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객석] 시공간 속 `나`를 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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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준형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 음악가에 선정
1년간 '엽편소설' 시리즈 연주할 예정
獨 유학 경험 살려 낭만·서정을 담아
[객석] 시공간 속 `나`를 엮다
김준형 [금호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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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준형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그의 음악 세계를 들여다 보다

모든 것이 빠르고 정신없이 움직인다. 삶의 필수 분야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와 개혁'이라는 가치나 의미가 급격한 등락을 반복한다. 음악가들의 새로운 등장과 변신도 마찬가지다. 소위 새삼스럽다거나, 너무 빠르다거나 하는 반응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진부한 느낌을 포함하고, 다양한 뉴스들에 긍정이나 부정을 채 표하기도 전에 어느새 나타나 놀라움을 전하는 신예들이 있다. 꾸준한 공부와 자기 연마 끝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을 펼치려 하는 27세 음악가에게 '조금 늦었지만 반가운 만남'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한다면 분명 아이러니일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은 어떤 방법으로든 한 사람의 음악가를 성숙시키기 마련이다.

얼마 전, KBS 1FM에서 진행하는 'KBS 음악실'의 살롱 음악회에서 김준형을 만났다. 명민하고 똑똑한 해석과 산뜻한 손놀림이 돋보이는 연주를 펼친 그의 첫인상은 똘망똘망한 눈빛처럼 호기심과 학구열로 가득 찬 '피아노 소년' 그 자체였다.

◇나뭇잎 위에 그리는 신년 청사진

"10년 전 독일로 유학을 떠난 뒤, 한국에서의 무대를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2023년 '금호라이징스타' 시리즈 무대에 섰고, 2024년에는 상주음악가로서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뵙게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신년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소중한 기회인 만큼, 그동안의 제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았어요. 하나의 주제로 한 해 동안 여러 차례 무대를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일은 처음이라 고민이 정말 많았습니다."

여행도 떠나기 전 계획을 짜고 수정할 때 가장 행복하다. 부푼 마음으로 임했던 그의 고민도 그런 행복감으로 채워졌으리라. 1년간 그의 곁에서 '상주음악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할 시리즈의 제목부터 심사숙고가 느껴진다. 시리즈 전체를 대표하는 '엽편소설'이라는 제목은 단편소설보다 짧은 이야기를 뜻하지만, 그가 음악으로 풀어낼 이야기는 더 다채롭고 흥미로울 것으로 기대된다.

"'엽편소설'은 나뭇잎 소설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작은 나뭇잎에 쓸 만큼 짧지만 삶의 희로애락이 압축되어 있는 소설이죠. 첫 번째 무대인 'Here & Now'는 독일 음악의 중심이 되는 바흐·베토벤·브람스 세 작곡가의 작품들로 채웠습니다. 개인적으로 독일 음악과 영혼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고 느껴 왔는데요. 한편으로 이 세 작곡가는 저에게 큰 도전을 주는 작곡가들이기도 합니다. 'Here & Now'의 프로그램은 매 순간이 도전인 현재 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구로키 유키네(1999~)와 함께하는 두 번째 무대 '아름다운 5월에'는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 중 '아름다운 5월에'에서 빌려왔습니다. 노래의 가사처럼 애절하고도 찬란한 슈만과 브람스의 서정과 낭만을 가득 담아서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세 번째 무대는 '풍경산책'입니다. 이 공연은 '관객들과 공연장이 아닌, 다른 장소에 간다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드뷔시를 떠올렸습니다. 드뷔시 특유의 몽환적인 화성과 색채, 신비로운 음향이 가득한 음악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여정에는 특별 게스트로 플루티스트 김유빈, 첼리스트 문태국 님이 함께합니다. 마지막 무대는 리스트의 소품들을 엮어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든 '종을 향하여'입니다. 끝이 없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엽편소설의 내용이 마치 제가 하는 예술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리스트 위트레흐트 콩쿠르 우승(2022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콩쿠르 3위(2023년)를 차지한 구로키 유키네는 거침없는 타건과 예리한 악상 표현으로 주목받는 26세의 신예다. 김유빈과 문태국은 솔로와 실내악 무대로 친숙하다. 결국, 기대되는 실내악 주자로서 새 얼굴을 보여주는 이는 여기서도 김준형이다.

"저와 구로키 유키네는 음색도, 개성도 다르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각자의 감성과 정서를 더한다면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늘 많은 영향을 받는 친구이자 존경하는 음악가인 김유빈, 그리고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선배이자 오래전 인연으로 이번 연주까지 함께하게 된 문태국 님과의 3중주 무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원래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는 편이어서 그런지 이 자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젊은 피아니스트의 초상

한 군데, 혹은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묵직한 의미를 담은 결과물을 뽑아내는 아티스트. 그의 이력을 보고 느낀 감상은 그러했다. 무엇보다 독일 뮌헨을 오랜 근거지로 삼고 있는 것도 여타 유학생과 조금 구별되는 점인데, 그가 입상한 여러 콩쿠르 중 두 번 도전한 뮌헨 ARD 콩쿠르의 이름도 홈그라운드라는 개념과 겹쳐진다.

"뮌헨에서 열리는 콩쿠르라는 점이 저에게 이점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만, 2017년 뮌헨 ARD 콩쿠르가 저의 첫 국제 콩쿠르였습니다. 그땐 너무 어렸고, 준비 과정에서도 미숙했던 점이 한둘이 아니었지요. 운이 좋게 특별상을 받았지만, 스스로 느낀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보완해서 좀 더 성장한 모습으로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결과가 좋게 나와 다행이었죠."

유학 생활은 누구에게나 이어지는 좌절을, 그리고 외로움을 극복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한 지역에 오랜 시간 머물다 보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이상적인 루틴에도 의문을 품게 마련인데, 음악 공부 안팎으로 닥쳐오는 이 '은근한 난제'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궁금했다.

"아직도 고민이나 문제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몰라 어려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주기적으로 '저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곤 합니다. 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기도 해서 유일한 요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의지할 곳이나 주변의 동료들도 응원이 되어 주지만, 결국 강한 신뢰로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스승의 존재가 무엇보다 절대적이지 않을까 싶다. 김준형의 든든한 멘토인 안티 시랄라(1979~) 교수는 2003년 리즈 콩쿠르를 정복한 핀란드 출신의 실력파로, 런던·더블린 콩쿠르 등의 입상 경력을 갖고 있다. 2013년부터 뮌헨 국립음대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에서도 교육자와 연주자로서의 입지를 넓히는 중이다.

"선생님은 자기 생각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기보다 학생들의 주관을 따라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독려해 주십니다. 물론 처음에는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낯설고 어려웠지만, 자신을 더 탐구하고 살펴보는 데에 이 방법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음악뿐 아니라, 제 삶에도 자연스레 녹아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태산같은 무거움으로 자신의 색깔을 지켜내야 하지만, 동시에 내면에서는 창의적인 변덕스러움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직업이 바로 피아니스트다. 쉼 없이 꿈틀대고 있을 김준형의 내면에도 우리가 예상치 못한 놀라운 계획이나 참신한 아이디어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어떤 변화를 꿈꾸고 있을까.

"사실 도전하고 싶은 레퍼토리는 너무 많고, 매 순간 바뀝니다. 요즘엔 그동안 많이 다루지 않았던 바로크 시대 작품들을 탐구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바로크 음악이지만, 과연 내년에는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저도 궁금하네요. 열린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배우려 하고, 정체됨 없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바로 제가 지금, 이 순간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글=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사진=금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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