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원폭 투하 77년`… 핵 없는 세상은 요원한가

1945년 8월 6일 아침 한 도시가 사라졌다
갈증에 걸린 생존자들은 검은 비를 마셨다
소련은 4년 만에 미국 핵독점 시대를 깼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핵위협은 증가
1만2705기 핵탄두 존재, 北 20기 보유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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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원폭 투하 77년`… 핵 없는 세상은 요원한가
77년 전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폭탄이 투하됐다. 이후 전 세계는 핵 감축·폐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여전히 핵무기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요즘은 더 고조되는 실정이다. 때마침 제10차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가 7년만에 열렸다. 국제사회는 '핵 없는 세상'을 위해 단결해야 한다. 히로시마가 '핵공격을 당한 마지막 지역'이 되도록 인류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끔찍한 '버섯구름'에서 배운 교훈

1945년 8월 6일, 사이판 남쪽의 티니안 섬에서 미군 B-29 폭격기 3대가 히로시마 쪽으로 날아왔다. 조종사가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따 '에놀라 게이'로 이름 붙인 한 폭격기에는 새로운 유형의 폭탄이 실려 있었다. 히로시마 시민들은 출근 준비로, 아이들은 등교 준비로 분주했던 오전 8시 15분, '에놀라 게이'는 히로시마 시내에 이 폭탄을 투하했다. '리틀 보이'(Little Boy)라는 원자폭탄이었다. 그것은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핵무기였다.

이 폭탄은 이전의 폭탄들과 달랐다. 우선 엄청난 열을 발생시켰다. 열선과 폭발풍이 불어닥쳐 지면은 철을 녹일 정도로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즉시 숯으로 변했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방사선 방출이었다. '리틀 보이'가 폭발하면서 거대한 버섯구름이 생겼고, 이 구름은 갈수록 퍼지면서 비구름이 되었다. 이어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비는 검은 색이었고 따뜻했다. '검은 비'(黑雨)는 히로시마 전역을 적셨다.

그 날은 무더웠던 여름날이라 살아남은 사람들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려 비를 마셨다. 어떤 이들은 그 비를 맞으며 목욕을 했다. 얼마 후 이상한 병이 돌았다. 당시 시민들은 '검은 비'의 공포를 알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야 방사성 낙진 비라는 것을 알았다. 갈증을 해소하는 '축복의 비'가 아니라 헤아릴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죽음의 비'였다.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3개의 원폭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45년 7월 16일 미국은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가제트'(gadget)란 이름의 폭탄을 이용해 '트리니티 실험'이라는 인류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했다. 마침내 '신의 불'을 훔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리틀 보이'와 '팻 맨'(Fat Man)을 잇달아 제조했다.

미국은 2개의 원폭을 투하할 후보지 선정작업을 시작했다. 일본인의 전쟁 지속 의지에 최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곳, 군수산업기지가 밀집되어 있는 곳을 골랐다. 이전에 공습으로 파괴된 도시는 제외했다. 신형 폭탄의 위력을 제대로 확인·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소이탄 폭격을 맞고 폐허가 된 도쿄(東京), 나고야(名古屋), 오사카(大阪), 고베(神戶)는 제외됐다.

결국 후보지는 교토(京都), 히로시마, 고쿠라(小倉), 요코하마(橫濱), 니가타(新瀉) 등 다섯 도시로 좁혀졌다. AA급 표적(최우선 목표)으로 교토와 히로시마를, A급 표적으로 고쿠라와 요코하마를, B급 표적으로 니가타를 각각 선정했다. 최종적으로 히로시마와 고쿠라, 두 도시가 결정됐다. 다만 고쿠라는 8월 9일 원폭 투하를 앞두고 상공이 구름과 안개로 덮여 있어서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소재한 인근 나가사키(長崎)로 변경됐다.

이렇게 히로시마가 원폭 투하 도시로 선정되자 B-29 폭격기들은 수시로 히로시마 상공에 나타났다. 이는 히로시마 시민들의 경각심을 누그러뜨리려는 작전이었다. 그날도 B-29 폭격기들은 히로시마 하늘에 등장했다. 평상시와 같이 공습경보가 올렸고 시민들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폭격기들이 히로시마를 지나가자 공습경보는 해제됐다.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폭격기들은 방향을 틀어 히로시마로 다시 향했다.

폭탄은 떨어졌고 8만여명이 즉사했다. 그날 하루에만 14만여명이 숨졌다. 이후 피폭 후유증이 계속되면서 30만명 이상이 세상을 떠났다. 사흘 뒤인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 '팻 맨'이 투하돼 7만명이 더 죽었다.

◇핵전쟁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엄청난 파괴력은 핵무기 개발 경쟁에 불을 당겼다. 4년 후 소련이 핵을 만들어냈다. 1949년 8월 29일 카자흐스탄의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에서 진행된 'RDS-1' 실험은 성공했다. 'RDS-1'은 '팻 맨'과 위력이 비슷한 22킬로톤급이었다.

예상보다 빨랐던 소련의 핵 개발에 미국은 경악했다. 최소한 10년 동안은 핵독점을 누릴 것이란 기대는 깨져버렸다. 그해 11월 23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소련이 핵을 갖게 됐다"고 공표하면서 냉전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영국도 독자 개발에 나서 1952년 세 번째로 핵클럽 가입에 성공했다. 프랑스(1960년), 중국(1964년)이 뒤를 이었다.

핵무기 수는 갈수록 늘어났고 원폭보다 수천배 위력을 가진 수소폭탄도 등장했다. 그 결과 어떤 식으로든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지구는 확실하게 파괴될 것이란 공포감이 높아갔다. 마침내 1969년 NPT가 체결됐고, 1970년 조약은 발효됐다.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는 미국·소련·영국·프랑스·중국은 '핵무기 보유국'으로 지정하되 핵을 감축하고, 다른 나라들은 핵 개발·보유를 금지하는 것이 조약의 골자였다.

하지만 핵은 확산됐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2년 현재 1만2705기의 핵탄두가 있다. 러시아가 5977기, 미국이 5428기, 중국이 350기, 프랑스가 290기, 영국이 225기, 파키스탄이 165기, 인도가 160기, 이스라엘이 90기, 북한이 20기를 각각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란 역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행히도 보복 핵공격으로 공멸할 수 있다는 '상호확증파괴' 가능성 때문에 핵은 사용되지 않았다. '공포의 균형'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핵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이 군사개입을 하면 전광석화의 속도로 보복할 것"이라며 '핵 카드'를 꺼냈다. 전술핵 사용을 시사한 것이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진지한' 수준이었다.

◇지금은 NPT가 가장 필요한 시기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NPT 10차 회의가 막을 올렸다. NPT 회의는 지난 1970년 발효 후 5년마다 열렸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연기된 탓에 이번에 7년 만에 열렸다. 오는 26일까지 약 4주 동안 열리는 이번 회의는 러시아의 핵 위협, 중국의 핵 증강, 북한의 7차 핵실험 우려가 겹치면서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회의 일정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시기와 겹쳐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개막 연설은 '냉전 종식 이래 핵무기 위협이 가장 고조된' 현재의 상황을 잘 대변한다. 그는 전 세계를 짓누르는 핵 위기를 거론하면서 "인류는 단 하나의 오해, 단 하나의 오판으로 핵무기에 의해 절멸될 수 있는 위기에 놓였다"고 깊은 우려감을 나타냈다.

이렇게 핵전쟁에 대한 우려가 높지만 이번 회의가 유의미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핵보유국들도, 핵 비보유국들도 입장 차이가 너무 커 통일된 의견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감축은커녕 새로운 핵보유국 등장도 막지 못할 지경이 될 것 같다. 이번 회의가 무력하게 끝난다면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핵 위협'의 종소리가 맹렬하게 울리고 있다. 이번 회의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핵 없는 세상'이란 인류의 꿈은 요원해지고 세계는 더 큰 위험에 빠질 것이다. 다시는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전 세계가 비핵화를 향해 한 걸음 내딛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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