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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한겨울, 손 끝에서 피어내는 `내 안의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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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내한해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
음반에 에세이 싣는 등 제작 전과정 참여
업라이트 연주법으로 포근함 담아 인기
"바흐에 영감받아 매번 다르게 표현하죠"
[객석] 한겨울, 손 끝에서 피어내는 `내 안의 바흐`
비킹구르 올라프손 (c) Markus J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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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아름답지만, 매우 춥습니다. 바지 안에 꼭 내의를 입고, 몰아치는 폭풍우에 대비해야 해요. 참, 하루에도 날씨가 다섯 번 넘게 바뀔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기온이 뚝 떨어진 초겨울의 어느 날, 내한 공연을 앞둔 비킹구르 올라프손(1984~)에게 아이슬란드의 날씨를 물었다. 뼛속까지 시린 북국의 온도에 한국의 겨울은 따듯하게 느껴질 만도 한데,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신 애착 스웨터를 한국에 꼭 챙겨올 예정이라고 한다. 바쁜 해외 투어 일정 중에 작성한 그의 답장에는 5년 만에 다시 찾는 한국 무대에 대한 기대와 이번에 연주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났다.

그의 인생에서 지난 5년은 가장 중요하고도 바쁜 시기였다. 네 장의 음반을 발매하고, 수차례 무대에 올랐으며, 무엇보다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제 막 두 살과 네 살이 된 아이들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던 걸까. 두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을 교차한 '드뷔시·라모'(2020), 모차르트와 동시대 작곡가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모차르트'(2021)와 달리 지난해 발매한 음반 '멀리 떨어진 곳에서'(2022)에는 그의 유년 시절과 지나온 음악 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25년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꿈꿔왔다"는 그는 지난 10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2023)을 발매하며 피아니스트로서의 큰 꿈에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오는 12월, 같은 프로그램으로 한국에서 총 네 번의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의 이번 신보는 아이슬란드에서 날아온 한 통의 예고장이었던 셈이다.

[객석] 한겨울, 손 끝에서 피어내는 `내 안의 바흐`
올라프손 신보 커버 이미지



◇개성과 조화 그 사이에서

-'필립 글래스'(2017),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2018), '드뷔시·라모'(2020) 등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고 있습니다. 음반 작업에 애정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1990년대의 아이슬란드는 음악을 듣고 즐길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지금보다 훨씬 외진 곳이었죠. 그런 환경에서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음악가인데다 훌륭하고 방대한 음반을 수집하고 계셨으니,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해요. 스튜디오 음반 작업에 열중하는 이유 역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음반들로 많은 걸작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곡 해석부터 커버 디자인까지 음반 제작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발매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2023)에는 직접 쓴 짧은 에세이도 담겨있죠.

"2016년 도이치 그라모폰(DG)과의 전속계약으로 녹음 기회를 얻기 전부터 제 레이블에서 음반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경험으로 인쇄에 사용되는 종이의 종류부터 프로그램북 제작, 디자인, 마케팅까지 음반 발매의 모든 과정에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그리고 음반을 단순히 녹음을 위한 수단이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식하게 되었죠. 훌륭한 디자이너, 사진작가들과의 협업, 그리고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을 쓰는 일은 보람찬 일이지만, 동시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에요.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더 단단한 음반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유년기의 추억을 담은 음반 '멀리 떨어진 곳에서'(2022)는 전체 수록곡을 그랜드 피아노뿐만 아니라 업라이트로도 연주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는데요. 업라이트 피아노의 따듯한 음색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현과 해머 사이에 부드러운 천을 둔 업라이트 피아노는 다른 장르의 음악에서는 자주 사용되지만, 클래식 음악에는 많이 사용되지 않는 편입니다. 저는 업라이트 피아노만의 벨벳처럼 부드럽고 몽환적인 소리를 좋아해요. 이 음반은 2년 전,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쿠르탁(1926~)과의 만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지난 몇 년간 업라이트 피아노로 작업해 온 쿠르탁의 녹음을 듣고, 저도 한번 실험해 봤는데 다행히 다들 업라이트 피아노 버전도 좋아해 주시는 것 같더군요.(웃음)"

-소리를 색감으로 느끼는 색청 피아니스트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음을 색으로 느꼈는지, 이러한 공감각성이 당신의 음악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공감각성이 있다는 것은 음높이와 색상을 강하게 연관 짓는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C는 흰색, D는 갈색, E는 녹색, F는 파란색이죠.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제게는 마치 잔디가 초록빛이고, 하늘이 푸른빛이라는 사실 만큼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저는 늘 이렇게 살아왔고, 모두가 저와 같은 색상 지도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 사람이 완벽한 음감과 공감각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솔직히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음악에 자주 노출된 어린이들에게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저도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음악을 듣고 자랐을 뿐이니까요. 다만, 음악적으로 화성에 대한 인식과 서로 다른 화성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공감각성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객석] 한겨울, 손 끝에서 피어내는 `내 안의 바흐`
비킹구르 올라프손 (c) Markus Jans



◇손끝에서 현현할 바흐의 선율

지금까지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해 온 올라프손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음악가는 누구인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역시 '바흐'였다. "바흐의 음악을 공부하며 베토벤·쇼팽·브람스·존 애덤스·쿠르탁 등의 작품을 연주할 때 모든 면에서 보다 강한 음악가가 된 느낌을 받습니다."

마흔 살이 되는 내년 2월은 그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공개적으로 연주한 지 10년째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마흔이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지금 이 곡이 서른 살 때와는 다르게 보인다"는 그의 이번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어떤 느낌일까.

-이번 무대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합니다. 음반으로 대중에 미리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당신에게 바흐는 어떤 의미이고, 작품을 녹음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게 바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그는 제 삶과 일상에서 거의 모든 순간 훌륭한 음악적 영감의 대상이 되죠. 음악적 건축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그의 음악은 철학적이고, 구조적이며 한편으론 시적이고, 흥미로워요. 특히,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작품이에요. 음반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이곤 했는데, 바흐가 우리에게 남긴 수많은 다층성 중 일부가 이번 음반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녹음했습니다."

-여러 피아니스트들이 녹음과 연주를 통해 거쳐 간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표현하고 싶은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가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스타일이 없다. 매일매일 바뀐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저는 우리가 바흐와 이 작품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실험해야 하며 결코 특정한 하나의 스타일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 각각의 변주는 그만의 스타일을 요구해요. 피아노마다, 공연장의 홀마다 다르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연주 스타일이란 최대한 아름답고, 깊이 있게 연주하고자 노력하는 것. 결국, 정직함을 담은 연주가 아닐까요?"

-12월, 한국 관객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저는 매 공연이 저와 관객의 특별한 여정이 되길 바라며 무대에 오릅니다. 특히, 제 음반을 아껴주시는 분들이 있는 한국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제게 보내주신 따듯한 응원의 메시지만큼,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연주로 보답할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글=객석 홍예원 기자·사진=마스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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