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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최악 가뭄이 되살린 것들… 말라붙은 강 바닥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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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다니던 창장 삼존불상 드러나
엘베강, 암초 새겨진 '헝거스톤' 목격
스페인선 저수지 아래 있던 거석군도
전례 없는 가뭄은 더 큰 재앙의 전조
막을 수 없는 상황 전에 행동 나설 때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최악 가뭄이 되살린 것들… 말라붙은 강 바닥의 `경고`


고고학자들은 문화재 발굴을 위해 열심히 땅을 판다. 과거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땀을 흘리며 땅을 파헤친다. 그러나 올 여름 그들은 땅을 팔 필요가 없어 보인다. 기록적 가뭄으로 세계 곳곳의 강과 호수가 바짝 말라 물 속에 숨어있었던 '무엇인가'가 저절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자에겐 '선물'이겠지만 인류에겐 '경고'가 될 것이다.

◇불상·스톤헨지·네로 다리…기록적 가뭄에 드러나는 유물들

창장(長江)은 시짱(西藏·티베트)에서 발원, 중국 내륙을 관통해 서쪽 상하이(上海) 앞바다까지 장장 6300㎞를 흘러나가는 '대륙의 젖줄'이다. 세계에서 3번째로 긴 강으로, 바다 같은 수량을 자랑한다. 돌고래가 살고 잠수함 기지까지 있을 정도다. 이런 창장도 사상 최악의 폭염과 가뭄에 말라가고 있다. 15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위를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수위가 낮아지면서 '부처님'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충칭(重慶)시 창장 유역의 한 암초에 새겨진 삼존불상(三尊佛像)이다. 큰 바위의 가운데 부분을 파낸 뒤 만든 불상들이다. 불상 중 한 개는 약 1m 높이로, 연꽃 받침대 위에 앉아 있다. 양 옆에는 이보다 작은 규모의 불상 2기가 자리잡고 있다. 600년 전 명·청(明·淸) 시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불상들은 배로 강을 오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들은 오랜 세월 강물 속에 잠겨있다가 이번에 강 수위가 약 3m 낮아지면서 세상에 나왔다. 불상들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데다 학술적 가치도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장 상류 쓰촨(四川)성 러산(樂山)시에 있는 '러산대불'(樂山大佛)의 전체 모습도 드러났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러산대불은 바위를 깎고 파들어가 만든 마애석불(磨崖石佛)이다. 전체 높이가 71m로 세계 최대 마애석불이다. 창장의 지류인 민장(岷江), 다두허(大渡河), 칭이장(靑衣江), 이 세 갈래 물길이 만나는 강변에 우뚝 앉아있다. 평소엔 러산대불의 받침대는 잠겨있다. 그런데 강 수위가 급속히 낮아지면서 받침대까지 드러났다. 받침대까지 드러난 러산대불의 웅장한 전체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러산으로 몰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창장 일대의 고온·가뭄 현상은 두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중국 기상과학원에 따르면 1961년 기상관측 이래 최장·최강의 폭염이다. 강수량도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치면서 혹심한 가뭄까지 겪고 있다.

중부 유럽의 체코에선 '끔찍한 돌'이 나타났다. 체코 북부를 흐르는 엘베강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헝거 스톤'이 목격되고 있는 것이다. '배고픔의 돌' 또는 '기근석'으로도 불리는 '헝거 스톤'은 15세기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헝거스톤'에는 '나를 보면 울어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당시 사람들은 이 돌이 모습을 드러내면 극심한 가뭄과 기근이 들 것이라고 미래세대에게 경고하기 위해 이같은 문구를 새겼다고 한다.

스페인에서는 스페인판 스톤 헨지(Stonehenge of Spain)가 사람들의 눈에 포착됐다. 스페인 서부 카세레스주 발데카나스 저수지에서다. 저수지 수위가 총량의 28%까지 내려가면서 기원전 500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선사시대 거석들이 신비한 형상을 드러냈다.

이 거석들은 공식적으로 '과달페랄의 고인돌'로 불린다. 150개의 거대한 돌기둥들이 원형을 이루고 있다. 1926년 독일 고고학자가 최초로 발견한 이 유적은 프랑코 독재정권 치하였던 1963년 농촌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댐을 건설하면서 물에 잠겼다. 스페인의 고고학자들은 거석들의 출현을 반기면서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에선 포강(Po River)의 수위가 사상 최저치에 도달하자 강바닥에 묵혀 있던 고대 마을의 유적이 나타났다. 로마를 흐르는 티베르강 역시 역사상 가장 낮은 수위로 떨어지면서 고대 로마 정착촌, 네로 황제 시대 만들어진 다리 유적이 나왔다. 이 다리는 네로 황제가 어머니가 살고 있는 저택을 편하게 오가기 위해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북부 롬바르디아 코모 호수 바닥에선 10만년 전의 사슴 해골, 하이에나, 사자 등의 잔해가 발견됐다.
◇나찌 군함, 불발탄, 유골도 덩달아 발견

가뭄으로 고대 유적들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세르비아의 다뉴브 강을 보면 1944년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하다. 강 수위가 100년 만에 가장 낮아지면서 폭발물과 탄약으로 가득 찬 나찌독일 군함 20척이 발견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후퇴하다가 소련군의 공격으로 침몰된 군함들이다. 독일 군함의 잔해를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한다.

포강에서도 2차 대전 당시 사용됐던 무게 450kg의 대형 폭탄이 발견됐다. 해체를 위해 인근 주민들이 일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간의 유해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미국의 도박도시 라스베가스 인근 미드 호수의 바닥이 드러나면서 유골들이 속속 수습되고 있는 것이다. 총상 흔적이 있는 유골이 드럼통에 담긴채 발견되기도 했다. 마피아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경찰은 수습된 유해들의 신원을 특정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제 말이 아닌 행동에 나서야

전례 없는 가뭄으로 뜻밖의 발견이 이어지고 있지만 마냥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쩍쩍 말라붙은 강과 저수지 바닥에서 발견되는 것들은 인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모두 기후변화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가뭄이 들고 강이 말라버린 이유는 복잡하지만 기후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손 놓고 있으면 머지않아 강이나 호수도 사라질 것 같다. 실제로 유럽 경제의 기둥인 라인강은 배가 운항을 하지 못할 정도로 최악이다. 강을 잃는다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다. 경제적 타격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국제연합(UN)은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오는 2050년이면 전 세계 인구의 75%가 가뭄의 위협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상이변이 매년 뚜렷해지면서 인간의 목을 죄고 있다. 앞으로 기상이변은 더 자주 찾아오고 한층 극렬해질 것이다. 대재앙이 되기 전에,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가 온 듯 하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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