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31일 부당 국제거래로 국부를 유출하면서 국제수지와 나라살림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역외탈세자 52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들 52명이 빼돌린 세금 규모는 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현지법인을 이용해 수출거래를 조작한 수출업체가 19개에 달했다. 이들은 사주 일가가 지배하는 페이퍼 컴퍼니를 수출 거래에 끼워넣어 이익을 빼돌리거나 수출대금을 유용했다. 또 사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국외 특수관계자에게 상품이나 제조기술, 지적재산권 등을 저가로 수출해 부당하게 해외로 이익을 유보한 경우도 다수였다.
예를 들어, 내국법인 A사는 해외 현지법인 B에 제품을 위탁 제조하고, 이를 현지 거래처에 공급하는 외국인도수출 방식으로 거래하고 있었다. 이 회사 사주는 자녀 명의로 페이퍼 컴퍼니 C사를 설립한 후, 형식상 구조만 C사가 사업을 수행하는 식으로 변경하면서 A사는 수출물량이 급감했다. 게다가 사주 일가는 탈세한 자금으로 외국에 27채의 주택을 매입하고 취득 사실조차 국내에 신고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법인세 뿐만 아니라 임대소득까지 탈루한 것이다. 국세청은 "페이퍼 컴퍼니 C사의 소득이 실질적으로 A사의 소득에 해당한다"면서 "A사에 과세하고, 사주 일가에게도 해외 부동산 임대수익을 추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당 반출한 사모펀드 및 역외 편법 증여한 자산가 12명도 과세당국에 적발됐다. 대표적으로 소위 '검은머리 외국인'인 D씨는 역외 사모펀드를 설립하고, 자신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펀드운용사에 국내 기업 인수·매각 용역을 제공했다. D씨는 단기간에 500%가 넘는 매각 차익을 거둔 후, 펀드운용사에는 성공보수의 3% 정도만 대가로 수취했다. 나머지 97%는 자신이 소유한 페이퍼 컴퍼니로 빼돌렸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글로벌 플랫폼 기업도 세무조사 대상에 21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전세계적으로 플랫폼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E사는 국내 고객에게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영업·판매, 홍보·마케팅, 연구개발 기능 등을 국내 자회사들에 분산했다. 자회사 기능을 합한 전체로 보면 E사는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업 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국내에 사업장을 등록하고 수익을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E사는 쪼갠 자회사를 각각 단순 서비스 제공자로 위장하면서 세금 신고를 피했다.
국세청은 E사가 조 단위의 매출을 해외로 가져가면서 수천억원 규모의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국내 수익은 우리나라에 귀속되는 것으로 보고 과세할 방침이다.
과세당국은 최근 3년 간 이러한 역외탈세를 조사해 4조 149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1년에 평균 1조 3000억원이 넘는 탈세액을 바로잡은 셈이다.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은 "역외탈세는 세금부담 없이 국부가 유출되는 반 사회적 위법행위"라면서 "공정·적법 과세로 우리나라의 과세 주권을 지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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