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무부가 반도체 생산 보조금에 대한 세부조건을 공개했다.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의 반도체 생산 보조금 신청 절차 및 심사 기준을 발표한 것이다. 경제와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각종 규제 조항을 넣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초과이익 공유제다. 1억5000만달러(약 1990억원) 이상 지원금을 받는 기업은 현금흐름 혹은 이익이 사전에 정한 규모보다 많을 경우 미 정부와 이를 나눠야 한다는 내용이다. 즉, 보조금을 받은 후 큰 이익을 낸다면 이를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과 협업하면 보조금을 전액 반환하도록 하는 조항도 있다. 중국 등 우려 국가와 공동연구나 기술 라이선스를 진행할 경우, 받은 보조금은 전부 토해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중 한 곳을 선택하라고 제시한 셈이다. 뿐만 아니다. 군사용 반도체를 미국에 안정적으로 장기 공급하는 업체를 우선 지원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미국의 공세에 한국 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매번 미 정부와 초과이익 규모를 정하는 협상을 벌어야 하는 일은 그 자체가 경영 압박이다. 중국에서 반도체를 대규모로 생산·판매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선 중국 사업을 접어야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두 업체의 반도체 제품 관련 중국 매출 비중은 40~50%에 달한다. 안 그래도 우리 반도체 업계는 경기둔화와 그에 따른 수출 감소 등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올 2월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42.5% 급감해 두 달째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월간 기준으로는 7개월째 내리막길이다.
이런 마당에 미국의 규제 조항은 그러잖아도 힘든 우리 업계를 짓누를 것이다. 이건 보조금이 아니라 족쇄 수준이다. 보조금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조건이 공개된 후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관계 당국과 계속 협의할 예정"이라고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정부 대응이 소극적이다. 필사적이지 않으면 미국은 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정부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가 필요하다. 배수진을 친다는 결연한 자세로 미국과의 협상에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생산 보조금 신청 절차 및 심사 기준을 발표했다. 사진은 반도체 웨이퍼. EPA 연합뉴스
![[사설] 韓기업 목 죄는 美 반도체 보조금제… 사즉생 각오 협상하라](//contents.dt.co.kr/images/202303/2023030202102369061001[1].jpg "[사설] 韓기업 목 죄는 美 반도체 보조금제… 사즉생 각오 협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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