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의회가 22일(현지시간)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에 대한 대응 조치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하면서 세계 원유 운송로 봉쇄가 실제적 리스크로 등장했다. 최종 결정은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서 한다지만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 카드를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조선 두 척이 회항하는 일도 벌어져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페르시아만 방향으로 호르무즈 해협 초입에 들어서던 코스위즈덤레이크호, 사우스로열티호 등 초대형 유조선 2척이 미국의 이란 폭격 직후인 22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초입에서 항로를 정반대 아라비아해 방향으로 급변경했다. 두 유조선의 항로 변경에 특별한 '이상 징후'는 없었지만 만약의 위험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만약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한국에 미칠 파장은 상상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한국은 원유수입의 72%(2023년 기준)를 중동에서 수입하고 중동산 원유의 99%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천연가스(LNG)는 31%를 중동으로부터 수입한다.
정부는 국내 원유 비축유가 정부 90일분에 민간을 합쳐 200일 정도라고 하지만 봉쇄 자체만으로 세계 석유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막대할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해상 운송량의 약 4분의 1, LNG의 5분의 1이 지난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국제 에너지가격 폭등으로 직결된다. JP모건은 호르무즈해협 봉쇄 시 국제유가가 120~130달러로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호르무즈 해협 카드를 이란이 활용한다면 단박에 봉쇄에 들어가기 보단 강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 세 가지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이란 최고안보회의가 봉쇄 결정을 미루면서 정치적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 제한적 상징적 봉쇄를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응을 떠보는 저강도 대응, 해상 통과를 완전 차단해 군사 충돌의 도화선을 당기는 고강도 봉쇄다.
저강도 차단에도 석유와 가스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국제유가 상승과 운송비 인상, 환율 불안 등 복합적인 압력에 직면한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이후 국제유가는 10% 뛰었고 22일(이란 현지시간) 미국이 주요 핵시설을 타격한 후 추가 상승했다.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은 6주 만에 상승 전환됐고, 기업의 수익성과 소비자 물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동 해상 루트의 불안정성이 글로벌 공급망까지 흔든다면, 반도체·정유·자동차 등 한국의 수출 주력 산업도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호르무즈 해협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23일 글로벌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에서 미국의 이란 공격이 에너지 채널을 넘어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이것(미국의 이란 공격)은 매우 불확실한 환경에서 또 다른 불확실성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에너지 가격에서 1차적 충격이 나타났지만 "2차 및 3차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주요 경제의 성장 전망에 타격이 되는 더 많은 혼란이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글로벌 성장 전망이 하향 조정되는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실제 봉쇄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이란도 이 해협을 통해 원유와 LNG를 수출하기 때문이다. 또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게 되면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페르시아만 산유국은 물론 이 해협을 통해 원유와 LNG를 수입하는 중국 일본 인도 한국 등을 적으로 돌릴 우를 범하게 된다. 미국 JD 밴스 부통령은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면서도 만약 봉쇄 시도를 하면 "자살 행위"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