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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일 前주일대사 "스위스에도 있는 핵 공격 대피계획, 우린 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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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31일 이른 아침 북한은 미상의 우주발사체를 쏘았다. 서울시가 보낸 경계경보가 서울 시내를 흔들었다. "대피하라"고는 했지만 왜, 어디로, 어떻게가 모두 빠진 공허한 메세지였다. 사이렌 소리에 잠을 설친 국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서울시와 행정부는 서로 네 탓 하기 바쁘다. 정치권도 서로를 공격할 소재로 삼을 뿐이었다. 비상 상황, 우리에겐 '컨티전시 플랜'이 없었다.

1일 라종일(82·사진) 전 주일대사를 만났다. 라 전 대사는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해외·북한 담당 1차장,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손꼽히는 외교·안보 전문가다.

"스위스에도 있는 핵 공격 대비 대피 플랜이 한국엔 없습니다. 한국보다 전쟁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나라도 방공호를 만들고 대피 훈련을 하는데 우리는 무사태평이지요."

물론 우리에게도 비상 계획이 있지만 공무원의 서류 위에 글자로 존재할 뿐이다. 실제로 이를 운영할 능력과 의지는 필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리 전 대사는 "북한은 최대 130개의 핵폭탄을 완성해 보유하고 고정식·이동식 SLBM SRBM까지 실험을 마쳤는데 방공호는커녕 대비훈련도 안하고 있다. 자포자기 한 채로 재앙을 기다리는 것 같은 격이다. 0.01%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전쟁이다. 전 국토의 요새화로 북한은 9889개의 땅굴을 파놓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에 제대로 된 대피소가 있나"라고 되물었다.

그는 지금이라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피소라는 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다. 대피소라면 갖춰야 하는 요건이 있죠. 사람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을 확보할 것, 공기 순환이 될 것, 식수 공급이 용이할 것, 응급 의약품을 갖출 것 등이죠." 여기에 주민센터 등 일선 행정기관이 주민 대피를 지휘할 체계도 갖춰야 한다. 예컨대 서울아파트 1동부터 5동까지는 전철역으로 6동부터 10동까지는 인근 학교로 하는 식으로 대피 장소를 지정하고 대피를 유도할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라 전 대사는 "핵 공격 대피소 필요한 이유는 자명하다"라면서 "서울의 경우 전술핵 공격이 될텐데 그렇게 되면 직접 폭격 피해보다 방사능 피폭 피해가 크다. 일주일만이라도 지하에서 대피할 수 있게 되면 생존자는 크게 늘어난다"라고 설명했다.

전직 원로 외교관은 박근혜 대통령 당시 정부 인사를 통해 대피소 설치에 대한 아이디어를 건의했다고 한다. "동네마다 있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등의 지하에 대피소 겸 지하 주차장을 만들어서 평시에는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응급시에는 필요한 장비를 갖춘 대피소로 활용하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침체된 건설 경기 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때 시작했으면 자금쯤 완성했을 겁니다." 그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라 전 대사는 "신 냉전시대에 대비해야 멸종을 면할 수 있다. 다 살자고 첨단산업도 외교도 하는거 아닌가? 우선 순위는 방공호 구축과 전 국민의 자발성이 가미된 체계적 훈련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라종일 前주일대사 "스위스에도 있는 핵 공격 대피계획, 우린 왜 없나"
라종일 전 주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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