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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21세기 `풍선 전쟁`, 뭐길래 세계를 흔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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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역사는 유구, 제갈공명의 '공명등'도
18C 유럽에서 열기구 이용 비행도 이뤄져
2차대전때 日, 美에 9300개 풍선 날려보내
美中, 풍선 영공 침범 놓고 충돌하다 소강
사소한 사건이 전쟁 될 수도, 상호 자제를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21세기 `풍선 전쟁`, 뭐길래 세계를 흔드나


미국이 격추한 '중국 풍선'이 전 세계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상공에 난데없이 나타난 거대한 풍선, 이는 미국인에게 충격을 주었고 중국을 더욱 경계하게 만들었다. 무역전쟁, 반도체전쟁에 이어 이젠 '풍선전쟁'까지 터지면서 미중 패권전쟁이 점입가경이다.

◇풍선의 역사

풍선은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이용해 부력을 얻음으로써 공중으로 떠오르는 물건이다. 풍선의 역사는 유구하다. 중국에는 풍등(風燈)이 있다. 촛불을 켜 종이풍선 안의 공기를 데워 하늘로 띄우는 등이다. 하늘로 띄우면서 성공과 복을 기원한다. 삼국시대 제갈공명이 처음 발명했다고 해서 '공명등'(孔明燈)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풍등이 있다.

인류는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드디어 1783년 11월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그 꿈을 이뤄냈다. 형제는 하늘로 오르는 열기구를 타고 약 10분 동안 날았다. 인류 역사상 첫 유인풍선 비행이었다. 그때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열기구 붐이 일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풍선은 무기로 활용됐다. 관측풍선, 탄막(彈幕)풍선 두 종류가 있었다. 관측풍선은 말 그대로 공중에서 적의 동향을 정찰하는 풍선이다. 탄막풍선은 적 비행기의 접근을 방해하기 위해 설계된 무인풍선이다. 이는 밧줄과 철사로 땅에 묶여진 채로 주요 지점 위에 떠 있는 풍선이다. 적기의 저공 침투를 막는데 효과가 있었다.

풍선 속에는 수소가 채워져 폭발하면 비행기가 타격을 받을 수 있어 풍선 격추는 매우 위험한 임무였다. 그래서 풍선을 격추시킨 조종사에게는 '풍선 버스터'(Balloon Burster)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수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풍선은 유효한 무기였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일본은 미 본토를 향해 '풍선폭탄'을 대량으로 날렸다. 제트 기류를 타고 북태평양을 건너 미 본토에 도달하면 떨어져 폭발하는 구조였다. 1944년 11월부터 1945년 3월까지 9300여개의 풍선을 보냈고, 그 중 300여개가 북미 상공에 도착했다.

당시 미 정부와 군 당국은 풍선폭탄이 심리적 공황을 일으킬 것을 우려했다. 특히 페스트균 같은 악성 세균을 퍼뜨릴 수 있다고 두려워했다. 풍선폭탄 조사에 동원된 세균학자만 40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때문에 엄격한 정보통제 조치를 취했다. 풍선폭탄으로 인한 사망, 산불, 정전사고 등을 철저히 은폐했다. 미 서해안 오리건주(州)의 숲에서 소풍을 즐기던 여교사와 학생 5명이 나무에 꽂혀있던 풍선폭탄을 만지다가 폭발해 모두 사망한 사건이 유일하게 기록된 사례다.

전과(戰果)는 미미했지만 일본의 풍선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무기 가운데 최장 거리를 날았다. 세계 최초의 대륙간 공격 무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본의 풍선폭탄은 공격용이라기 보다는 미국 측에 "미 본토가 직접 공격을 받았다"는 심리적 충격을 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풍선폭탄은 심리전 무기였다.

◇미중 갈등 고조시킨 '상공의 스파이'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는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 영공에서 중국이 보낸 고고도 정찰풍선을 F-22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해 성공적으로 격추했다고 밝혔다. 미국인들은 최첨단 전투기가 AIM-9 공대공 열추적 미사일을 발사해 파괴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환호했다.

이후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다음날 중국 측은 "단순히 항로를 벗어나 표류한 민수용 기상관측 풍선"이라면서 "관례를 깨는 과잉대응"이라고 반발했다. 예정됐던 토니 블링컨 장관의 중국 방문은 전격 연기됐다. 2월 9일 미 하원은 "중국이 우리 영공에서 정찰풍선을 띄운 것은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러자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는 "결의안은 악의적 선전이자 정치적 조작"이라는 성명을 내며 반발했다.

그 뒤에도 미국은 알래스카, 캐나다 유콘, 미시간주 휴런호 상공에서 미확인 풍선들을 미사일로 격추했다. 격추에 쓰인 AIM-9 미사일 1기의 가격은 최소 60만달러, 우리 돈 7억6000만원에 이른다.

값비싼 미사일로 값싼 풍선을 격추한 것을 놓고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지적이 일었다. 그러나 전투기에 장착된 기관포로는 풍선을 격추할 수는 없다. 고무 재질로 만든 풍선에 총알 구멍을 내더라도 풍선 크기에 비해 워낙 구멍이 작다. 내부의 헬륨가스가 빠져 나가기에는 충분치 않은 것이다. 실제로 1998년 캐나다 공군 F-18 전투기는 소속 불명의 기상기구에 20미리 기관포를 1000발 발사했지만 9일이 지나서야 핀란드의 한 섬에 내려앉은 바 있다.

대포로 모기 잡은 꼴이 됐지만 어쨋든 이번 사태는 미중간 긴장을 배가했다. '풍선'을 둘러싼 갈등은 외교적 마찰을 넘어 경제 영역까지 번졌다. 미국은 중국의 정찰풍선 개발과 관련된 기업들과 연구소를 제재했다. 중국도 미 방산업체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온을 제재에 올리며 맞대응했다.

◇사소한 것도 부풀어 오르면 '전쟁' 된다

이번 풍선전쟁을 보면 냉전시대 'U-2 격추' 사건이 생각난다. 1960년 5월 1일, 초고고도에서 비행하던 미군 정찰기 'U-2'가 소련 상공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는 탈출해 무사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그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U-2의 임무는 기상 관측이다"고 거짓말을 했다.

미국 정부가 잡아떼자 5월 7일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는 "조종사 파워스가 살아있다"고 밝혔다. 파워스가 스파이 행위를 인정하면서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곤경에 처했다. 결국 아이젠하워는 흐루쇼프에게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U-2' 비행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 미국이 자국 영공에 떠있는 풍선을 격추시킨 것은 분명히 옳은 행동이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의 위협'을 가시화하는데 성공하면서 자국이 영토 주권 침해를 당한다면 무력이든 경제적 제재든 응징에 반드시 나선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미국은 사태를 크게 키워 전 세계적 핫 이슈로 만들면서 동맹까지 결집시키는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역사는 이런 '사소한' 사건이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현재 미중 관계는 갈수록 적대적으로 악화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라면 언제든지 '작은' 사건이 '큰' 사건으로 비화되어 급기야 통제 불능의 상태를 만들 위험성이 다분하다. 중국풍선 문제가 그럴 뻔했다.

다행히 문제는 확대되지는 않았다. 사태 초반과 달리 양측 모두 대화를 강조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상호 갈등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서로의 활동에는 투명성이 필요하다. 사소한 사건이나 오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길 원하지 않는다면 '과잉 대응'은 반드시 자제돼야 한다. 미중 양국 지도자들은 이 점을 각인해야 할 것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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