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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사과와 시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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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금융부동산부 부동산팀장
[현장칼럼] 사과와 시멘트
사과 하나 사먹기가 망설여진다. 시내 과일가게에서 제법 크다 싶은 사과 서너알에 '만원' 한 장을 달란다.

뉴스에서 밤낮 '애플레이션' 타령이더니, 진짜로 사과가 32년 만에 가장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애플레이션'은 애플(Apple·사과)과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 상승)의 합성어라는데, 실제로 그런 용어는 없다. 사과가 물가상승의 주범이 돼 다른 과일 가격의 상승을 줄줄이 불러온다는데 그것도 경제학적 근거가 거의 없는 소리다. 실제로 구글에 애플레이션(Applation)을 검색하면 국내 매체 말고는 쓰는 곳이 없다. 사과는 죄가 없다.

사과 이야기는 그만하고 최근 건설 현장 이야기를 하자. 서울 시내만 해도 곳곳에서 공사비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컨테이너로 아파트 입구를 막은 건설사가 있는가 하면, 공사 중이던 시공사를 갈아치우는 재건축 단지도 있고, 손실 처리한 공사비를 받아내기 위해 원정 시위에 나서는 시공사까지 천태만상이 펼쳐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는 예상 입주시기를 두달여 앞둔 지금도 일반분양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조합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한 시공사를 교체하고 지난 달에야 새 시공사와 공사비 증액 협의를 겨우 마친 뒤 분양가 산정에 나섰다. 만약 그때라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 조합원과 시공사는 입주를 위한 '열쇠 뺏기' 싸움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작년 5월 입주한 '대치 푸르지오 써밋'에서 일어난 일이다.

강북 최대 규모 재개발 사업지인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의 공사장도 멈췄다. 이미 착공해 공정률이 20%가 넘은 이 사업장이 몇 달째 문을 걸어닫은 것은 조합 내부 갈등 등으로 미수 공사비가 1800억원까지 쌓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업성이 확보된 서울의 현장에서조차 분쟁이 빈발하고 있으니 수도권이나 지방의 현장은 더한 상황이다.


지난해까지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는 약 2년간 공사비는 30% 가까이 급등했다. 코로나19 당시 통화 완화 정책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수급 불안으로 인플레이션이 위기 수준으로 치달았다. 철근과 강판 등 건축 원자잿값도 20~30% 급등했다. 시멘트 가격은 1년새 40% 이상 오르기도 했다. 고금리로 금융비용도 불어났고 몇년 간 상승한 인건비도 공사비에 더해졌다. 공사는 중단되고 분양이 미뤄졌다. 분양가는 상승하고 사람들의 지갑은 닫혔다.
인플레이션은 여러 방법으로 우리의 목을 조여온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끔찍한 금리 인상을 견뎠는데, 공사비는 계속 올랐고 인허가가 나도 착공할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 1월 건설사들의 주택 수주액은 6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2~3년 뒤에는 주택 신규 공급은 공백이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작황 악화에 금값이 된 사과처럼, 공급이 부족해지면 집값을 다시 자극할 수도 있다. 이정도 되면 백약이 무효 같다.

결국은 올해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다. 연방준비제도(Fed) 입장에서 금리 인하를 더 연기하기도 쉽지 않다. 설령 6월이 아니면 7월에 하면 된다. 6차례가 안되면 3차례라도 하면 된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서민들에게 더 가혹하다. '빈곤 퇴치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는 "낮은 금리는 자산 가격 상승을 가져오고,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했다. 합산 연봉이 1억6000만원인 고소득 신혼부부에게도 공공주택 청약 기회를 준다는 저출산 정책인지 주거 복지 정책인지 모르겠는 중산층 지원책이 먼저가 아니다. 어느새 100만원을 넘어버린 서울 월세, 주거취약층이 된 노인가구, 2평 고시원에 쭈그리고 누운 1인 가구, 미국과 다른 양상의 인플레이션, 주택 공급 공백 등을 총선 뒤라도 챙겨봤으면 한다. st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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