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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미` 그친 행동주의 펀드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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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주주 상정 상장사 44곳
상정제안 79건 중 9건 승인
전문가 "경영여건 고려해야"
`용두사미` 그친 행동주의 펀드의 그림자
연합뉴스 제공.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국내 증시에서 하나의 '테마'로 자리 잡았던 행동주의펀드가 3월 주주총회 시즌 이후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주총에서 이들 펀드가 상정한 안건이 대부분 부결된 데다가, 이후 각종 도덕적 해이 논란까지 불거지며 여론이 싸늘해졌기 때문이다.

이들 사모펀드들이 결국 단기 시세차익만을 노리는 '기업사냥꾼'과 다르지 않다는 곱지않은 시선까지 나온다. 기업사냥꾼은 본래 기업의 인수·합병(M&A) 전문투자자를 일컫는 말이다. 주로 경영이 부실하고 가치 대비 저평가 돼있는 종목을 집중적으로 매입, 회사 경영에 압력을 가한 후 보유 주식을 비싼 값에 되팔아 차익을 실현한다.

지난달 초에는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를 상대로 주주 활동을 벌여온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가 얼라인운용의 모회사이자 이 대표가 지분 100%를 보유한 얼라인홀딩스를 통해 에스엠 주식 1만주를 매도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됐다. 차익으로만 5억7000만원 이상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얼라인운용이 보유했던 에스엠 주식 전량(26만8500주)은 증권사들의 대차거래에 사용되기도 했다. 기업 가치 제고를 기치로 내세운 행동주의펀드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세력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셈이다.

KT&G를 대상으로 적극 공세를 이어온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현실성 없는 안건을 주주제안하며 눈총을 받았다. 주주제안 자료에 따르면 FCP측은 인삼사업 관련 전문성 없는 인물들을 인삼공사 대표이사나 사외이사 후보로 거론하고 인삼공사의 인적분할 후 이사보수의 한도를 100억원으로 책정했다. 100억원은 인삼공사 영업이익의 약 10%에 달하는 금액이다.

안다자산운용은 KT&G 주주총회 안건으로 인삼공사의 인적분할 건 등을 상정해달라는 가처분을 법원에 제기했으나 결국 기각됐다.

강성부 펀드로 유명한 KCGI 역시 오스템임플란트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먹튀' 논란이 일었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지난해 12월 자회사를 통해 오스템임플란트 지분 6.92%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하며 오스템임플란트 기업가치는 5분의 1 수준으로 저평가돼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후 사모펀드가 진행한 공개매수에 응하며 투자 수익만 챙겨 떠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같은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듯 FCP의 이상현 대표는 최근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행동주의 펀드한테 도덕성을 기대하는 이유를 되물어보고 싶다"며 "행동주의가 추구하는 목표가 사회적 가치와 부합해 좋은 시선들이 있어왔으나, 펀드의 주된 목적은 수입의 발생"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는 주주행동주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올바른 성과를 내려면 다른 주주들과의 연대 및 책임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열린 정기주총에서 일반 주주들의 주주제안을 상정한 상장사는 전년 대비 57.1% 증가한 44개사로 집계됐다. 하지만 상정된 주주제안 79건 중 승인된 안건은 9건(11.4%)에 불과해 대부분 표 대결에서 고배를 마셨다. 특히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 제안 안건은 대부분 부결됐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기업가치 제고를 시도하는 전략을 펴기보다는 현재의 경영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미래 주주가치 실현을 한꺼번에 반영하려는 전략 등으로 타깃 기업 내부 경영진의 의견과 간극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주주 행동주의가 이해 관계자의 범위를 확장시키지 못하고 소액주주 확보에만 한정돼 있었고, 현재의 경영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라는 인식을 불러 일으켰다"며 "이는 곧 국민연금이나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등이 회사 이사회 안건에 호응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얼라인파트너스의 주주제안을 받았던 금융지주사들이 전반적으로 올해 배당성향을 높이고,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압박으로 태광산업이 유상증자를 취소했던 사례처럼 기업 입장에서는 주주가치 제고 이슈가 공론화 되면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단기 배당 확대나 행동주의 펀드가 추천한 사외이사에 대한 무리한 임금 책정 등 결정적으로 소액주주의 공감을 얻지 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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