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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부품·기술지원 중단"… 美 브로드컴 과징금 191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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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경쟁사 RFFE 제품 채택
브로드컴 "공급 중단할 것" 갑질
삼성, 울며 겨자먹기 계약 체결
공정위 "우월적 지위남용" 제재
"삼성에 부품·기술지원 중단"… 美 브로드컴 과징금 191억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북미 시장에 판매하는 갤럭시 S11(S20)의 RFFE(무선주파수 프론트엔드) 소켓(무선 신호의 송수신 담당)을 '증오스러운 경쟁자'의 제품으로 채택한 데 대해 몹시 실망스럽다"

지난 2019년 9월 25일, 글로벌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CEO는 삼성전자 대표이사에게 이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당시 삼성전자는 브로드컴에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최첨단·고성능 부품 공급을 의존하고 있었으나, 부품 공급 다원화 차원에서 경쟁 사업자의 제품을 채택하자 압박을 가한 것이다.

다음해인 2020년 2월부터 브로드컴은 신제품 출시를 앞둔 삼성전자에 부품 공급과 기술 지원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브로드컴 내부에서도 '기업 윤리에 반하는 핵폭탄 같은 협박'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경쟁 사업자 배제를 위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는 결국 브로드컴의 요구를 받아들여 매년 7억 6000만 달러 이상의 부품을 공급하는 장기계약에 서명해야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일 브로드컴 인코퍼레이티드 등 4개사의 이 같은 거래상 지위 남용에 대해 191억원(잠정)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향후 행위금지 명령)을 내렸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6월 브로드컴 측에서 제시한 동의의결안을 기각하고 이번에 전원회의를 통해 정식 제재 조치를 내린 것이다.

브로드컴은 지난 2020년 초 삼성전자에 부품 구매승인 중단, 선적 중단, 기술지원 중단 등의 수단을 동원해 삼성전자에 불리한 장기계약((Long Term Agreement·LTA)을 체결하도록 강제했다. 브로드컴은 스마트기기에 꼭 필요한 무선통신 부품(RFFE)과 커넥티비티 부품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2018년 기준 OMH PAMiD와 WiFi/BT 콤보 부품에 대해선 각각 92.4%와 98.0%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었고, 독립형 GNSS에 대해서도 67.6%의 점유율을 보였다.

이들 부품의 공급을 거의 대부분 브로드컴에 의존하고 있던 삼성전자는 2019년 부품공급 다원화를 추진하면서 갤럭시 S20에 경쟁사업자의 RFFE 부품을 채택했다.

매출 감소를 우려한 브로드컴은 다른 커넥티비티 부품까지 공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RFFE 부품 100% 탑재 또는 연간 8억 달러 구매를 요구하는 LTA 체결을 강요했다.

브로드컴은 내부 임원들 논의에서 삼성에 취한 이 같은 조치를 스스로 '폭탄 투하', '핵폭탄'에 비유하고, '기업윤리에 반하는' 삼성전자에 대한 협박이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생산라인에 차질이 우려된다', '가진 카드가 없다'는 등의 내부 메일에서도 드러나듯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2020년 3월에 3년간 매년 브로드컴에서 7억 6000만 달러의 부품을 구매하고 미달시 차액을 배상하는 LTA에 서명했다.
이는 2021년 부품 수요인 5억 1800만 달러를 훨씬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물량을 맞추기 위해 갤럭시 S21에 탑재하려던 경쟁사 부품을 브로드컴 것으로 전환하거나 당초 구매 대상이 아닌 보급형 모델에 브로드컴 부품을 탑재하는 등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해야 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가 브로드컴의 경쟁 사업자들이 제품의 가격과 성능에 따라 정당하게 경쟁할 기회를 빼앗은 '거래 상대방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공정위는 해당 제재와 관련해 대법원까지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은 입증이 어렵다는 점에서 불공정 행위를 적용하는데 그쳤다. 사건이 발생한 2021년 8월 기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의 과징금 상한은 관련 매출액의 3%로 불공정 행위의 상한인 2%보다 높았다. 2021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현재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은 관련 매출액의 6%, 불공정 행위는 4%로 상한선이 올라갔다.

공정위 관계자는 "브로드컴의 행위로 인해 경쟁 제한성이 일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거래상대방이 삼성전자 1개에게 한정되어 있고 애플 등 되는 시장 참여자에게는 영향을 미친 바가 없었다"며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조항을 적용할 정도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동의의결을 통해 보다 신속한 피해 보상과 거래질서 개선을 도모했지만, 브로드컴이 제시한 의결안이 충분치 않아 기각하고 정식 제재를 결정했다"며 "반도체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경쟁여건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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