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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칼럼] 초전도체 이슈, 진위 논란만 할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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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ICT과학부장
[안경애 칼럼] 초전도체 이슈, 진위 논란만 할 때 아니다
"프로젝트 착수 8.5일째. 마침내 만들었어요. 이게 마이스너 효과일까요?"

상온 초전도체 'LK-99' 재현실험 영상을 공개한 곳은 대학이나 유명 연구소가 아니다. 창업 4년차 미국 우주 스타트업 바르다스페이스다. 이 회사는 국내 연구진이 논문에 공개한 방법을 써서 불과 일주일여 만에 결과물을 얻었다. 영상을 본 한 엔지니어가 흥미로운 글을 올렸다. "1조5000억 짜리 연구설비를 가진 국립 연구소와 '우주 카우보이'가 벌이는 대결에서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카우보이로 표현된 바르다는 만만한 기업이 아니다. 스페이스X 출신 기술자가 세운 이 회사의 목표는 우주공간에 공장과 산업단지를 세우는 것이다. 제조모듈을 갖춘 우주선과 지구 재진입 캡슐을 개발 중이고 작년에는 첫 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바르다의 영상에 "상업화되면 굉장하겠다. 슈퍼 호프"라는 댓글을 남겼다. 머스크는 전기차 제조·충전, 우주발사체, 위성통신과 함께 에너지 사업도 하고 있다. 상용화 가능성이 보이면 언제든 뛰어들 의사가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여전히 초전도체 이슈는 과학계가 이끌고 있지만 어느 순간 바뀔 수 있다. 속도와 자본, 저돌성으로 무장한 기술기업들이 가세하면 실험실에서 갓 탄생한 기술이 산업이 된다. 우주를 시장으로 만든 스페이스X가 그랬다. 물론 바르다가 만든 것은 현재로선 초전도체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과학계는 의심과 냉담 속에 희미한 기대를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국내와 해외 과학계의 상반된 분위기다. 한국이 전문 학회 중심으로 '진위 검증'에 집중한다면, 해외는 신물질 연구에 동참해 새로운 발견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족히 수백개 연구그룹이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LK-99를 '굽고' 있다. 스타트업까지 토치와 오븐을 동원해 가세했다.

수많은 '발견 선언'과 검증 실패를 반복하고도 과학자들이 초전도체에 흥분하는 것은 아직 베일에 싸인 게 많기 때문이다. 1911년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후 이를 설명하는 'BCS이론'이 나오는 데 46년이 걸렸다. 초전도 현상에 대한 이해는 66년 전 나온 이 이론에 멈춰 있다.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 계속 발견되지만 이유를 모른다. 영하 200도 수준에서 일어나는 '고온 초전도' 현상도 원리를 알지 못한다. LK-99를 한국이 만들었지만 그 원리를 규명하고 완성도를 높여도 얻을 게 많다는 의미다. 수십 년간 연구해온 LK-99 연구진도 이 물질이 아직 덜 완성됐다고 밝힌다.


LK-99가 전통적 개념의 초전도체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신물질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기저항은 0인데 반자성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 해도 엄청난 시장으로 연결된다.
인류는 초전도라는 거대한 코끼리의 작은 한 부분만 알고 있다. 영하 200도 초전도 현상도 설명 못하는 이론으로 상온 초전도 현상을 재단하는 것은 무리다. 우리가 이론의 틀에 갇혀 '초전도체냐 아니냐'를 따질 때, 우리가 해낸 발견을 해외에서 발전시켜 주도권을 잡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벌써 저항 제로나 반자성을 확인했다는 보고가 잇따른다. 우리 과학계도 심판 모드로 검증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가능성 탐색에 뛰어들어야 한다. 초전도체냐 여부보다 그게 무엇이고 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물리·화학·재료공학 등 폭넓은 연구그룹이 기술 검증과 가능성 탐색에 협력해야 한다.

상대성이론을 통해 우주에 대한 이해를 넓힌 아인슈타인이 도전했다 실패한 게 초전도 원리 규명이다. 비밀을 푼 무기는 그가 끝까지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한 양자역학이었다. 인공지능이 수십년 전 개발되고도 암흑기를 거치다 컴퓨팅 성능 발전에 힘입어 지금 꽃 피우는 것과 비슷하다. 초전도 현상은 지금이 새로운 발견의 초입일 수 있다. 슈퍼컴퓨팅부터 양자과학까지 주변 기술이 충분히 무르익었다.

실패 시 과학계 전체로 파편이 튈까, 책임론이 불거지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대신, 우리 과학계가 가슴 뛰는 발견에 뛰어들면 좋겠다. 정부와 국민은 그들을 지켜보고 응원해 주면 좋겠다. 과학은 이런 과정을 거쳐 진보하고 우리 삶을 바꿔왔다.

안경애 ICT과학부장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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