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한기호의 정치박박] 김영호 때리던 민주당, "무정부상태" 반면교사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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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체포안 가결 전후 친명 전체주의 팽배
국회 안팎 물리력 예삿일…압력전화, 수박 색출
영장심사도 혼란 예상…"직접민주주의" 합리화
민주, 대의제 일반론 편 통일장관 맹비난하고
주권소재·행사 경계 허물더니 셀프 아노미 홍역
[한기호의 정치박박] 김영호 때리던 민주당, "무정부상태" 반면교사 전락
지난 9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본회의 정치 분야에 관한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자체장 시절 비리 의혹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 청구, 그로 인한 체포동의안이 지난 2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결국 가결됐다. 안으론 친명(親이재명) 팬덤이 전부 꿰찬 본회의장 방청석부터, 국회의사당 앞과 민주당 중앙당사까지 대혼란이 벌어졌다. 자타칭 '개딸'(개혁의 딸)을 비롯한 4000여명(경찰 추산)의 강성당원·지지자 인파가 국회의원들을 응징하겠다며 국회로, 당사로 몰려가는 등 물리력을 동원했다.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국회 정문과 가장 가까운 2개 출입구는 물론 지하통로 상당부분이 폐쇄됐다. 폐쇄한 철문을 파손하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아비규환이었다.

체포안 가결 이전부터 친명 강성당원·팬덤은 헌법기관인 개별 국회의원에 전화를 돌려 체포안 부결 투표를 압박하고, 받아낸 답변을 '당원킹' 사이트에 전시했다. 사실상 '공천 살생부' 효과다. 기세에 질렸는지 어기구 민주당 의원은 무기명 수기로 진행된 체포안 표결 당시 본회의 투표용지에 '부'라고 쓴 사진을 찍어 당원들에게 공개했다. '재명이네 마을'에선 "살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어기구 인정"이란 칭찬(?)이 나왔다. 일반국민은 선거 때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는 비밀투표 원칙을 간단히 깼다. 친문(親문재인)계 최고위원인 고민정 의원은 국회에서 웃음띤 채 걸어다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고 '수박'으로 몰려 해명에 나서기까지 했다.

[한기호의 정치박박] 김영호 때리던 민주당, "무정부상태" 반면교사 전락
지난 9월21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이에 반발한 이 대표 지지 강성당원 등이 민주당사(위)와 국회로 진입하기 위해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지하(아래)에서 경찰력과 충돌했다.<연합뉴스 사진, SNS 제보영상 갈무리>



뿐만 아니다. 체포안 표결 후로도 국회의사당역 일대 통제와 경계는 수시간 동안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당일 밤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에 민주당 비명(非明)계 의원 14명 명단과 함께 "라이플(소총)을 준비해야겠다"는 테러 암시 글을 올린 네티즌이 경찰 수사대상에 올라 22일까지 여론을 달궜다. 그 일주일여 전만 해도 개딸 50대 여성이 국회 본청 현관앞 난동 중 퇴거를 요청한 국회 측 경비대원을 쪽가위로 해치고, 이 대표 지지 70대 남성이 민주당 대표실 앞에서 혈서를 쓰겠다며 커터칼로 자해를 시도하는 사건이 충격을 줬다. 사회에 아노미(심리적 무정부상태)를 초래한 세력이 병상에 드러누운 이 대표 영장실질심사(26일) 즈음엔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불안할 따름이다.

당사자들은 "직접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항변해왔고 이젠 "국민항쟁"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민 대표성은 '글쎄'. 비판·관망하는 여론에선 과격 집단행동에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거나 "같은 한표라니" 탄식하기도 한다. 이같은 광경을 목도하며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국민 5000만이 모두 주권자로서 권력을 행사한다면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헌법 1조2항에서 얘기하는 국민 주권론이라는 것은 주권의 소재와 행사를 구분하고 있다", "국민이 주권을 소유했지만, 주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뽑고 지역구 대표인 국회의원을 뽑아서 대표를 통해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윤건영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면서 꺼냈고, 민주당 등 진보진영에서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반(反)헌법적 발언"이라고 몰아세운 내용들이다. 당시 윤 의원은 김 장관이 몸담았던 보수 단체 '한국자유회의'의 입장을 두고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에게 나온다'는 헌법 정신에 무슨 토를 달 수 있냐"고 캐묻는 데서 시작해 답변을 들은 뒤엔 "전형적인 뉴라이트 사고"라며 "민주주의의 기본이 돼 있지 않고 그 자체가 바로 전체주의적 사고이고 그런 모습이 극우"라고 몰아세웠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하고 '전체주의' 태도로 비판받는 게 어느 세력인지 되묻고 싶다.

김 장관은 국민주권의 '소재'와 '행사'에 대해 명확히 선을 그었는데, '국민주권 부정' 낙인은 생뚱맞다. 국민이 주권의 대리인을 뽑아서 대신 권력을 행사하게 하는 건, 대의제 민주주의를 설명한 일반론에 불과하다. 이를 득달같이 부정하려면 민주당 선출직 공직자들은 전부 직을 내려놨어야 하지 않을까. 질의 소재가 된 '한국자유회의'는 2017년 1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일 때 벼랑 끝에 내몰린 보수진영의 식자·원로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촛불'을 상징 삼은 진보진영이 광장정치로 대통령 탄핵을 제도권에 겁박하는 게 '제대로 통했던' 시기다. 대통령이 누군가에게 정신지배를 당한다느니, 세월호 인신공양을 했다느니 낭설이 그 동력이었다.


윤 의원이 소환한 한국자유회의의 입장은 2017년 1월 창립취지문 내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웅변을 토하는 여의도 정치인들의 의식은 북한헌법 63조의 '집단적 개체'를 주권자로 인식하게 하는 전형적인 전체주의적 사고"라는 내용으로 보인다. 당시 이 단체는 "(국정농단 의혹에 관해) 대통령의 잘못이 없지 않음은 분명히 한다"면서도 "'무조건 퇴진'은 법치일 수 없다. 우리 헌정체제의 대의제 민주주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표했다. 탄핵을 관철하려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한 세태나, 옛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비롯한 반미·친북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을 동시에 겨냥한 셈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를 좌초시키려던 소위 '광우병 집회' 때도 진보진영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 노랫말을 무기 삼았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은 '잘못이 없다'. 결국은 해석이 다른 집단 간의 충돌이고 누가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지의 문제다. 모든 국민 개개인이 모든 의사결정 주체로 개입하면 나라가 잘 돌아갈까. 적어도 보수진영은 2017년초 촛불 못지 않은 '탄핵 무효' 태극기 집회를 벌였고 유력신문과 제도권 정치인을 혐오하며 투쟁했으나, 친박(親박근혜) 팬덤으로 치부되며 잦아들었다. 2019년 보수야권은 '조국 사태' 집회로 다시 기세를 올렸지만 탄핵 시비를 접고 '입시비리 내로남불'을 향한 국민의 '보편 상식'에 호소한 결과였다.

[한기호의 정치박박] 김영호 때리던 민주당, "무정부상태" 반면교사 전락
지난 9월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제1야당 시절 문재인 정부·여당과 격렬히 부딪혔지만 행정과 예산편성을 대신하려 들거나 외교무대에서 국가 대표성을 참칭하진 않았다. 국정감사와 여론전에 승부를 걸었다. 다수의 선택을 받은 상대편 정권의 '보장된 임기' 동안 선은 지켰다. 현 야당은 불문율을 다 깨고 시도 때도 없이 경기장에 난입한다. '임기가 끝난' 전직 대통령이 북한 정권에서 숱하게 위반한 9·19 남북군사합의를 사수한다며 정치무대에 나서고, "'안보는 보수정부가 잘한다' '경제는 보수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라며 진영싸움을 걸었다. 통계조작 혐의 이전에 전년대비 가계소득증가율 그래프를 '2017년 3분기의 2.1%가 2015년 2분기의 2.8%보다 높게' 손수 그려낸 걸 떠올리면 황당하다.

제1야당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을 "국민 여러분! 참으로 죄송하다. 여러분께서 '촛불혁명으로 만들어주신 정권'을 지키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는 말로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선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도 지혜를 구하시라"고 훈계했다. '촛불'이 보수정권마다 조기 탄핵을 외치는 '진영의 상징'임을 모르는 국민은 이제 많지 않다. 촛불이나 특정인이 보편 국민의 대표성을 넘어서는 존재일 수도 없다. 윤 대통령의 '자유' 구호는 차라리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도 근거 삼고 있다.

국민 주권의 소재와 행사를 구분하는 김 장관의 논리를 부정하면서 민주당계 의원들이 나머지 5000만 국민 뜻을 '전부' 헤아려보지도 않은 채 촛불정권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를 이어가는 건 논리 모순에 가깝다. 물리력을 행사하려 모인 수천명 당원뿐 아니라 민주당 지지층 70% 이상이 반대해온 '이 대표 체포안 가결'에 찬성표를 던진 적어도 29명 이상의 의원들 역시 그들 논리대로면 절대다수 주권자를 배신한 지대추구로 단죄 대상이 돼버린다. 소위 '반란표' 상당수는 공교롭게도 친문을 비롯한 비명으로 분류된다. 이들 스스로 "뉴라이트 사고"라며 비아냥대던 그것의 반면교사로 전락했다. 앓는 소리만 하기 이전에 공당다운 반성과 책임을 보여야 한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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