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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균 칼럼] 정치가 4류? `등급외`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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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균 국장대우 금융부동산부장
[김화균 칼럼] 정치가 4류? `등급외`가 맞다
'우리나라 정치력은 4류, 행정력은 3류, 기업능력은 2류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1995년 4월13일 중국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내놓은 '작심 발언'이다. 삼성자동차 사업과 관련 기업 규제를 비판한 것이다. 당시 국민과 기업인들에게 상당한 공감대를 얻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말 못할 고초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개 기업인이 감히 고고한 정치권과 정부를 놓고 공개적으로 등급을 메긴 탓일 게다. 그것도 사실상 F학점이니.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역시 김대중 정부의 재벌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대우는 분식회계와 불법대출 등 범법 사실아 드러나 결국 해체됐다. 입증은 되지 않았지만 김 회장의 강성 발언이 처참한 말로의 한 요인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우리 기업인이 정치권이나 정부를 직격한 사례는 드물다. 현직 대통령 목전에서 공격하는 것까지 용인되는 미국과는 그 토양 자체가 다르다. 정권의 '재벌 손보기'가 관행인 상황에서 명운을 걸고 직언(直言)을 할 용기를 내기는 어렵다.

최근에는 최태원 SK 회장이 그나마 '입바른 소리'를 했다. 그는 지난 달 2일 대한상의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법과 규제를 제정할 때 경제적으로 어떤 임팩트(영향)를 가할 지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라며 "(정부와 국회는) 선택하고 결정을 내릴 때 득과 실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인으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이다. 발언의 수위는 강하지 않았고, 재계 순위 2위 SK 총수가 아닌, 기업의 대표단체인 대한상의 회장의 이름을 빌렸다.

요즘 사석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유독 '답답함'을 호소한다. 말 속에 절망감이 배어나온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A씨는 "대만이나 일본은 앞다퉈 기업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데, 우리 정치권은 기업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것 같다"면서 "당장 그만 두고 싶은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다른 인사는 "(정부와 정치권이) 툭하면 기업을 지원한다고 떠든다"면서 "지원은 안해도 좋으니 그냥 가만히 놔두기만 해달라"고 말했다.

절망감이 큰 탓일까. 18일 삼성을 필두로 이어지는 주요 그룹들의 올 하반기 전략회의는 어느 때보다 비장감이 감돈다. 각 그룹별 현안은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키워드는 '위기'와 '생존'이다. 위기가 없던 적이 없지만, 올해는 그 압박감이 유독 크다.


우리 기업들의 위기 상황은 주식시장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 코스피는 글로벌 소외시장이 됐다. 날고 뛰는 해외 시장과 달리 제자리 걸음만이다. 충성심 강한 동학개미조차 서학개미로 변심, 이른바 '투자 이민'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테슬라에 '국민주' 자리를 헌납해야 할 판이다.
한국 기업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 크게 보면 한국 시장에 대한 절망적 불신감 탓일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면서 코리안 스탠더드를 강요하고, 밸류업(value-up)을 부르짖으며 밸류다운(value-down)의 단초를 제공하는 정책과 구호가 난무한다.

가장 속편한 곳은 여의도인 듯 싶다. 지난 5월30일 사상 초유의 '단독 개원'이라는 오명을 남긴 국회는 여전히 정쟁과 제 잇속 챙기기에 몰두하고 있다. 꿀통에 빨대를 꽂고 세비(歲費)는 꼬박 챙길 태세다. 그나마 '노란 싹수'조차도 보지지 않는다. 외형은 물론, 뇌 구조와 유전자까지 완전 다른 외계인 조직 같은 느낌이다.

정부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정책'을 강조한다.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대책을 마련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결과물은 '창의력 0%'짜리 '복붙대책'이 전부다. 오죽하면 "(정부의)도움은 필요없다. 그냥 놔둬라"라는 냉소가 나올까.

이건희 회장은 '정부 3류, 정치 4류'라고 했다. 30년이 다 되가는 지금,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까. 3류도 4류도 후하다. 아예 '등급외' 가 적절하다. 등급외는 폐기처분해야 한다. '외쳐봐야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텐데….' 넋두리 속에 자괴감만 커진다.

김화균 국장대우 금융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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