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이준기의 D사이언스] 가습기살균제 판결 뒤집은 연구 "피해규명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폐질환 관련성 입증됐지만 그외 질환 연관 안 밝혀져… 연구 지속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
진상조사 참여 후 참고인·증인으로 7차례 법정 서… 피해자 고통 보며 연구자세 되새겨
미세먼지·미세플라스틱 인체유해 연구도 주력… 가장 안전한 사회 만드는 데 기여할 것
[이준기의 D사이언스] 가습기살균제 판결 뒤집은 연구 "피해규명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 인체유해인자 흡입독성연구단장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고, 폐질환 이외의 피해 질환으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있었기에 완전히 끝난 게 아닙니다. 화학물질이 끊임없이 새로 개발돼 쓰이면서 언제든 제2, 제3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또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흡입독성 연구는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흡입독성 연구자로 참여한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KIT) 인체유해인자 흡입독성연구단장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규명을 위한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위해성 규명 연구에 참가한 이후 지금까지 실험동물 모델을 대상으로 피해 질환과 독성학적 상관관계를 밝혀내기 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 단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화학물질의 호흡기 흡입 시 사람에게 미치는 독성 연구를 처음 시작한 사례"라며 "폐질환 관련성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됐지만, 그 이외 질환과의 연관성은 아직 규명되지 않아 관련 연구는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가습기살균제 판결 뒤집은 연구 "피해규명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안전성평가연구소 제공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부장

가습기살균제 성분 중 PHMG·PGH의 위해성 여부는 초기부터 인과 관계가 밝혀졌지만, CMIT·MIT 성분은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 수많은 연구와 실험을 통해 폐 손상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최근에야 규명됐다. 이 연구결과는 CMIT·MIT 성분을 가습기살균제로 사용한 두 업체에 대한 2심 판결이 당초 1심 무죄에서 유죄로 뒤짚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단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15년이 흐른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며 "살균제에 쓰인 성분들이 사람의 폐 손상뿐 아니라 다른 장기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에 대한 연구와 함께 장기적으로 이들 성분의 독성값과 노출값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는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국가가 좀 더 책임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은 화학물질을 사용해 제품을 만들 때 국민들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소비자들은 제품에 대한 독성정보 등을 사전에 꼼꼼히 살펴 사용해야 한다"며 "국가는 이런 제품들이 안전하게 만들어졌는지를 철저히 관리 감독해야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전도체 물리학자서 'MRI 영상 연구자'로 연구 인생 시작

이 단장의 전공 분야는 물리학이다. 그 중에서 지난해 과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초전도체 연구'다. 학부 4학년 때 '상온 초전도체'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 참석했다가 매료 당해 무작정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전도체라는 물질 물성을 연구하던 그는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하면서 연구 분야를 'MRI(자기공명영상)'를 활용한 약물동역학 연구로 바꿨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물리학회 등에 가 보니 저보다 엄청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걸 알고고, 그들과 과연 경쟁해서 내가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생겼다"며 "당시 물리학자들이 의학영상 분야로 많이 진출하는 것을 보고, 물리학 기반의 생물물리, 의학물리, 바이오 등의 연구를 할 수 있는 ' MRI 분야'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특정 약물의 유효성을 MRI 영상을 통해 확인하는 연구를 포닥 시절 처음 시작했다. 모든 게 새로웠다. 세포 배양도 처음 해 보고, 실험동물도 사육하고, 수정란을 만들어 실험에 활용하는 등 이전에 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힘들었지만 연구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는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허혈성 심근경색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MRI 영상으로 규명하는 연구와 나노물질로 만든 MRI 조형제를 실험동물에 투여해 형광 효과와 조영제 활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다기능 나노 조영제' 개발 연구에 참여했다"고 했다. 이후 줄기세포를 활용한 뇌졸중 실험동물 모델 연구와 망간 이온을 조영제로 활용한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연구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갔다.

[이준기의 D사이언스] 가습기살균제 판결 뒤집은 연구 "피해규명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새로운 발상의 연구로 '흡입독성 연구자'로 새 출발

망간 이온을 실험동물의 경동맥에 투입해 뇌졸중을 연구하던 중 이 단장은 새로운 발상을 했다. 망간 이온을 혈액에 주입하는 대신 호흡기로 흡입켜 망간 이온이 뇌까지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를 MRI 영상으로 확인해 보면 어떨까하는 새로운 연구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뇌에 영향을 주지 않고 망간 이온을 혈액 투여 대신 호흡기로 넣어 안전하게 조영제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시도했다. 이런 시도가 인연이 돼 흡입독성 연구자 길로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이 단장은 말했다.

그는 "안전성평가연구소에서 중금속을 호흡기에 노출시켜 뇌 영상을 얻는 연구를 하시던 연구자가 제가 호흡기 투여를 통해 뇌졸중 MRI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만나게 됐다"면서 "내 연구 방법론에 대해 서로 토의하고 공유하면서 함께 연구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마침 포닥을 마치고 안전성평가연구소 채용 공고가 나와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흡입독성 연구자로 활동하게 됐다"고 흡입독성과 인연을 소개했다.

대학원에서 물질의 물성을 연구하던 초보 연구자에서 포닥 시절 'MRI영상 연구자'와 '나노 조영제 개발 연구자'를 거쳐 '흡입독성 연구자'로 3모작 연구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한 통의 전화로 '가습기 살균제' 연구 참여

2011년 한 통의 전화가 그에게 걸려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 환자들이 병원에 오고 있는데, 화학물질 노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연락였다. 이어 정부가 역학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데 흡입독성 연구자로 위원회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단장은 역학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내원한 폐질환 환자들이 가습기살균제를 공통적으로 사용했고, 그게 원인이 돼 폐 손상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냈다"며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 여부를 실험으로 규명해야 하는 게 저의 역할였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가습기살균제가 공기 중에 사람의 호흡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어로졸 형태로 나오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실험 결과, 100나노미터의 아주 미세한 작은 입자들이 가습기살균제에서 엄청나게 많은 에어로졸로 만들어 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 가습기살균제를 실험동물의 호흡기에 흡입시키자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 이번에 소량 가습기살균제를 희석해 실험했더니, 실험동물이 2주 동안 죽지 않았지만 폐에 환자들과 유사한 손상이 있는 것을 병리학적으로 확인했다.

이 단장은 "실험 초기 PHMG·PGH 성분의 가습기살균제에서는 사람의 조직병리 초기에 나타나는 폐 손상 병변이 관찰돼 피해에 대한 인과관계가 뚜렷했으나,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에서는 독성 여부를 완벽하게 입증할 만한 실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CMIT·MIT 성분이 환자들의 폐 질환과 직접적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두 성분을 사용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업체는 1심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후 이 단장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CMIT·MIT 성분의 독성 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와 실험을 이어갔다. 마침내 권장사용량만 사용해도 두 성분이 폐에 도달해 독성을 발현해 폐 손상에 영향을 준다는 과학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과학적 실험 결과와 근거가 지난 1월 열린 2심 재판에 결정적 증거로 작용해 판결이 유죄로 뒤바꿨다.

그는 "3∼5년에 걸친 수많은 연구와 실험 끝에 CMIT·MIT 성분의 독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두 성분은 폐 질환 외에 간에 염증을 일으키고, 산모에 노출될 경우 태아의 뇌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호흡기 이외 다양한 인체 장기에 유해한 영향을 줄 수 있어 앞으로도 추가적인 독성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가습기살균제 진상조사에 참여하면서 7차례에 걸쳐 참고인이자 증인으로 법정에 섰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 안타까움을 그들 곁에서 함께 나누며 연구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단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과학자 한 사람으로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숨을 거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억울함을 밝히고,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했다는 데 커다란 사명감을 느꼈다"며 "내 연구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어떤 자세로 연구에 임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새기는 뜻깊은 기회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단장의 끈질긴 연구 집념과 노력으로 지금은 네 가지 성분을 쓰는 가습기살균제는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미세먼지·미세플라스틱 등 국민 건강 연구는 국가적 책무

이 단장은 최근 대기환경 유해인자인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의 호흡기 노출 시 미치는 흡입 독성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인체 유해성 연구는 역학연구와 세포수준 연구를 통해 많이 진행돼 왔다.

하지만 어느 정도 노출 시 독성으로 인한 피해가 나타나고, 어떤 기전으로 우리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세먼지나 미세플라스틱을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실험적 한계와 두 물질의 다양한 발생 원인으로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없어 연구에 어려움이 많아 앞으로 규명해야 할 것들이 많은 연구 분야다.

이 단장은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의 유해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수준에 도달할 때 우리가 피해를 줄 지에 대해선 명확히 알지 못해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공포스러워한다"면서 "그렇기에 미세먼지나 미세플라스틱의 독성값과 노출값을 과학적 실험을 통해 명확히 기준으로 제시해 줘야 이를 사전에 알고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게 된다"고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독성연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바뀜에 따라 국가 R&D 방향도 바뀌고 있는데,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화학물질에 대한 독성연구와 안전성평가 연구는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연구분야"라며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을 저감할 수 있는 기술과 함께 피해 최소화하고, 나아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연구개발에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을 안전한 사회로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bongchu@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