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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서가] 이소가야 스에지를 기억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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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가야 스에지
변은진 지음 / 아연출판부 펴냄
[논설실의 서가] 이소가야 스에지를 기억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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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에 반기를 든 거의 유일한 재조(在朝) 일본인이었다. 1907년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10여 명의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다리 지키는 경비원이었다.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가 21세 때인 1928년 징집당했다. 함경북도 나남에 주둔한 19사단에 배치되면서 조선 땅에 발을 디뎠다. 어느 날 그는 행군 중에 한 조선인 가족으로부터 물을 얻어 마시면서 따뜻한 호의를 경험하게 된다. 제대하자 그는 흥남비료공장에 취직했다. 조선에 과수원을 차릴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는 공장에서 온갖 화학물질을 뒤집어쓰며 고되게 일하는 조선인들의 노동 환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소가야는 조선인 동료들의 영향으로 과거의 인생과 결별하고 노동운동가로 거듭나게 된다.

1932년 그는 체포됐다. 9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처벌된 재조 일본인 가운데 '최장' 수감기록이다. 일제는 그를 '조선의 60만 내지인 중 유일한 비(非)국민'이라고 비난했다. 해방이 되자 함흥일본인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일본인들의 안전 귀환을 책임졌다. 1947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초등학교 수위 일 등을 하면서 어렵게 살았다. 그렇지만 반제와 반전을 지향하는 일본의 사회운동에 헌신했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도 평생 촉구했다. 그는 조선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남겼다. '조선종전기', '우리 청춘의 조선' 등이다. 1998년 91세의 나이로 도쿄에서 사망했다.




책은 '자유와 평화를 꿈꾼 한반도인' 이소가야의 생애를 담고 있다. 1장 '출생과 방황', 2장 '식민지 조선에 바친 청춘', 3장 '일제패망과 조선해방, 그리고 귀환', 4장 '좋은 날이여, 오라' 등 4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미에는 그의 연보가 실려있다. 책을 읽다보면 그의 인간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어 감동을 준다. 주인규·주선규 형제를 비롯한 당시 함흥지역에서 활동했던 많은 노동운동가들도 만나게 된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일본에도 양심적 시민들이 있다. 대표적 인물이 이소가야다. 그는 일본인이지만 가장 치열한 '항일 투사'였다. 그는 고통받는 조선인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만하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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