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이러고도 정당?… 사법 정치화에 맥 못추는 국힘

비대위 가처분 법리다툼 천착한 與, 속수무책
날짜 예고 깨고 '당 비상상황' 부정한 재판부
정치개입성 적극사법…盧 탄핵기각과 상반돼
법만능주의 길들여졌나, '정당자율' 목소리 희박
"'법의 지배'는 법의 절제…모르는 엉터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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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정치박박] 이러고도 정당?… 사법 정치화에 맥 못추는 국힘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법원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이 난 지난 8월26일 국회 본청에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자유민주주의 이념결사체가 못 됐다고 생각했더니, 애초 정치결사체라는 자각조차 없었다.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이후 한주 간 국민의힘 대응을 보면서 느낀 점이다. 천연덕스럽게 "인용되면 당이 망한다"며 2일 현재까지만 해도 세번째 가처분을 남발하고 있는 이준석 전 당대표는 이미 논외지만, 국민의힘 수습의 '키'를 쥔 주체들의 대외 언급은 어떤 로펌 직원들 같았지 정당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요컨대 정당이 스스로 판단할 영역을 사법적극주의(judicial activism)에 침범당하는 위기 속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그 틀 안에서 법리논쟁을 벌이려다 '된통 당했다'.

사법적극주의는 '법해석과 판결에 있어서 법문언에만 그치치 않고 정치적 목표나 사회정의 실현 등을 염두에 둔 적극적 법형성 내지 법창조를 강조하는 태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기존의 법리 해석을 매우 엄격하게 해온 사법 통념을 깨고 정치나 사회가치 논쟁이 걸린 사안에 법원이 적극 개입해 판단할 수 있다는 기조로 대두됐다. 이준석 전 대표의 가처분 사건을 맡은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의 황정수 수석부장판사가 초유의 비대위원장 직무정지 가처분을 내리기 전후 모습을 보면 정치 개입 측면에서 이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가처분 결정 날짜는 지난 26일 금요일로, "'다음주 이후'에 결정이 날 예정"이라던 사흘 전 입장부터 깬 것이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까지 다녀간 국민의힘 의원연찬회 이틀차에 비대위원장 직무를 정지시켜, 정치적 파장은 극대화했다. 지난 17일 1시간여 심문 이후 일주일 넘도록 미룬 배경도 불분명하지만, '다음주 이후'를 예고했다가 그 주 안에 결정을 갑자기 내놓는 모습은 법원에 기대하는 고지식할 정도의 예측가능성과 거리가 멀다.

정작 내용 측면에선 △사퇴 선언한 최고위원들이 참석한 최고위원회에서 시작된 상임전국위·전국위 소집 의결 △전국위 등의 '당대표 직무대행도 비대위원장 임명 가능' 당헌개정안 의결이 어떤 '절차적 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상임전국위의 '당 비상상황' 유권해석을 불인정해 비대위원장 임명안 의결 효력을 멈췄다.

국민의힘과 전신 보수정당은 당헌 내 '당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경우'를 판단해 비대위를 숱하게 꾸려왔다. 직접적으로 당대표 '궐위'나 최고위 기능 완전상실이 선행되지 않았지만, 전례없는 지도부발(發) 갈등상황이나 '등(等)'의 해석 여지도 남아 있었는데, 법원이 상임전국위 유권해석에 '해석이 아닌 적용에 불과하다'는 생경한 잣대를 내세웠다. 법·절차 위반을 가려냈다기보단 상임전국위 상위 회의체처럼 판단한 셈이다. 최고위원 궐위가 전국위를 통한 재선출 일방향으로만 종식돼야 하는 현상인지도 의문이고, 전당대회 없는 지도부 해산이 '정당민주주의 위반'이라며 가치판단까지 간섭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기각한 헌법재판소가 2004년 총선에 대통령이 여당 지지를 호소해 부당한 영향력을 미친 '선거중립 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중대성'을 고려해 파면을 자제한 것과도 상반돼 보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등'에 대한 위임규정 해석 전례를 내세워 검사의 수사개시 가능 범죄영역을 다시 넓힌 '검수원복 시행령'으로 거대야당과 기싸움을 벌인 와중, 여당은 '등'의 해석권조차 일시적 가처분 재판부에 내준 격이 됐다. 이 전 대표 측도 절차 위반 호소가 먹혀들지 않아 웃을 수만은 없어 보인다. 옛 통합진보당이 물리적으로 당원 참정권을 훼손한 경선조작,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의 북한식 사회주의 논란, RO(지하혁명조직) 내란선동 혐의 인정이 있은 뒤에야 '정당민주주의에 반한다'는 국가기관의 판단을 받았는데, 국민의힘은 위법은 제껴두고 '가볍게도' 가처분 재판부의 꾸지람을 듣게 됐다는 생각이다.

국민의힘은 즉각 이의신청을 했지만 재판부는 추석 연휴를 지나 9월14일 이후 심리에 들어가기로 한 것까지, '비상상황이 아니'라는 사법부 일각의 판단으로 집권여당을 더 큰 비상상황으로 몰아넣은 촌극으로 보인다. 가처분 인용 전부터 국민의힘은 법원과 법리논쟁을 벌이려 했다. 주 비대위원장이 "기각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인용되더라도 어떤 절차가 문제 있다고 하면 그 절차를 우리가 고쳐서 하면 된다"고 했을뿐 '정당의 자율성'을 제1가치로 내세우지 않았다. 손발이 묶이고 나서야 "재판장이 특정 연구모임 출신" 의혹을 제기하는 '오발탄'을 쐈다. 황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정치편향 논란의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특정 모임 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586세대의 반보수 정서나 개인 주관의 영향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판사 출신인 나경원 전 의원이 "사법 자제의 영역인 것을 법원이 판단해버렸다", "주요 형사·신청 재판장을 대법원장 코드와 맞는 판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사법의 정치화로 (당이) 고약한 외통수에 걸렸다. 황모 판사의 그림대로"라고 분노 섞인 입장을 낸 건 이례적인 세태를 반영한다. 지난 5월 한국방송기자클럽이 여론조사 지지율 15%를 기준 삼아 김동연 민주당·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양자 TV토론을 추진하자 강용석 무소속 후보가 낸 방영금지 가처분을, 강 후보를 지지율 5% 이상 후보로 직접 규정하고 공직선거법 81조가 아닌 82조를 적용해 인용 판결한 재판부도 황 부장판사였다.

여당은 아수라장이다. 새 비대위 구성을 결의하면서도 '선출직 최고위원 5인 중 4인 이상 사퇴'도 비상상황으로 추가하는 당헌개정을 예고했는데, 판사 출신 전주혜 비대위원이 "법원에서 지적된 미비한 부분 때문"이라고 여전히 재판부에 종속된 태도를 보였다. 100인을 넘는 의원 중 '정당 자율성' 목소리는 듣기 힘들고, 검사 출신인 유상범 의원은 이 전 대표 측이 비대위원장의 비대위원 임명 가처분 신청을 놓쳐 최고위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유사 법리다툼을 시도했다.

당권후보군 안철수 의원은 "여당이 법원과 싸우는 것으로 비칠 것 아니겠냐"며 비대위 포기론으로 돌아섰다. 친(親)이준석계에선 '당대표 사고' 해석과 달리 주 비대위원장엔 직무정지만 돼도 '비대위 무효'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준석맘' 정미경 전 최고위원조차 사퇴를 확언했는데 '당대표 직무대행체제 회귀'가 가능하다는 이해타산적 주장이 난무하거나, '직업윤리'가 결여된 일부 중앙당 대변인이 재판부에서 다루지도 않은 당헌 91조를 뒤늦게 들고 나와 새 비대위파 의원들을 공개 저격하는 건 덤이다.'정치사법'을 한번 맛본 이 전 대표 측은 비대위원 일체 직무집행정지, 당헌개정안 내용을 예단한 전국위 개최 금지까지 가처분을 남발, 당 결정 하나하나를 법원에 일임하며 당 주류에게 "반(反)법치"라고 꾸짖고 있다. 법적 재단에 치우친 양측 공방에 한 전직 여권 관계자는 정당이 정부기관도 법인도 아닌 '임의단체'로 규정된 건 '자율성 보장'이 요체라면서 "Rule of Law(법의 지배)를 Rule by Law(법에 의한 지배)로 착각하는 엉터리가 너무 많다"고 개탄했다. 그는 "법치는 '법에 없는 건 그 어떤 권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음'을 의미하므로, 그 자체로 법의 최소화이자 절제"라고 지적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한기호의 정치박박] 이러고도 정당?… 사법 정치화에 맥 못추는 국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8월27일 대구 북구 DGB 대구은행파크 중앙광장에서 열린 '대구 떡볶이 페스티벌'을 찾은 시민과 기념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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