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은 낮추고, 물가 전망은 높게 다시 조정했다. 경기는 당초 예상보다 회복이 늦어지고, 물가는 더 오를 것으로 본 것이다.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제 불황 속 물가 상승)'의 늪에 빠질 확률도 높아지고 있다. 만일 '물가 목표' 달성 시기가 늦춰지면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 현재의 고금리 국면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30일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내년 성장률 전망치로 2.1%를 제시했다. 지난 8월 전망치(2.2%)보다 0.1%포인트(p) 낮아졌다. 수출 부진이 점차 완화되고는 있지만 국내외 통화긴축 장기화와 더딘 소비 회복세 등이 영향을 미쳤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종전 1.4%를 유지했다.
전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을 기존 2.1%에서 2.3%로 올린 것을 고려하면 한은이 내년 한국경제를 더 어렵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높아졌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종전보다 0.1%p 높은 3.6%, 내년 물가 상승률은 0.2%p 오른 2.6%로 전망했다. 물가는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 하락 등으로 기조적인 둔화 흐름을 이어가겠지만 예상보다 높아진 비용인상 압력의 영향이 8월의 물가 전망 경로를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정례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성장률, 물가 전망에 따르면 내년 말이나 2025년 초 쯤 물가상승률이 2%대 초반에 수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은은 지정학적 갈등이 다시 고조돼 원자재가격이 상승할 경우 내년 성장률은 1%대 후반으로 낮아지고, 물가상승률은 2.8%까지 높아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취업자 수 증가규모는 올해 34만명, 내년 24만명으로 점차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2.7%에서 2.9%로 다소 상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3.50%로 또다시 동결했다.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대내외 기존 금리를 유지하며 대내외 변수를 관망하는 모습이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금리 동결 배경에 대해 "물가상승률이 당초 예상보다 높아졌지만 기조적인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가계부채 증가 추이와 대외여건의 불확실성도 높은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이미선기자 already@dt.co.kr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