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4사가 더불어민주당의 횡재세 재추진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비산유국의 정유업은 원유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로 해외 산유국이나 원유채굴회사들이 누리는 직접적인 이득과는 다른 상황임을 논리적으로 강조해왔음에도 통하지 않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전문가들 역시 횡재세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8일 정치권과 정유업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국내 정유4사를 대상으로 한 횡재세 특별법 도입을 처분적 법률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초과이윤세로 불리는 횡재세는 기업이 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을 얻은 경우 초과이익에 대해 추가적으로 징수하는 세금이다.
정유업계는 21대 국회에서 이중과세와 형평성 논란으로 좌초된 횡재세 법안의 재추진 조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해외 석유회사들은 원유 시추를 통해 유가 상승의 이득을 직접적으로 누리는 반면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한 후 정제해 판매하는 만큼 사업 구조가 다르다는 점을 지속 강조해왔음에도 정유사가 또 이번에 횡재세 대상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초과이윤세를 구체화한 영국이나 인도 등 국가들은 원유를 들여와 정제한 후 휘발유, 경유 등의 석유제품으로 시장에 판매하는 정유사에 대해선 내수경제 안정의 중요성을 인정해 횡재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내 정유사는 원유를 석유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설비투자와 기술 개발도 해온 만큼 횡재세는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횡재세 논의가 본격화한 2022년과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도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022년은 고유가로 인해 정유 4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치인 약 14조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는 약 5조원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횡재에 대한 법률적 개념이 모호한 상태에서 손실시 보전책은 없고 업계 실적 개선이 될 때만 징벌적으로 과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특정업종의 일시적 이익에 대한 횡재세는 타산업과의 형평성에 위배되며 사실 정유업계는 영업이익률 1.8%의 박리다매 저마진 구조산업으로 해외석유 메이저와는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급격한 이익 변동성에 단기간 얻은 이익만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장기적인 산업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앞선 2020년 정유 4사는 5조320억원의 합산 영업손실을 냈다. 그러다 다음 해인 2021년에는 7조56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정유업계는 조 단위의 적자를 기록했을 때는 정치권이 해 준 것이 있느냐며 볼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총선 과정 중 횡재세 추진을 강조한 데 이어 이날도 고유가와 고금리, 고환율 등 3중고를 이유로 특단의 조치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유사들의 초기 투자비용과 연구개발, 시설투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고유가에 일시적으로 수익이 많다고 세금을 매기는 것이 자본주의에 적합한지 따져봐야 한다"며 "그렇다면 적자를 낼 때 정부가 보존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경제연구실장은 "이번에는 거대 야당에서 추진하는 법안이지만 입법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점이 입법 취지와는 다르게 최종 소비자에게 가격이 전가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이재명(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