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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에게 권하라" 지주택 피해 막으려 구청까지 나섰지만… [이미연의 발로 뛰는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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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에게 권하라" 지주택 피해 막으려 구청까지 나섰지만… [이미연의 발로 뛰는 부동산]
성동구 옥수동지역주택조합 조감도. 출처 W건설사 홈페이지

"사업이 무산되면 납부한 분담금 전액을 환불한다는 내용의 '안심보장제 보증서'까지 작성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서울 성동구 옥수동지역주택조합 사기 피해자)

안녕하세요 금융부동산부 이미연입니다. 이번 시간 주인공은 '원수에게 권하라'는 악명(?)이 연관검색어로 뜨는 '지역주택조합'(이하 지주택)입니다.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갸우뚱 하실 분들을 위해 잠깐 배경설명부터 출발합니다. 어우 생각보다 나이(?)도 많군요. 1970년대 후반에 나온 제도라고 합니다.

제도의 애초 취지는 엄청 건전하고 바람직하고 순수했었...더랬습니다.(과거완료형)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지역 주민들이 모여 함께 산 땅에 집을 짓는 일종의 '아파트 공동구매'입니다. 조합원들이 직접 자금을 모아 땅을 확보한 뒤 시공사를 선정해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라 분양가격이 저렴하다는 부분이 지주택의 주요 마케팅 포인트입니다.

가끔 길거리에서 '반값 아파트'라고 펄럭이는 플랫카드를 보신 기억이 있다면, 맞습니다 그 현장이 바로 그 '지주택'입니다. '선착순 동호수 지정', '조합원 모집', '몇천만원 계약금이면 새아파트가 내집', '청약통장 없어도 새아파트 받는다' 등의 설탕문구가 곁들여지기도 합니다.

잠깐! 여기서 동작그만. "어우 혹하네"라며 훅 낚이시면 안됩니다. 지주택의 악몽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남의 땅에 집을 짓겠다며 조합원을 모아 그들이 십시일반으로 낸 출자금으로 땅을 사들여야하는 사업인데요. 조합과 업무대행사는 사업 초기에 지주들로부터 '동의서'를 받았다고 홍보합니다. 지주택이 사업계획승인을 따내려면 구역 내 토지를 95% 이상 확보해야 하는데, 보통 조합원 모집 단계에서는 땅을 사들인 것이 아니라 '동의서'만 받은 상황이라는 부분이 1차 함정입니다.

자 근데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 보유국 아닙니까. 일단 동의서에 서명은 해줬더라도 "내 땅을 헐값에 사서 아파트를 짓겠다니"라며 높은 가격으로 소위 '알박기'를 하는 지주들이 반.드.시 나타나더라구요. 얼토당토않는 금액을 부르는 일부 토지주들로 인해 사업은 전혀 진척되지 않고, 그만큼 사업비가 늘어나거나 매입 비용이 산꼭대기에서 굴러떨어지는 눈덩이처럼 무럭무럭 자라 조합원들에게는 '추가분담금 폭탄'으로 되돌아옵니다.

"아니다. 토지 100% 확보한 현장을 본 적이 있다"라면 그 곳은 이미 입주까지 마쳤을 겁니다. 저도 실제 토지주가 1인이었던 현장이 조합원 모집부터 입주까지 후다닥 끝낸 경우를 목도한 적도 있습니다...만 정말 흔하지 않은 그야말로 '레어템'입니다.

이는 통계상으로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조합원 모집부터 제대로 입주까지 성공한 경우는 2004~2021년 17년간 전국 전체 지역주택조합 중 17% 정도 뿐일 정도라고 하네요.

"원수에게 권하라" 지주택 피해 막으려 구청까지 나섰지만… [이미연의 발로 뛰는 부동산]
2017년 4월에 분양했지만 2023년 10월 현재 공정률 0%로 표기되어 있는 옥수동지주택 사기 현장 현황. 출처 W신탁사

'업무대행사'라는 명함으로 아예 작정하고 조합원 출자금을 꿀꺽하기 위한 사기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번 시간 서두에 등장한 건 역시 마찬가진데요. 서울 성동구 옥수동 일대에서 6명이 작당하고 400억원대 지주택 분양사기를 벌인 사건입니다.

옥수동지역주택조합장 한 모 씨와 감사 박 모 씨 등은 2016년 9월부터 지주들과 일반 시민들을 조합원으로 모집했습니다. 이듬해인 2017년 4월에는 옥수동 일대에 최고 34층, 593세대 규모의 랜드마크 아파트를 짓는다고 용산구 한남동에 번듯한 모델하우스까지 설치했고, 조합원들에게는 토지를 80% 이상 매입했다고 알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시공사로 예정됐던 W건설사는 '한강조망권·더블역세권·강남생활권'이라는 키워드로 무장해 분양했는데, 아직 건설사 홈페이지 '분양완료 단지' 코너에 해당 현장이 당당히 들어가 있습니다.

그 현장의 대리사무와 담보신탁을 맡은 W신탁사(분양당시에는 K신탁사였는데 2000년 W금융그룹에 인수됨) 홈페이지에도 '분양물건정보'란에 이름이 올라있군요. '공정률 0%, 입주시기 2020년 12월 1일'이라는 문구와 함께입니다.

조합과 업무대행사의 광고(?)를 믿은 조합원 428명은 430억원의 투자금을 냈지만, 사업은 6년 넘게 감감무소식입니다. 사기였거든요.

한씨 일당은 2010년 기존 조합 승계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알고 보니 한씨의 조합은 조합원 모집 승인조차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해당 사업지는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7층 이상의 아파트를 올릴 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토지 매입률은 더 처참합니다. 조합원들에게 80% 토지매입이라고 안내했지만, 실제로는 0이 빠진 고작 8% 뿐이었습니다.

며칠 전 이들은 사기혐의로 구속됐는데요, 어익후야 이번이 처음이 아니네요. 과거 구로구에서도 유사 범행을 저지른 전력이 있다고 합니다.

"원수에게 권하라" 지주택 피해 막으려 구청까지 나섰지만… [이미연의 발로 뛰는 부동산]
출처 정원오 성동구청장 블로그

이들의 구속여부가 알려진 지난 16일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본인의 블로그 등 SNS에 이 사건의 배경을 직접 알리기도 했습니다. "숨겨진 사연이 있다"며 운을 뗀 정 구청장은 "이번에 지역주택조합 분양사기 혐의로 구속된 한 아무개씨 등을 성동구가 고발해 소송까지 거쳤지만 패소했다"고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실제 성동구는 지난 2017년 한씨 일당이 당초 인가받지 않은 내용으로 지주택 사업을 추진하자 이들을 주택법 위반으로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행 주택법 94조엔 지자체장의 '리모델링주택조합'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만이 명시됐을 뿐, 지주택과 같은 기타 주택조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소송에서 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정 구청장은 "결국 직접 피해를 입은 분들의 고소로 이들 일당이 검찰에 넘겨지게 됐지만,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던 피해를 지자체가 법과 제도의 한계에 가로막혀 막을 수 없었다는 사실은 뼈아픈 일"이라며 안타까워했지만, 그 다음 단계를 잊지 않았습니다. 성동구는 이미 국토교통부에 주택법 94조 개정을 정식으로 건의했고, 국토부로부터 올해 연말까지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답변을 받은 상태라고 합니다. 어우 구청장님 진짜 열심히 일하시네요. 박수!!(앗 저는 다른 자치구 주민입니다...만 성동구 함 살아보고 싶어지네요. ;;;)

지주택 사기는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 정부는 2020년 1월 주택법을 개정(시행은 같은 해 7월 9일)하기도 했습니다...만 피해는 아직도 전국 단위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달 10일에는 지주택 사기로 기소된 서울 구로구 구로동지주택조합 전 업무대행사(H사) 대표 등이 2심에서 중형을 선고받는 등 처벌도 받았네요. 앗? 성동구 옥수동지주택 그 팀(?)인 듯 합니다.

아직도 '지주택의 늪'에 빠진 피해자들은 고통은 여전합니다. 더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관련 법 개정이 예정대로 진행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번 시간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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