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박한나의 배터리ON'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배터리 분야의 질문을 대신 해드리는 코너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을 비롯해 배터리 밸류체인에 걸쳐 있는 다양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낱낱이 전달하고자 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비영리기관인 한국배터리산업협회·연구조합 노조가 26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성과 압박이 낮은 협회에서 총파업이 이뤄지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 노사갈등인가요? 뒷단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것인가요?"
한국 배터리산업 정책의 중간 허브 역할을 담당하는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노조가 설립 이후 27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전면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노조가 지난 20일 서울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회관 앞에서 연차투쟁을 한 지 불과 일주일만입니다.
기존에는 개별 근로자가 본인의 연차를 사용해 시위에 참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번주부터는 노조원 전체가 업무를 전면 중단하는 총파업 형태로 전환해 쟁의 행위 강도를 높였습니다.
전면 파업으로 치닫게 된 결정적 불씨는 사측이 지난 23일에 노조 측에 보낸 입장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입장문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의 노조 시위로 인해 할당관세 등 업무 피해가 발생, 형사고발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경 대응 계획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조 측은 지난 일주일 동안의 연차 소진 방식의 시위로 협회와 배터리업계에 피해를 준 사례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한 노조 관계자는 "오히려 쟁의행위 중에도 노조원들은 회원사 요청이 있을 경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업무 협조를 위해 노력했고 사측에서도 자체적으로 해결해 피해 사례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양측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면 승진 제도 마련과 급여체계 개선 여부가 파업의 도화선이 됐지만 협회 경영진의 불투명한 운영방식과 누적된 내부 불만이 맞물리며 확산된 양상으로 풀이됩니다.
우선 노조 측은 협회 실무를 총괄하는 상근 부회장의 취임 이후 지난 약 2년 6개월 동안 단 1건의 승진 심사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 한 매년 말 정기정인 승진 심사라도 연 1회 시행하도록 취업 규칙에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협회 측은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승진 관련사항은 인사와 경영권의 자율사항으로 단체 교섭의 대상이 아니며, 사용자가 교섭에 응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지난주 두 차례의 노사 교섭에도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또 노조 측은 협회 경영진이 성과급 지급기준 변경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경영진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함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유독 성과급 지급 기준에서만 상여금 제외를 주장하며 급여 체계의 단순화 시행 시기를 미루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노조 측은 "이번 임단협도 총 8차례에 걸쳐 진행됐지만 사측은 실질적인 결정권이 없는 임원만 참석시켰습니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주관한 두 차례 최종 조정 회의에서도 같은 임원이 참석해 '자신에게는 결정권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습니다.
협회 측은 노조 측의 요구를 현행 보수 규정상 국내 배터리 기업들로 이뤄진 이사회의 의결 사항이라고 반박합니다. 경영진은 노조 측이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하기를 희망한다면 동의하지만 이사회에서 부결될 경우엔 이를 수용한다는 서면 각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노조 안팎에서 "참아오던 불만이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란 목소리가 나옵니다. 상근부회장이 자신의 자녀 결혼식에 회원사 임직원들의 참석 여부를 묻는 전화를 직원들에게 돌리게 한 사건부터 의전 차량을 2억원대 초반인 BMW i7으로 계약했다가 위약금을 물어낸 일까지 누적된 불만이 결국 조직적 행동으로 표출됐다는 것입니다.
협회 측은 이에 대해 "협회는 법인차량을 유사협회와 같은 수준인 G90을 사용해 왔는데 교체 시기 도래를 계기로 협회 특성을 감안해 수입차임에도 회원사 배터리가 장착된 BMW 차량을 선정한 것"이라며 "비용도 담당부서에서 G90 비용과 유사 수준으로 설계했습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회원사 배터리를 장착한 우수 국산 전기차인 EV9이 나온 후에는 이 차량을 사용 중으로, 호화 외제차 사용을 비난한다면 K-배터리를 팔 수 없게 될 것"이라며 "G90보다 저렴한 현재 EV9의 사용에 대해서는 지적을 하지 않는 것은 현 경영진의 비방 목적에 지나지 않습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경영진의 행태에 협회는 지난 약 2년 동안 총 18명의 임직원이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전체 임직원 중 31.6%에 해당하는 근로자가 회사를 떠난 수치입니다. 특히 10~11명의 팀장 체제에서 4명이 퇴사하면서 중간 관리급 책임자들이 대거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협회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협회 측은 "협회의 보수, 수당, 복지여건, 근무환경이 유사 협회와 비교할 때 최고 수준으로 이는 현 경영진의 부임 후 거둔 큰 성과"라며 "팀장급 퇴사는 관련 대기업 취업, 육아, 가업승계 등의 사유로 전직한 것으로 파악되며 승진을 이유로 퇴사한 경우는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협회는 현재 승진 관련 요구 사항에 의한 노조의 파업은 법규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법무법인의 법률 자문을 의뢰한 상태입니다. 결과에 따라 노조에 쟁의에 대응할 계획인 만큼 노사 간 갈등은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노사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받아 온 협회의 지원 업무 등의 행정 차질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당장 한국자동차환경협회와 코엑스, 배터리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EV 트렌드 코리아 2025'부터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회원사인 기업들은 협회의 기능 정지로 대선을 앞두고 정부 정책 대응과 대외 협력 업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단순 노사 갈등을 넘어 배터리 정책의 실행 기반에서 균열이 터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회장사인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회원사인 배터리 기업들은 지난 19일 한국배터리산업협회·연구조합지부의 준법 투쟁 관련 이메일을 받고 나서야 사태를 인지했다는 입장입니다. 노사간 임단협이 총 8차례나 진행됐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주관한 두 차례 최종 조정회의까지 안건이 올라가 최종 결렬된 것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산하 한국배터리산업협회·연구조합지부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지난달 30일 총 3번의 조정 절차를 거쳤음에도 최종 결렬됐습니다. 결국 이달 1일 쟁위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한 결과 조합원 91% 찬성으로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했습니다.
한 국내 배터리 기업 관계자는 "협회가 보이진 않지만 기업의 대외 협력, 정책 대응 등의 대정부 창구 기능을 합니다"라며 "기업들이 타격을 입는다기 보다는 불편해집니다. 자체적으로도 사태 파악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사실 들여다보면 노조가 지적하는 문제가 단체협약 갈등 성격도 있지만 경영진의 리더십 문제"라며 "기업이나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하기엔 부담이 큰 성격의 파업인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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