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취임 후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 입성해 첫 인선을 발표하면서 "필기구를 제공하는 직원도 없고, 컴퓨터도, 프린터기도 없다. 황당무계하다"고 했다. 결재시스템도 모두 쓸 수 없어 종이에 서명을 해야하나 고민했다고 하니, 윤석열 정부가 정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백지상태를 인수인계한 셈이다.
이재명 정부는 새 정부가 일을 하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전임 정부가 정권 초 일을 할 수 없게 방해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탄핵 정국 속에서 소위 '알박기'를 계속해 10명 중 7명의 공공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았고, 10명 중 4명은 2년 이상 남았다는 것만 봐도 정황상 십분 이해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전임 박근혜 정부 캐비닛에서 문건이 나왔다면서 브리핑을 한 적이 있다. 2018년에는 국방부로부터 '촛불집회 계엄령 검토 문건'이 나왔다면서 언론에 설명부터 한 적이 있다. 자료를 남겼더니 '전임 정부가 어떻다'면서 이런저런 해석이 붙어 설왕설래 될 것이라면, 처음부터 논란이 될만한 여지조차 주지 않겠다는 행동 또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권의 어느 진영과 정권도 상식적·원론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점점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역대 정권마다 "우리 정권은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 받았다"는 말이 반복 되는 것을 알면서도, 더더욱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일만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전임 정부에 '증거인멸'을 주장하며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자료를 남겨두면 증거를 남겨둔 셈이되고, 자료를 남기지 않으면 일을 못하게 방해했다는 식이다. 이런 식이면 장단을 맞춰주고 싶어도 도저히 맞춰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지금의 상황은 일반적인 인수인계의 의미인 '전임은 후임이 업무에 빠르게 적응해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인수인계에 협조하며 도와주고, 후임은 전임이 해온 일을 존중하면서 자기가 해나갈 일을 설계해나가는 것'과는 정반대다. 후임 정부가 전임 정부가 해온 일을 적폐로 보니 당연히 전임정부가 인수인계에 협조 할 리 없다. 전임 정부 역시 나라를 위해서 후임 정부가 일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충실한 인수인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인수인계가 잘 될 리가 없다.협조도, 존중도 없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현 정치권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드러난 대목이다. 이는 직관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지만 오로지 정치권에서만 통용된다.임재섭기자 yjs@dt.co.kr
제21대 대통령선거 하루 전인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부근 도로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현수막이 걸린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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