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원화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특정 자산에 가치를 고정한 가상화폐) 발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한 '지니어스 액트' 법안의 상원 통과가 유력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관련 법안을 발의하며 속도전에 나섰다.
다만 스테이블코인 규제가 급물살을 타면서 발행 이후 유통 관련 인프라 구축이 뒤처지는 등 '쓰임새'에 대한 고민이 생략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이 참여하는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전날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한 뒤 업계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권뿐 아니라 비은행 자본금 5억원 이상 기업에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기존 블록체인 업계도 분주한 상황이다.
특히 미국 상원이 지니어스액트 법안을 이번 주 표결에 붙이기로 하면서 우리나라 역시 관련 규제안이 더 빠르게 추진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오픈에셋의 신창선 CSO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우리나라 금융 혁신과 통화 주권 강화, 디지털 경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핵심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며 "지금은 실생활 유틸리티의 극대화와 발행과 유통의 조화, 글로벌 전략적 활용을 통해 효용성과 파급력을 본격적으로 확장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민관 협력과 제도적 뒷받침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유통 등 '쓰임새'에 대한 논의가 생략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유로와 싱가포르달러, 튀르키예 리라, 일본 엔화 등 다양한 국가의 통화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됐지만 시장에서 사용되는 스테이블코인의 95% 이상은 미국 달러 기반이다. 일각에서는 달러화가 선점하고 있는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사용을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거래소나 프로젝트 내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도록 설계해 쓰임새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혁 디스프레드 연구원은 "퍼블릭 블록체인에서의 활용, 특히 디파이와의 연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활용처가 현저히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결제와 정산 수단으로서는 국내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이고, 특히 외환거래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큰 틀의 제도를 정비하는 것과 함께 작은 성공사례를 만들어 나가면서 구체적인 활용방안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우리나라는 금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실생활에서의 결제에 얼마나 획기적인 변화를 가지고 올지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다"며 "그러나 블록체인 금융의 세계에서 원화가 존재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의 질문으로 보면 답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어 "디파이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확장한 2021년에 비해 올해는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 미국의 크립토 드라이브, 스테이블코인의 전세계적 약진 등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국내 인식도 많이 바뀐 만큼 원화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원화 디파이'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