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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강진에 흔들리는 에르도안 왕조, 벼랑 끝에 선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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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야 내진설계 의무화, 그나마 준수 안돼
경제개발 명목 건축물 마구 허가 부실공사 키워
부패 무능 늑장대응이 재앙부른 人災 인식 퍼져
20년통치 에르도안 재선 빨간불, 최악 정치위기
지진으로 일어선 에르도안, 지진으로 꺼지는 중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강진에 흔들리는 에르도안 왕조, 벼랑 끝에 선 `술탄`
튀르키예 지진 사망자가 4만6000명을 넘었다. 튀르키예 건국 이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이번 사태가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슬픔은 분노로 바뀌는 분위기다. 대규모 자연재해가 '혁명의 신호'라는 믿음은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무엇 때문에 피해가 막대했나

지난 1999년 튀르키예에선 규모 7.4의 지진이 발생해 1만7000여명이 사망했었다. 이후 건축물에 대한 내진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2018년에서야 정부는 신축 건물에 대한 내진 설계 의무화 등 새로운 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그 전에 만들어진 건축물은 지진에 무방비 상태로 사실상 방치되어 왔었다.

법 제정 이후에도 내진 기준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더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건설을 경제발전의 핵심이라 부르면서 건설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전국에 건설 붐이 일었다. 그 결과 내진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조잡한 건축물들이 대거 건축되었다. 많은 건물들은 철근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다. 대부분 돌이나 벽돌, 블록으로 지어져 지진에 취약한 구조였다.

지진은 지난 6일(현지시간) 새벽 4시 직후에 발생했다. 무려 1만2000여채의 건물들이 흔들흔들 하더니 성냥갑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잠을 자다가 깨어나지도 못한 채 순식간에 묻혔다. 내진 규제가 법대로 실행됐다면 지진이 일어나도 손상은 부분적으로 그쳤을 것이다. 건물 전체가 파괴되는 것은 피할 수 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 대재앙을 낳았다.

시리아에선 내전 갈등이 피해를 키웠다. 시리아 북동부의 재난피해 지역은 에르도안 정권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이 통제하는 지역이다. 난민촌의 집들은 지난 10년 동안 포격의 희생물이었다. 이미 집들은 흔들거리는 상황이었다. 강진이 타격하면서 모두 모래성처럼 와해됐다. 반군이 장악한 지역이라 시리아 정부 차원의 구호 작업이나 구호품 지원도 어려워 희생자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원인으론 군 투입이 늦었다는 점이 지적된다. 군을 제때 투입했다면 지진 이후 구조나 수습, 치안 확보가 빠르게 진행됐을 것이다. 실제로 1999년 지진 대응에서 군은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지진에선 군은 뒤늦게 투입됐다. 군대가 민간기구인 재난비상관리국(AFAD)의 지시를 받아야했기 때문에 대응이 지연되었던 것이다. 현행 법에 따르면 군은 민간의 동의가 있어야만 국내에서 작전을 펼칠 수 있다. 이는 군부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다. 지난 2016년 7월 발생했던 군부 쿠데타가 계기였다.

이런 요인들을 따져보면 부패, 무능,늑장 대응 등이 화를 키운 셈이다. 지진 발생 직후 최소 15명이었던 사망자 수는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희생은 얼마나 증가할 것인가? 튀르키예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것은 당연하다.

◆'심판론' 확산, 흔들리는 철권 통치

지난 20년간 나라를 통치해온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제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대통령 심판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에르도안은 지난 2003년 의원내각제 하에서 총리가 된 후 권력을 장악했다. 총리 4연임 제한에 막히자 2010년 헌법을 개정해 2014년 첫 직선제 대통령이 됐다. 2017년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로 또 헌법을 개정했다. 2016년 쿠데타를 진압한 후 '피의 숙청'에 나섰다. 5만명을 체포하고 15만명을 추방했다. 방식이 냉혹해서 그는 '술탄' '독재자'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탄탄하게 권력기반을 다진 그는 여세를 몰아 오는 5월 대선에서 개헌 이후 5년 임기제의 두번째 집권을 노려 왔다. 하지만 지진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번 지진으로 그는 중요한 정치적 지지 기반을 잃었다. 지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동남부는 이슬람 중심주의를 주창해온 에르도안을 열성적으로 지지해온 지역이다. 그러나 에르도안은 이 곳에서 완전히 민심을 잃었다.

사실, 에르도안은 지진 이전에도 곤경에 처해 있었다. 극심한 경제난 탓이었다. 에르도안 정권이 비전통적 경제정책을 추구함에 따라 튀르키예는 물가 상승과 자국 통화인 리라화의 급격한 가치 하락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 물가상승률은 85%로 25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달러 대비 리라 가치도 절반 정도로 폭락했다.

에르도안은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정책이 절실히 필요했다. 인플레이션 부담을 줄이기위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행히 올들어 물가는 다소 상승세가 진정됐었다. 그런데 강진이 발생했다. 정책은 펴보기도 전에 지진에 묻혀버렸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 두 명의 야당 후보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상대로 출마하면 모두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해 결선 투표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선 투표에서도 에르도안은 패배할 것으로 점쳐졌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의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CHP 대표가 가장 유력한 야권의 대항마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지난 2019년 3월 치러진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에르도안의 최측근을 물리치고 승리했지만 에르도안이 창당한 집권여당 정의개발당(AKP)이 선거 부정을 주장하면서 재선거를 치뤘다. 그해 6월 재선거에서 그는 훨씬 더 여유 있는 승리를 거둬 '스타'로 발돋음했다. 이스탄불에서 25년동안 이어진 AKP 통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자 그는 눈엣가시가 됐다. 집권세력들은 그의 정치생명 끊기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튀르키예 법원은 이마모을루 시장에게 선거관리위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징역 2년 7개월을 선고하고 해당 기간 시장직 수행도 전면 금지했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항소했고, 항소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그는 시장 직위를 유지하게 된다.

에르도안도 집권하기 전에 이스탄불 시장을 지냈었다. 당시 위헌 연설을 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4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었다. 후에 그는 1999년 대지진에 대한 정부 대응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 국민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기적적으로 복귀했다. 지진 대응에 대한 '정부 심판론' 속에 치러진 2002년 조기 총선에서 권력을 잡은 것이다.

지진 덕에 집권에 성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지진으로 실각 위기에 빠져있다. 대권 유지를 꿈꿨지만 대지진과 함께 그 꿈은 수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술탄' 실각 여부에 쏠리는 세계의 눈

이번 튀르키예 대선 결과는 국제 정세에 복잡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동안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주요 강대국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리더십을 과시하면서 권력을 강화해 왔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많은 회의를 가지면서 '휴전 중재자'로 활동 중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단된 식량 수출을 재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도 수시로 소통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전쟁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된 것이다.

또한 그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대해선 제동을 걸었다. 나토 가입 승인권을 손에 쥔 에르도안은 높아진 몸값을 적극 활용하면서 미국과 유럽을 흔들어 왔었다. CNN은 "세계의 눈이 에르도안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 중동 정세 등이 크게 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에르도안에게 이번 대선은 가장 힘든 선거가 될 것이다. 에르도안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승부수를 던질 것이 분명하다. 이 승부수가 국제 정세에 어떤 파장을 던질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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