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에서 논의 중인 세법 개정안이 한국 산업에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 완성차 기업과 태양광·풍력 기업에는 직접적인 타격이, 배터리에는 일부 해소된 불확실성이 교차하며 산업 지형 변화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미 상원 재무위원회는 17일(현지시간)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제정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해 각종 청정에너지 사업에 지원해온 세액공제를 축소하거나 조기에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안했다. 앞서 하원을 통과한 법안과 마찬가지지만 세액공제의 폐지를 더욱 서두르는 게 골자다.
◇완성차, IRA 혜택 조기 종료 직격탄= 우선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는 전기차 구매자에 주는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30D)는 원래 2032년 말에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시한을 법안 제정 후 180일로 앞당겼다. 상원안은 세액공제 종료까지 남은 기간이 불과 6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게 돼 기존보다 최대 약 7년 가까이 당겨진 구조다.
지난 5월 22일 하원에서 가결된 하원 법안은 폐지 시한을 2026년 12월 31일로 6년 앞당겼다. 여기에 내년의 경우 세액공제 대상을 지난 16년간 미국에서 판매한 전기차가 20만대를 넘지 않는 자동차 업체의 전기차로 제한했다.
또 상원 안에는 차량 대여(리스)와 렌터카 등 상업용 전기차에 제공하는 세액공제(45W)도 법안 제정 180일 이후에 폐지한다. 그간 현대자동차그룹은 상업용 전기차 판매 확대를 추진해왔지만 중장기 전략 수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자문위원은 "예견된 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IRA 폐기 흐름은 시장에 이미 인지돼 있었다"며 "국내 완성차 업계가 세액공제 종료를 염두에 두고 개발 중이던 저가형 전기차 모델들의 출시 시점과 시장 투입 전략의 재조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큐셀 등 태양광 '초비상'= 상원법안은 IRA의 청정전력생산세액공제(45Y)와 청정전력투자세액공제(48E)의 경우 풍력과 태양광 발전에 대해 폐지 시점을 2028년으로 앞당겼다. 이에 따라 2026년에는 원래 받던 세액공제의 60%를, 2027년에는 20%만 받게 된다.
법안 시행 후 60일 이내 건설을 시작한 프로젝트에만 세액공제를 제공한다는 하원 법안보다는 완화됐으나 미국 태양광 시장의 위축은 불가피해졌다. IRA 세제 혜택을 전제로 공격적 투자를 단행한 한국 태양광 기업들에게는 법안의 조기 종료 기조가 중장기 수익성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은 미국 조지아주에 연간 8.4기가와트 규모의 생산 기지 '솔라 허브'를 구축했다. OCI홀딩스는 내년 상반기 상업 생산을 목표로 텍사스에 2GW 규모의 태양광 셀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풍력 부품의 경우도 폐지 시점을 2028년으로 앞당겼다. 핵심광물은 2033년에도 세액공제 일부(25%)를 제공하고 2034년에 완전 폐지하도록 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미국 에너지부(DOE)도 내년도 예산에서 재생에너지·수소 관련 예산을 크게 줄이고 오일·가스 부문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발전 단가만 놓고 보면 태양광이 저렴하지만 백업 전력이나 송배전망 보완까지 고려하면 비용이 더 높다는 트럼프 정부의 인식으로 볼 때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배터리 AMPC 유지에 '숨통'= 반대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45X)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제시됐다. 앞선 하원안은 AMPC 종료 시점을 기존 2032년에서 2031년으로 1년 앞당겼지만 이번 상원안은 현행대로 2032년에도 25%의 세액공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또 상원은 AMPC 크레딧 교환도 유지하도록 했다. 하원안은 2027년 종료 예정인 제 3자 AMPC 양도 조항을 2028년 이후 폐지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이대로 통과되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은 현행 수준의 보조금을 지속해서 받을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상원 법안은 하원 법안의 중국 견제를 유지, '금지된 외국 단체(PFE)'의 정의를 더 명확히 해 국내 기업 입장에서 불확실성을 오히려 해소했다. 중국산 원료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세금 혜택은 0원이었던 한국 배터리 기업 입장에서는 공급망의 현실적 부담을 낮춘 것이다.
실제 하원 법안은 기존 전기차 세액공제(30D)에서 쓰이던 '해외 우려 기관(FEOC)' 기준을 AMPC(첨단제조세액공제)에도 적용하며 이를 금지된 외국 단체(PFE)로 바꿨다. 중국 기업 관련성에 따라 세부 등급을 통제 수준이 강한 지정외국단체(SFE), 상대적으로 통제 수준이 약한 외국영향단체(FIE)까지 나눴다.
상원은 또 중국산 원자재 비율이 2026년 40%, 2027년 35%, 2028년 30%, 2029년 20%, 2030∼2032년 15% 등 일정 비율이 넘지 않으면 AMPC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중국이 장악한 글로벌 공급망 현실을 고려한 조정이어서 오히려 유리한 것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결국 상원과 하원안이 합쳐서 하나의 법안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구체적인 합의안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상하원 모두 중국 견제 기조에 AMPC가 유지되는 법안이어서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박한나기자park27@dt.co.kr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이12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이날 청문회는 '대통령의 2026회계연도 재무부 예산안 및 세제 개편'을 주제로 열렸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