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고에 직면한 국내 철강업계가 해외에서 위기 돌파 해법을 찾는다. 업계는 미국의 철강 관세 50%, EU와 일본의 국경탄소세(CBAM) 확대, 중국의 저가공세와 내수침체 등 복합위기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이에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업계는 미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현지 생산 기반을 확대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등 수요처 맞춤형 전략을 펼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상공정을 구축해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고 인도와 멕시코에는 하공정 가공센터를 운영해 현지 수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이 가운데 인도는 장기적으로 세계 최대의 철강 수요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되는 지역이다. 이에 포스코는 인도 철강사 JSW와의 합작을 통해 일관제철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원료 가격 하락세와 인도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결합되며 해당 시장은 포스코에 실질적인 수익 기반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시장에서도 현지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포스코는 최근 현대차그룹과의 협력 아래 미국 내 제철소 지분 참여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생산을 본격화하고 있는 조지아주를 중심으로 현지 철강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대제철의 경우 현대차그룹의 현지화 전략에 따라 미국 시장을 중장기 핵심 지역으로 보고 자체 제철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철강 수입국으로 수입 비중이 여전히 높아 현지 진출 시 높은 수익성이 기대된다.
현대제철은 총 58억달러(약 8조5100억원)를 투자해 원료부터 제품까지 일관 공정을 갖춘 미국 최초의 전기로 일관 제철소을 건설한다. 직접환원철(DRI)을 생산하는 원료 생산 설비(DRP)와 전기로, 열연 및 냉연강판 생산 설비로 구성돼 연간 270만톤의 생산 규모를 갖출 예정이다.
글로벌 시장의 변화도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더욱 필요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철강 시장은 각국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하는 '블록화' 흐름이 뚜렷하다.
안회수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은 증설 계획이 있음에도 여전히 순수입량의 절반 이상을 대체하지 못해 수입 의존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며 "인도는 고로 기반 제품 수요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최근 원재료 가격 하락의 수혜를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국내 철강업계는 생존을 위한 총력전 체제에 돌입했으며, 범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도 요청하고 있다. 장인화 한국철강협회 회장(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 9일 열린 제26회 '철의 날' 행사에서 "업계 간 단합은 물론 수요업계·정부와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산업 생태계를 강화해야 하며,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속되는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산·학·연·관의 R&D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원천기술 및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 생산체제 전환과 저탄소 제품 포트폴리오 구축을 통해 탄소중립 시대에 선도적인 위치를 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맞춰 포스코는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인 수소환원제철(HyREX) 기술 개발에 전사적인 역량을 쏟고 있다. 현대제철도 전기로 기반의 친환경 공정 확대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같은 환경 규제에 대응하며 글로벌 고객사의 ESG 요구에도 부합하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철강업계의 위기는 단기적 불황이 아닌 구조 전환의 신호로도 볼 수 있다"며 "향후 기업들의 경쟁력은 생산지 전략성과 기술 기반의 지속가능성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양호연기자 hyy@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