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찍기·언론탄압? 대통령실, 4년전 靑대변인 본받았다면…[한기호의 정치박박]

참모진 함흥차사 노릇에 더 커진 尹 워딩 충격
MBC에 "제2 광우병 획책" 모험 택한 여권
민주·MBC "부당탄압, 좌표찍기로 악마화"
4년전 北 끌어안던 文청와대 '北보도' 대응은
"사실·국익" 핏대, MBC도 "오보"…대상 매체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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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찍기·언론탄압? 대통령실, 4년전 靑대변인 본받았다면…[한기호의 정치박박]
지난 9월22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뉴욕 현지에서의 발언 영상에 자막을 입혀 유튜브로 먼저 보도한 MBC는 기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사 해석 자막중 '국회' 앞부분에 '(미국)'을 추가한 후속 보도를 당일 저녁 MBC뉴스데스크에서 재차 내보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향한 언급을 한 적이 없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지칭한 게 아닌 '날리면(날리믄)' 발언을 왜곡한 자막을 MBC가 사실확인 없이 보도하며 기정사실화해 한미동맹 등 국익을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미국 의회와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상으로 비속어를 섞어 모욕성 발언을 했다'는 취지의 MBC 자막 영상보도가 정국을 강타한 지 만 일주일이 넘었다. 그러나 논란은 유전(油田)에 불난 듯 끝이 없다. 처음 구설에 오른 '대통령 워딩'이 준 충격의 크기도 컸고, 참모진만 나서는 늑장·모호한 대응에 소재가 휘발되지도 않아서다. 불난 데 기름 붓는 게 이해에 부합하는 정치세력도 있다.

잠시 돌아보면, 지난 22일 아침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풀어사이드를 가진 행사장에서 떠나는 도중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다는 '지라시'와 영상이 유포됐다. 대통령실에서 '공식석상이 아니었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다 외교상 부담이 될 수도 있다'며 취재진에 영상 보도 자제를 '간곡히 요청'했다는 속사정도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 개시(오전 9시30분)에 앞서 일부 의원이 웃음 띤 채 "영상 봤어요? 안봤으면 보내주려 그랬지" "이 XX가 보통명사인 줄 알았어 그분한테는"이라고 사담을 건넨 정황도 퍼졌다. 회의 3분 만에 박홍근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이) 비속어로 미국 의회를 폄훼하는 발언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겼다"고 터뜨렸다. 뒤이어 오전 10시7분 MBC는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 영상을 유튜브에 폭로했다.

이후 정치권과 언론계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대통령이 미 의회를 모욕한 건지' 진위(眞僞)와 발언의 진의(眞意)를 제대로 먼저 확인하려는 언론들도 있었지만, 대통령실은 '함흥차사'였고 MBC의 첫 자막보도대로 대세가 형성됐다. "'(한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날리믄)'이 맞다"는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의 정정 요구성 해명이 보도 자제 요청 13시간 만에 나왔으니, 이 보도 누수(漏水)를 누구에게 탓할 수 있을까.

이후 여권은 선뜻 '사과'할 수밖에 없으리란 예상을 깨고 'MBC의 제2 광우병 선동'이란 공세로 입을 모았다. 이명박(MB) 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협상 개시로 전 국민이 5년 내 죽는다는 공포를 조장한 MBC의 재범(再犯)이란 것이다. 대통령의 미 의회 모욕을 단정하고, 기정사실인 듯 백악관에 문의메일을 주고 받은 것까지 '한미동맹 훼손'이라 규정했다. 박진 외교장관이 "야당을 잘 설득해 통과시키겠다"고 대답한 부분이 MBC 영상에서 잘린 정황도 거론됐다.

지난 26일, 귀국 후 첫 도어스테핑을 가진 윤 대통령의 첫마디도 "논란이라기보다는…"이었다. 이어 "사실과 다른 보도는 동맹을 훼손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대외협력비서관 명의로 MBC 사장실에 공문을 보내 발음을 특정한 근거, 사실확인 절차, 자사 보도를 '국내언론보도'라며 해명 반영 없이 확대재생산한 이유 등을 따져 물었다.

뒤이어 29일 국민의힘 'MBC 편파·조작 방송 진상규명 TF(태스크포스)'가 박성제 MBC 사장 등 4명에 대한 정통망법 위반·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MBC는 유감을 표명하며 "앞으로 어떠한 언론도 권력기관을 비판하지 말라는 보도지침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며 "부당한 탄압에 굴하지 않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민주당에선 '좌표찍기'를 통한 언론탄압, MBC 악마화라고 가세하는 한편 박진 장관 해임건의안 단독처리를 강행했다.

이처럼 '퇴로 없는' 여야 충돌로 귀결된 것과 극심한 정치피로감엔 대통령실 아마추어리즘이 상당히 기여했다. 프로같았던 전임 정권 청와대의 4년 전 대응이 떠오르는데, 보고 배울 점이 있으면 배웠으면 한다. 2018년 5월29일 '문재인 청와대'의 대변인은 조선일보의 "한미 정상회담 끝난 날, 국정원 팀이 평양으로 달려갔다" 보도, TV조선의 "풍계리 갱도 폭파 안해…연막탄 피운 흔적 발견"과 "북, 미 언론에 '풍계리 폭파' 취재비 1만달러 요구"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대단히 엄중한 시절이다. 기사 한 꼭지가 미치는 파장이 크다. 최근의 남북미 상황과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단호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공포를 벗어던질 수 있는 호기"에 "일부 언론 보도가 그 위태로움을 키우고 있다. 특히 최근 조선일보와 TV조선의 보도가 심각하다.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비수 같은 위험성을 품고 있는 기사들"이라고 했다.

대변인은 "평소처럼 우리 내부만의 문제라면 굳이 (언론 책임을) 들추지 않아도 된다"면서도 "남·북 ·미가 각자의 핵심적 이익을 걸어놓고 담판을 벌이는 시점 말 한마디로 빚어진 오해와 불신이 커질 수 있다"고 기준을 들었다. "국정원 2차장이 몰래 평양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그대로 믿게 된다면"이란 전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정직한 중재자일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MBC에 '미 의회 모욕' '바이든' 자막을 거칠게 문제삼는 대통령실이 참고할 만하다.

대변인은 또 "TV조선의 (취재비 1만달러 요구) 보도대로라면 북한은 상종하지 못할 존재"라며 "다른 나라를 이런 방식으로 묘사했다면 당장 법적 외교적 문제에 휘말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보도는 한차례에 그치지 않고 후속 오보(誤報)를 낳기 마련이다. 여의도의 정쟁은 격화되고 국민들 사이에 파인 골은 더 깊어진다"고 했다. 언론 보도를 인정할 기준으로 "최소한의 사실 확인이 전제돼야 한다", "국익을 해칠 위험이 있다면 한번이라도 더 점검하는 게 의무"라고도 했다.

당시 대변인은 "연예인 스캔들 기사에도 적용되는 크로스체크가 왜 이토록 중차대한 일에는 적용되지 않는 거냐"고 반문, "우리 언론에게 북한은 '사실 보도'라는 기본원칙이 매우 자주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던 보도영역이었다"며 대남 소송을 걸지 못하는 북측 사정도 고려했다. 조선일보를 재차 거명하며 "이번에 놓치면 다시 70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이제 그만 잡고 있는 발목을 놓아달라"고 했다.

좌표찍기·언론탄압? 대통령실, 4년전 靑대변인 본받았다면…[한기호의 정치박박]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의겸(사진)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연합뉴스>

대한민국 정부 '정책브리핑'에도 실려 있는 명(名)논평이다. 주인공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출신의 현 민주당 대변인인 김의겸 의원이다. 논평 당일 MBC는 "靑, 긴장 속 '함구령'…조선일보 오보에는 적극 대응" 보도로 조선일보 오보를 기정사실화했다. 미디어지(誌)를 표방한 매체들도 앞다퉜다. "기자 선생들은 잘 안되길 바라오?" 북한 정권 간부의 말을 호평한 매체도 있었다. 최근 '권력의 언론탓'이라며 반발한 한국기자협회는 이때 잠잠했다.

TV조선의 "풍계리 갱도 폭파 안해…연막탄 피운 흔적 발견"은 2018년 5월24일 밤 10분간 노출했다가 삭제한 속보로, 이튿날 사과문까지 낸 내용이다. '북한 1만 달러 취재비 요구' 보도에 대한 입장은 달랐지만 정권 산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법정제재 철퇴를 내렸다. '韓美정상회담 끝난 날, 국정원팀이 평양으로 달려갔다'는 조선일보 보도는 건재하다. 4년여간 미국과 북한, 누가 동맹이고 적인지와 '싸우는 사람들'은 그대로고 각자의 공수(攻守)만 바뀌었는데 여론형성이 이렇게 표변할 수도 있나. '아무튼 대통령·참모진 잘못' 하고 편히 넘어가기엔 씁쓸하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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