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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의 세상만窓] 중남미 좌파 `핑크 타이드`에 제동건 아르헨티나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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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먼 신봉한 '우파 아웃사이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당선
좌파 포퓰리즘 '페로니즘'에 심판…빚내 펑펑 쓰고 중앙은행 돈찍어 메워
멕시코·콜롬비아·칠레·브라질·과테말라 등으로 확산되던 좌파 물결 '주춤'
중국 영향력도 약화 전망…밀레이 당선인 "미국 중심 외교" 천명
중남미를 휩쓸던 '핑크 타이드'(Pink tide·좌파 정권 물결)의 기세가 꺾일 것인가.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려온 우파 아웃사이더 하비에르 밀레이(53)가 1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하면서 중남미의 정치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경제학자 출신의 밀레이 당선인은 중앙은행 폐쇄와 미 달러화 사용 등 과격해 보이는 자유주의 철학을 갖고 있다. 물론 이같은 철학은 '페론주의'로 불리는 좌파 포퓰리즘의 폐해가 워낙 커 혁명적 방법이 아니고선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에 그 뿌리를 둔다. 게다가 밀레이는 반중 의식이 강해 향후 국제 외교 지형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막판 '역전 드라마' 쓴 밀레이 당선인

아르헨티나는 '페로니즘'이라는 좌파 포퓰리즘으로 인해 나라가 망가진 대표적인 국가로 꼽힌다. 현지 매체 라나시온은 "페로니즘에 지친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대안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불과 1~2년여 전만 해도 하비에르 밀레이(자유전진당) 대통령 당선인이 인구 4600만명의 '한때 부자 나라' 아르헨티나를 이끌 것이라고 예상하는 목소리는 사실상 전무했다. 각종 TV나 라디오에서 테이블 반대쪽에 앉은 상대방을 향해 욕설과 함께 공격적인 자세로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저 사람에게 나라를 맡겨봐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처럼 과격한 언사를 서슴지 않아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는 별명도 얻었다.

밀레이 당선인은 대선 결선 투표에서 55.69% 득표율(개표율 99.28% 기준)로, 44.30%의 표를 얻은 집권 '조국을 위한 연합' 당의 세르히오 마사(51)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낙승했다. 밀레이 당선인은 지난달 본선 투표에선 29.99%의 득표율로 마사 후보(36.78%)에 밀렸지만, 1. 2위 후보 맞대결로 치러진 이날 결선에서 판을 뒤집었다.

낙선한 마사 후보는 개표 결과 공식 발표 전인 이날 오후 8시 10분께 선거 캠프에서 지지자에게 "저의 패배를 인정하고 승복한다"고 말했다. 이어 "밀레이의 당선을 축하한다"고 덧붙였다.

밀레이 당선인은 이날 밤 당선이 확정된 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엘리베르타도르 호텔 선거캠프에 준비된 단상에 올라 "오늘 아르헨티나의 재건이 시작된다"면서 "19세기에 자유경제로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잃어버린 번영을 되찾겠다"며 당선 일성을 밝혔다. 이어 "내 정부는 약속을 엄격히 준수하고, 사유재산을 존중하며, 자유무역을 추구한다는 3가지 매우 간단한 명제를 품게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점진적 방식이 아닌 급격한 변화를 추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극적인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이라며,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다음 달 10일까지 국정 운영에 책임을 다해 줄 것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정부에 요청했다.

밀레이 당선인은 "그들(현 정부)은 파탄난 경제를 우리에게 남겼다"며 140%(10월 기준 전년 대비) 인플레이션으로 대변되는 경제 실정을 강하게 성토하기도 했다. 이어 "아르헨티나를 다시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한 변화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들은 출신을 막론하고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자유주의 신봉하는 경제학자 출신 '우파 아웃사이더'

청소년 시절 밀레이 당선인의 꿈은 프로 축구선수였다. 1970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버스 기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모의 학대와 친구들의 따돌림 속에 어두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학부와 대학원은 모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마쳤다. 전공은 경제학이다.

대선 공약으로 '중앙은행 폐쇄'를 내놓은 밀레이 당선인의 첫 직장은 아이러니하게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인턴)이다. 이후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나 그의 언행을 거북하게 여긴 학생들의 항의로 교정을 떠났다고 한다. 이어 은행에서 일하며 서적을 집필하고 언론 매체에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설파하던 밀레이 당선인은 지난 2019년부터 보수계열 정당을 이끌다가 2021년 하원 의원에 당선되며 중앙 정치무대에 입문했다.

입법 활동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건, 이 나라 신생아 사망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선천성 심장병 치료 확대를 골자로 한 법안 개정에 반대표를 던졌을 때다. 지난해 말 이런 선택으로 그는 시민단체와 현지 매체들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당시 그는 법안 반대 이유에 대해 "국가가 개인의 삶에 더 많은 간섭을 하고 더 큰 비용을 지출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고 TV 방송 '토도노토시아스'은 보도했다. 스스로 '이론적으로 무정부주의적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발로'라고 표현했던 이같은 그의 철학은 이번 대선 공약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나 간섭을 싫어하는 것은 자유주의 철학의 핵심이다. 그는 밀턴 프리드먼, 로버트 루카스, 머리 로스바드 등 자유주의 철학을 가진 쟁쟁한 경제학자들을 신봉하고 있다. 기르는 반려견 네 마리의 이름을 이들에게서 빌려와 붙일 정도다. 이들 반려견은 기르던 반려견의 유전자로 복제한 강아지들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코미디언으로 유명한 파티마 플로레스와 연인 관계다. 밀레이의 측근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동생인 카리나 밀레이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 중앙은행 폐쇄·달러화 도입 등 천명…외교적으론 반중·친미(反中·親美) 예상

광대한 영토와 부유한 자원으로 20세기초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에 들었던 아르헨티나가 여러번의 국가부도를 겪은 것은 '페로니즘'으로 불리는 좌파 포퓰리즘 때문이었다. 2019년 페로니즘을 내세워 당선된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은 퍼주기를 남발하면서 4년간 나라빚을 962달러(약 124조원) 넘게 늘렸다. 그 적자를 정부가 통제하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메웠다. 그 결과 통화량이 4년간 4배 넘게 불었으며, 덩달아 물가도 하늘 모르게 치솟았다. 현 정부 집권 기간 중 물가는 무려 844% 급등하고, 통화(페소) 가치는 90% 이상 급락했다.

문재인 정권 5년동안 국가부채가 400조원 넘게 늘어난 것이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정부가 재정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


밀레이는 이런 중앙은행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폐쇄 대신 '폭파'라는 용어를 쓸 정도로 중앙은행 통화신용정책의 효과와 물가안정 기능을 불신하고 있다. 경제학자인데도 이처럼 중앙은행을 불신하는 것은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전혀 수행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은 무려 140%에 달한다. 그가 신봉하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물가 상승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너무 많은 돈을 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밀레이 당선인은 중앙은행을 "정직한 아르헨티나인들로부터 물건을 훔치는 메커니즘"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공식 통화인 페소화를 버리고 달러를 쓰자는 달러화 도입 구상도 당선인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이미 비공식 환율 시장이 성행하는 가운데 밀레이 당선인은 "달러화만이 인플레이션을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중앙은행 폐쇄와 달러화 도입은 밀레이 당선인 스스로 이행 의지가 가장 확고한 공약이다. 이는 중앙은행 총재 후보를 미리 발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지난 9월 현지 라디오 방송 '엘옵세르바도르' 인터뷰에서 "(제가 당선되면) 에밀리오 오캄포 교수를 중앙은행 총재로 임명할 것"이라며 "그는 중앙은행 폐쇄 임무를 맡게 된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세마(CEMA·거시경제연구센터) 대학 교수이자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연구원인 오캄포는 밀레이 당선인 핵심 책사 중 한 명이다. '달러화: 아르헨티나를 위한 해결책'이라는 책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을 보면 아르헨티나의 달러화 도입을 과거 에콰도르에서 시행했던 방식대로 진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국민에게 달러와 아르헨티나 페소 사용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하는 게 그 골자다. 에콰도르는 2000년에 남미에서 처음으로 달러를 법정 통화로 성공적으로 도입한 국가다.

당선인은 또 전동 톱을 들고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겠다고 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무기 소지 완화를 비롯해 장기 매매 허용과 지구 온난화 이론 배격 등도 공약으로 제시했다. 다만 중도파 포섭을 위해 일부 관련 공약을 다듬거나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은 있다.

외교면에서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밀레이 당선인은 중국, 브라질, 메르코수르(MERCOSUR·공동시장을 추진하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남미 4개국) 등과의 교역에 비판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선 "공산주의자들과 거래하지 않을 계획"이라거나 "중국에는 자유가 없고, 누군가 원하는 걸 하려 할 때 그를 살해한다"고 언급하는 등 공개적으로 반중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후보 시절 몇 차례 인터뷰에서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 및 이스라엘과의 협력 체계를 더 공고히 다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협력 등 전임 정부의 방침에 재조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 승인을 받아둔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가입(내년 1월)도 철회할 가능성이 크다.



◇제동 걸린 '핑크 타이드'

밀레이의 당선으로 중남미의 정치안보 지형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아르헨티나에서 우파 '비(非) 페로니스트' 후보의 집권은 2015년 마우리시오 마크리(64) 전 대통령 이후 8년 만이다.

현지 보수 진영에서는 2000년대 초반 남미를 휩쓸던 핑크 타이드가 마크리 전 대통령 당선 이후 한풀 꺾였던 것처럼, 밀레이 당선인도 최근의 중남미 좌파 정부 집권 분위기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실제 2018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페루, 볼리비아, 칠레, 브라질, 과테말라 민심은 수년 새 잇따라 좌향좌를 선택했다. 특히 콜롬비아에선 역대 첫 좌파 정권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는 기존 온두라스,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쿠바 등과 함께 이념적으로 중남미 전체를 뭉치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했고, 특정 이슈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세 과시로 구체화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강하게 성토한다든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인다든지 하는 게 그 사례다.

아르헨티나 좌파 정권은 중남미 주요국 중 제일 처음 일대일로에 협력할 정도로 중국과 가까웠다.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계기로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일대일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아르헨티나 기업이 중국산 제품을 수입할 때 위안화로 결제하게 하고, 보유 외환에 위안화 비율을 늘리는 정책 역시 현 정부 작품이다.

밀레이 당선인은 그러나 "미국과의 외교를 강화하고, 중국과는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내년 2월 엘살바도르에 대선이 있다. 재선을 노리는 나이브 부켈레 현 대통령은 우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5월 파나마 및 도미니카공화국에 이어 6월에는 멕시코에서 대선과 총선이 예정돼 있다. 중남미 주요국 중 하나인 멕시코의 경우 현재로서는 좌파 집권당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우파 후보들에 앞서고 있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강현철의 세상만窓] 중남미 좌파 `핑크 타이드`에 제동건 아르헨티나 국민들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투표일인 19일(현지시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당선인이 투표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은 모습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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