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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지리각각] 재건축 겉멋 경쟁, 결정적인 게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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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층 발코니에 9m 키큰나무가 자란다
위압감 외관에 몰두하는 서울 재건축
수직숲, 밖으로 개방된 열린 치유공간
조망에 치중된 원경보다 집안의 근경
조류 모르면 현 재건축도 10년후 구물
[이규화의 지리각각] 재건축 겉멋 경쟁, 결정적인 게 빠졌다


명품의 고장 밀라노는 고밀도 도시다. 외곽지역을 포함하면 이탈리아 최대 광역 도시권을 형성한다. 알프스와 아펜디노 산맥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분지형 도시로 공기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 때문에 스모그가 자주 발생한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때 이탈리아 최악의 감염확산과 봉쇄를 겪어야 했다. 집밖 외출이 억제된 가운데 이 도시의 한 아파트가 진가를 발휘했다. 보스코 베르티칼레(Bosco Verticale, '수직숲'이라는 의미)라는 27층 아파트단지다. 이 아파트가 주목받은 이유는 각층 가구마다 널찍한 발코니에 나무와 식물을 심을 수 있게 설계돼 집안에서도 자연을 접하고 외부로 열린 개방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스코 베르티칼레의 독특한 설계는 이전에도 시선을 끌었지만, 팬데믹을 겪으며 세계로 다시 한 번 전파됐다. 국내에도 확장형 베란다 외부에 발코니를 들이는 아파트 설계가 소개되기도 했다. 3년에 걸친 전 세계적 팬데믹은 주거공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코로나19가 팬데믹의 끝은 아닐 것이다. 또 다시 봉쇄와 고립이 강요될 때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주거공간의 구상이 필요하다. 하물며 한국인 주거형태의 74%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이고 보면, 이는 현실적인 문제다. 비단 팬데믹 때문만이 아니다. 녹화(Greening)와 개방감은 삶의 질을 크게 높여준다. 그런데 아직 국내는 '주거공간 그리닝'이 초보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저마다 '최고급'을 내세우는 재건축 단지 설계에 이 부분에 대한 고려는 미흡하다. 정작 불요불급한 곳에 자원이 투입되는 경향이 있다.

◇위압적 스카이브릿지, 커튼월, 거대한 출입구 모뉴먼트

대규모 재건축 단지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동간 스카이 브릿지를 만들어 조망과 커뮤니티 시설을 들인다고 자랑한다. 단지 내외와 조형적 조화가 된다면야 없는 것보다 백번 낫다. 그러나 한강 조망권 확보니, 산 조망 확보니 하며 억지로 만드는 스카이 브릿지는 위안보다는 심리적 위압감을 자아내는 흉물이 될 수 있다. 평당 건축비도 높인다. 비용 대비 효용이 얼마나 될까 고려해야 한다.

매끈한 외관을 위해 커튼월식 외벽 마무리도 문제가 많다. 채광 등의 장점이 있지만, 통풍에 불리하고 여름에 실내온도를 높이며 겨울에 단열이 잘 안돼 냉난방비 낭비가 심하다. 투명창이라고 하지만 실은 안팎이 단절돼 폐쇄된, 스스로 친 '벽'일 뿐이다. 단지 출입구의 거대한 모뉴먼트(조형물과 기둥) 역시 과연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 아파트단지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곳'이라는 으름장을 놓는 듯하다. 모든 아파트단지들이 이렇게 단지 입구에 거대한 시설물을 설치하면, 그건 우리 사회 전체의 '벽'이 된다.

이런 외관 치장은 수도권의 고가 아파트 재건축 단지일수록 심하다. 특히 한강 변과 그 근처의 재건축 단지들은 한강 조망을 위해 무리한 설계를 무릅쓴다. 심지어 압구정동의 한 재건축 설계의 경우 현 지형을 변경해 수십 미터의 인공 언덕을 만든다고 한다. 그것이 단지 밖 확장된 구역과 조화를 이루는지도 챙겨봐야 한다.

◇소박하지만 쿨하고 세련된 보스코 베르티칼레

보스코 베르티칼레는 미래 공동주택 건축이 어때야 하는지 보여준다. 자연친화적이고 실험적인 건축으로 유명한 스테파노 보에리(Stefano Boeri)가 디자인했다. 처음엔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팬데믹을 겪으며 보에리의 아이디어가 옳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갈수록 '그리닝 건축'은 확산하고 있다.

보스코 베르티칼레의 기본 디자인 개념은 주거공간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각 층 각 가구의 발코니에는 많은 나무와 식물이 식재돼 있다. 테라스를 엇갈려 설계해 최대 9m의 교목도 자랄 수 있다. 약 900그루의 키큰 나무, 5000그루의 관목, 1만1000그루의 다년생 식물로 덮여 있다. 이를 평면으로 환산하면 약 3만㎡의 숲과 맞먹는다고 한다. 3000㎡의 부지가 그 열 배의 도시숲을 만든 셈이다. 여기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발코니 식물 식재로 도시의 공원 조성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아파트는 여름엔 푸른색으로 무성하고 가을엔 단풍이 곱게 진다. 빌딩의 파사드는 단순한 시멘트나 벽돌 표면이 아닌 '녹색 커튼'으로서 사계절 다양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생산해 도시 오염 정화에도 도움을 준다. 발코니 녹지는 건물 내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여름에는 나뭇잎이 그늘을 제공해 에어컨 가동을 줄이고, 겨울에는 단열재 역할을 해 난방비를 절감할 수 있다.
환경적 지속가능성은 보스코 베르티칼레의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태양광 패널, 빗물 수집시스템, 생활용수 재활용 시스템 등 다양한 지속 가능한 기능을 갖췄다. 고층의 아파트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공공 접근성도 보완했다. 주거용이지만 저층에는 레스토랑과 각종 숍 등 쉽게 접근 가능한 공간을 들여 활기를 불어넣었다.

보스코 베르티칼레는 그리닝에 초점을 두되 다른 친환경 지속가능성에도 이정표적 모델이 되고 있다. 건축가와 도시계획가,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주거용 공동건물에 수직 녹지공간을 조성하자는 결정을 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보스코 베르티칼레가 호화 아파트냐 하면, 결코 아니다. 밀라노 중산층이 사는 소박한 아파트다. 그럼에도 생각을 조금 바꾸어 쿨하고 세련된 주거공간을 창출할 수 있었다.

보스코 베르티칼레의 성공은 세계 각지로 파급됐다. 보스코 베르티칼레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완공된 시드니의 주거단지 '원 센트럴 파크'도 수직 정원를 통해 시드니 도심의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 2020년 완공된 뉴욕 맨해튼의 주거용 초고층 빌딩 젠가타워도 널리 알려진 식물 식재를 위한 발코니 빌딩이다.

◇미래 바람직한 도시 공동주거공간은 '자연성'에서 출발

현대 도심 건축은 르네상스 석조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이상, 시간이 흐르면 조류에 낙후되고 노후화된다. 10여년 전 재건축의 총아였던 구반포의 R단지, 신반포의 G단지와 그 옆에 최근 짓고 있는 재건축 단지를 비교해보라. 전체적 디자인, 건물 배치도, 평면, 정원 등에서 '세련성'의 차이가 있다. 현재 짓고 있는 재건축 단지들도 미래 주거공간과 비교해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 높다. 따라서 조류를 앞서 반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리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시설물을 통해 한강조망이니 내장재 고급화니 하며 판에 박힌 차별화 요소를 내세울 게 아니라 보다 차원 높은 고민을 하라는 것이다.

그 기본에 '그리닝'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이다. 자연과 연결을 강조하는 생체친화적 디자인으로서 발코니 식재, 충분한 자연 채광, 재생 에너지 및 순환형 물 이용 기술 등이 포함된다. 한마디로 도심 각 가구마다 숲을 가꿔 심리적 안정을 꾀하고 신선한 공기공급을 스스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조망에 지나치게 경도된 원경(遠景)와 외관 경쟁은 본질적 주거 공간의 품질로부터 벗어나 있다. 미래 도시 공동주거공간의 주안점은 기술과 환경 변화에 따라 그리닝, 지속가능성, 고립 속 치유 등에 맞춰져야 한다. 정신적 신체적 건강, 교통, 환경 변화에 맞춘 근경(近景), 즉 주거공간 자체에 자연과 빛(채광)을 최대한 들이는 설계가 더 중요하다. 또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팬데믹에 대비해 고립 속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서 근경이 더 삶의 질을 높이는 주거공간으로 평가될 것이다. 이 같은 모델로서 보스코 베르티칼레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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