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희 문화전문기자
![[현장칼럼] 작품만큼 돋보인 두 원로작가 위엄](http://contents.dt.co.kr/images/202403/2024032602102269057001[1].jpg "[현장칼럼] 작품만큼 돋보인 두 원로작가 위엄")
나무·석재 조각, 석판화, 회화를 아우르며 고유의 예술세계를 일궈온 우리나라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89) 작가는 구순(九旬)을 앞둔 나이에도 얼핏 보면 중장년의 모습이었다. 머리만 흴 뿐, 깃을 세운 흰색 셔츠와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검은 스니커즈와 매치해 입고 꼿꼿한 자세로 모습을 드러낸 그에게 취재진은 일제히 감탄했다.
김 작가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한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2개 전시관을 1시간 넘게 돌면서도 힘든 기색 없이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설명했다. 그는 "매일 작업하는 게 생활"이라며 "작업을 하면서 순간순간 내가 집중되는 상태가 영혼이고 거기에 뭔가 담겨 표현되는 게 예술의 생명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제 예술은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끝이 없다"며 "일상이 반복되는 것처럼 예술의 완성도 없다"고 덧붙였다.
1970년대부터 시작한 '합이합일 분이분일' 목조각 연작 작업은 전기톱을 들고 거침없이 나무를 잘라 나간다. 톱질을 통해 드러나는 나무의 속살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려둔 나무의 거친 껍질이 이루는 시각적 대조가 대표적 표현 특징이다.
서양의 현대미술과 동양의 서예 예술의 조형성 사이를 다각도로 실험하며 한국 미술계에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임충섭(82) 작가도 한계 없는 일상의 작업을 즐긴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열고 기자들과 만나 "여전히 제 미술은 엉거주춤"이라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세계에는 도달하지 못해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은 자기 프라이드로 사는 것 같다"며 "부모님을 위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 자식과도 같은 작품을 만드는 것, 일찍 일어나 운동하는 것, 거짓말하지 않는 것 등 내 프라이드는 대단하진 않지만 일상 속 인생철학의 하나"라고 말했다.
임 작가는 동양 회화의 이론과 실기를 정리한 개자원화보, 파란 하늘에서 영감을 받아 채색된 자전거 안장, 뉴욕의 오래된 건물에서 발견된 쇳덩이, 길거리에 떨어진 녹슨 철고리, 끊어진 운동화 끈, 잡지가 콜라주된 낙엽 등 수많은 사물이 모여 새로운 역사가 된다며 재료 선택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두 원로 작가가 젊음을 유지하는 데는 습관처럼 지속하는 작업에 대한 흥미와 몰입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저서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에서 수십 년 동안 내재역량을 꾸준히 관리하면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보통의 젊은 사람에 비해 상당히 좋은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내재역량이란 세계보건기구가 2015년에 제시한 개념으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기능 요소 모두를 고려해 얼마나 건강하게 나이 들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다. 여기엔 마음건강도 포함됐는데 특히 몰입은 강력한 저속노화 인자라고 정 교수는 강조했다.
한국은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전체 중 65세 이상 인구 7%)로 진입한 데 이어 2017년엔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로 접어들었다.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가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웰에이징(well-aging·건강 노년맞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건강하게 잘 나이드는 건 본인 생활의 편의를 위함과 동시에 가족이나 주변인의 걱정을 덜어줘 젊은층에서도 일찌감치 대비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웰에이징을 위해선 건강한 식사와 꾸준한 운동, 긍정적인 마인드, 스트레스 비워내기,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기 등을 습관화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통한 내재역량이 단단해지면 뇌 위축이 상당히 진행되더라도 치매를 앓지 않으며 90대에도 평균적인 젊은 성인보다 나은 신체기능을 보일 수도 있다.
김윤신·임충섭 작가의 위엄은 20~30대에게도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자극을 주기 충분하다. 그들의 작품을 본다면 아마도 그 강도는 더 커지지 않을까. 훌륭한 작품은 절대 그냥 나오지 않는다. e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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