 다섯 손가락의 이미지로만 전개된 ‘야만’은 사형제도의 야만성을 여지없이 폭로한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사형 집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악수를 나누는 관계자의 두 손에서는 분노를 넘어선 섬뜩함이 느껴진다. 가부장 사회의 과중한 책임에 억눌린 어느 가장이 벌이는 엉뚱하고 황당하고 유쾌한 일상의 반란을 보여준 ‘황당한 氏 이야기’, 현대 사회에서 생명이 덧없이 유린당하는 상황을 비꼰 ‘목매죽은 꼬마의 발라드’, 어항 속 작은 금붕어가 감히 어항 밖 기상천외한 삶을 꿈꾸며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그러나 그 결말은 얼마나 촌철살인인지!) ‘금붕어, 죽음을 택하다’에 나는 허무한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나 살쪘지, 그렇지?”라고 묻는 엄마와 그 물음에 재빨리 “아냐, 보기 딱좋아.”를 외쳐야만 하는 아빠. 그럼에도 끊임없이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엄마와 질책의 대상이 되는 아빠. 정신병리적인 현대의 가족 구조에서 자란 상처입은 어린 아이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엄마는 문제가 있다’를 읽은 후, 나는 혹시 이것이 오늘의 내 모습이 아닌가라는 씁쓸함에, 다이어트 광고지로 도배된 여성 월간지를 슬쩍 치워버리고 말았다.
벼룩 만화총서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과 표현 방식은 만화라는 매체에 대한 선입견을 말끔히 없애 주었다. 우리 주위엔 어른들을 위한 만화, 소위 발랄한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작품들도 이미 상당히 나와있다. 그렇지만 벼룩만화 총서를 접해 본다면, 그런 작품들도 다분히 획일적이고 평범한 상상력의 나열에 그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작은 판형, 많지 않은 분량이라는 동일한 조건 속에서 각 작가가 보여주는 기막힌 발상과 역량이 평범한 독자인 내게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