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그냥 서 있어도 `힙`한 이들… 작은 몸짓엔 무대 흔드네

이재영 '시나브로가슴에' 감독
11월 '구조의구조' 선봬
새로운 동작보단 기본기
'속도'의 디테일에 초점
정철인 '멜랑콜리댄스컴퍼니' 대표
29·30일 '제로그램' 공연
직접적 메시지 담지 않아
일상의 '날것' 움직임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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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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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그냥 서 있어도 `힙`한 이들… 작은 몸짓엔 무대 흔드네
멜랑콜리댄스컴퍼니 '0g'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안무가 이재영 & 정철인


지난 7월, 국립현대무용단 '힙합'에 안무가 이재영과 정철인의 작품이 올랐다. '젊고 영향력 있는 안무가'로 분류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이전 시대와 다른, 당신만의 새로움은 무엇인가요?"

이재영의 답은 "작업할 때 '뭐가 새로울까'라는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였고, 정철인은 "어떤 관점으로 새로움이라는 것을 보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냐"며 반문했다. 하나의 질문에서 파생된, 서로 다른 두 개의 답. 답변을 따라 인터뷰의 방향도 다르게 흘렀다. 같은 곳에서 시작했지만, 전혀 다른 결말에 다다른 두 안무가의 이야기. 이들이 직접 밝힌 최근작에 대한 설명과 작업 과정, 그리고 '현대무용은 어렵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변호가 이 긴 대화에 담겨있다. 이재영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시나브로가슴에'는 11월 4·5일에 '구조의 구조'를 선보였고, 정철인은 대표를 맡고 있는 '멜랑콜리댄스컴퍼니'와 12월 29·30일에 '0g(제로그램)' 공연을 앞두고 있다.

[객석] 그냥 서 있어도 `힙`한 이들… 작은 몸짓엔 무대 흔드네
이재영 '시나브로 가슴에' 예술감독. 2013년에 창단했다. 연극·음악가·배우·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시도에 도전해가고 있다. '이퀼리브리엄' '휴식' '디너' 등 조금씩 춤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자 하는 안무가다. (c) 황필주



◇속도로 드러나는 움직임의 질감

이재영의 안무는 "항상 알고 보지만 볼 때마다 빠져들게 된다"(춤 비평가 김혜라). 마치 관절이 분리된 듯, 분절된 움직임을 쌓아나가는 것이 그의 시그니처다. 국립현대무용단 '힙합'에 오른 '메커니즘'은 원래 이 움직임에 대한 프로세스 작업이었고, 이는 그가 겪은 '위기'에서 시작됐다.

"큰 교통사고를 당했었거든요. 제대로 걷을 수 있을 때까지 2년이 걸릴 정도로요. 그래도 젊을 때니까 당장 뭔가를 하고 싶었죠. 움직임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가능한 표현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힙합의 마임이나 팝핀에서 자극적이고 재밌는 요소를 배제하고, 표현적인 부분만 가져와 봤더니 굉장히 기하학적인 도형처럼 보이더라고요."

전화위복이었다. 이때 발견한 움직임에 주제를 넣어 탄생한 것이 '이퀼리브리엄'(2014), 일상의 물건들과 만나게 한 게 '디너'(2019) 등이다. 지난 11월에 공연한 '구조의 구조' 또한 '메커니즘'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다.

"저희는 작업할 때 '속도'라는 단어에 대해 참 많이 얘기해요. 어떤 속도로 이 안무를 보여줄 것인가. 항상 '중간 속도'를 찾으려고 노력하는데요, 예를 들어 걸어가는 안무가 있다면 제가 평소에 걷는 속도와 제가 생각하는 아주 느린 속도, 그 중간의 속도를 찾는 거죠. 그래서 관객이 '일반적이지 않다'라고 느끼게 되면, 거기서부터 무언가를 상상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새로운 움직임을 추구하기보단, 기본에 충실한 편이에요. 다만 속도의 디테일을 끊임없이 맞추죠. 그 디테일이 움직임의 질감이 되고, 표현의 질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해요."

[객석] 그냥 서 있어도 `힙`한 이들… 작은 몸짓엔 무대 흔드네
안무가 정철인. 2016년 창단한 '멜랑콜리 댄스컴퍼니'의 대표다. '자유낙하'(2014)를 시작으로 '비행' '초인'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선보였다. 신체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안무가로서의 창작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c) BAKi



◇날 것 그대로의 표현

정철인의 12월 공연명은 '0g'. 2014년 초연, 2018년 재연을 모두 국립현대무용단 '스텝업'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올해는 50여 분의 단독 공연으로 올리며, 멜랑콜리댄스컴퍼니의 레퍼토리로 자리 잡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신작을 만들면, 안무가들은 재연을 통해 레퍼토리화 작업을 하게 된다. 그는 "올해만 해도 신작으로 '모빌리티' '비보호' '당신의 징후'까지 세 작품이나 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많아졌다. 쉽진 않았지만, 무용수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운을 띄웠다.

"무용수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흥미로운 주제 제시 같은 것이죠. 제가 모두 안무하진 않아요. 하나의 주제, 그리고 그 안에 소주제같이 제가 생각하는 표현 방법들을 나열하면 무용수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낼 움직임을 제시합니다. 저는 그걸 잘 활용하고 다듬죠. 그렇게 함께 작업해나가며 생각의 관점이 맞춰지면 주제에 합당한 움직임이 뽑힙니다. 사실 화려한 아크로바틱 등은 그 뒤에 따라오는 부분이죠. 지금 함께 하는 무용수들이 운동성 좋은 안무를 잘 소화하는 신체여서, 그런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정철인이 국립현대무용단 '힙합'에서 선보인 작품은 '비보호'였다. 거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충돌과 일상의 사건들을 소재로, 공연 중간에는 전동 킥보드를 탄 무용수와 특별 출연한 롱보더 유지가 무대 위를 아슬아슬하게 질주한다. 덕분에 객석에서 현대무용 공연에서 보기 힘든 '어이쿠'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고 전하자, 그는 그 옆에서 공연을 못 본 게 아쉽다며 웃었다. 실제로 그 예상치 못한 타이밍을 만들기 위해 초반 10분의 시퀀스는 만들어내는 데에만 한 달 반이 걸렸다. 정철인의 작품은 "기발한 상상과 치밀한 합 속에서 춤추는 무용수들을 재발견하게 된다"(무용 평론가 임수진).

"제 안무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날 것 같은 움직임에 관심이 많았어요. '잡는' '안는' '넘어지는' 여러 일상의 움직임들이 무대에서 현실처럼 느껴지길 바랐죠. 무용수로서 해외 공연을 다니던 시절, 현지 안무가들의 무대를 보면서 짧은 시간에 강렬한 자극이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무용이라고 생각하는 틀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죠. 그 뒤로 몇 년을 '어떻게 해야 그때 느낀 사실감이 표현되는 걸까?' 고민하면서 저만의 표현법을 찾아 나간 것 같아요. 어떤 움직임이 사실 같은지는 신체 구조가 다 달라서, 사람마다 그 방법이 다르죠."

-'구조의 구조'는 2014년이 초연이고, '0g'도 여러 번 공연한 작품이다. 초연과 비교한다면 작품은 어떻게 변화했다.

△이재영 "예전엔 좀 더 테크니컬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 자체가 주는 실황의 에너지가 관객에게 강렬하게 닿는. 그런데 그게 하나의 속임수 같기도 하더라. 신체의 형태나 이미지가 아닌 단지 그 현장의 분위기로 감동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작품이 조금 느려졌다.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무대 위에서 흐르는 시간 동안 사람들도, 무용수들도 조금 더 다양한 걸 생각해보길 바랐다."

△정철인 "초연 때는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정서가 좀 들어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좀 오글거렸다. 내 상태가 늘 변하기 때문이다. 나의 상태 변화와 무관한 레퍼토리 작업을 하고 싶어서 지난번 재연 때는 정서를 빼고, 운동성에 집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너무 덜어냈다 싶었다. 그래서 12월 공연에서는 이 두 버전의 장점을 조화롭게 구성해보고 싶다."

[객석] 그냥 서 있어도 `힙`한 이들… 작은 몸짓엔 무대 흔드네
국립현대무용단 이재영 _메커니즘) 연습사진 (c) Aiden Hwang



-팀 내 분위기는 어떤가.

△정철인 "어쩌다 보니 팀이 다 남자다. 의도한 건 아닌데, 우리 안무 스타일에 관심 있는 무용수들이 오면서 그렇게 됐다. 평소 허물없이 형 동생 하면서 가깝게 지낸다. 현재는 나 포함 총 5명이 활동한다."

이재영 굉장히 친한 편이다. 다들 연습실 근처에 살고 있기도 하고. 우리는 주 5일제고, 오전 10시부터 2시까지 연습한다. 사실 예전엔 팀원이 한 명 나가면 다 같이 울기도 했다. 지금은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고, 그게 현재 '시나브로 가슴에'에 모여서 함께 일하는 순간이 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물론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마음은 쿨해지기 어렵다.

△정철인 "신작이 계속 있다 보니, 거의 매달 연습이 진행되는 편이다. 단체에 소속해서 그 색을 계속 추구하는 것도 장점이 되지만, 그 안에만 머물게 된다는 단점도 생길 수 있다. 무용수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외부 작업이나 개인 작업을 해보는 것이 멜랑콜리댄스컴퍼니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다루는 메시지는 어떻게 정하는가?

△정철인 "기획자와도 많이 소통하는 편이다. '0g'의 경우에는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강한 작품이었고, 올 초에 공연한 '모빌리티'만 해도 기획자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을 기획 의도에 더해주었다."

△이재영 "직접적인 메시지를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사회적인 이슈를 많이 다루지 않는 것도 그 이유다. 메시지를 비워두는 것이 현대무용으로서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근원적인 것들, 나와 내가 있는 공간 등에 관심 있다."

-그래서 현대무용이 관객에게 더 어렵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재영 "사람들이 생각하는 '춤'의 개념과 현대무용이 멀어서 생기는 문제다. 흔히 화려하고 스토리가 있는 춤, 예를 들면 K팝의 안무만을 춤이라고 생각하지만, 현대무용은 그런 요소를 배제한 춤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누구나 만화책을 보면 그 스토리를 따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미술관 가서 전시 그림을 보며 만화책 같지 않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두 장르를 즐기는 방법이 다른 것이다. 잘 즐기고 싶다면, 알기 위해 관심을 가지겠지. 예술이 꼭 친절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철인 "'비보호'만 해도 관객의 반응이 다양했다. 단순히 퍼포먼스로서 즐기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는 장면의 내용을 메시지로 받아들여 불편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양한 반응 자체가 흥미롭다."

-앞으로의 계획은? 가까운 시일 내에 있는 신작이 궁금하다.

△정철인 "앞서 말했듯, 지난해에 올린 신작의 개수가 많아 레퍼토리화 하면서 안정하는 게 계획이다. 그중 '당신의 징후'는 올해에 우울함에 대해 형상화해본 신작인데, 이를 극복해나가기 위한 인간의 모습을 유쾌하게 담아봤다. 무용수들이 무척 잘 표현해내서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내년에 재연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재영 "당장 2월에 공연이 있다. 지난해 김정 연출가가 진행한 연극 '태양'에 움직임으로 참여했었는데, 이야기 소재가 인상 깊었다. 그 연극을 토대로 해 동명의 공연으로 신작을 만들고 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무척 고민 중이다."

글=월간객석 허서현기자

사진=시나브로가슴에·멜랑콜리댄스컴퍼니·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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