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용산 수직도시, 주4일제·업무혁명 담아내야

용적률 3000% 가능 '입지규제최소화구역' 지정
초고층 中 말레이 등 개도국 외 美 英도 건축붐
'마천루의 저주' 가설일 뿐, 부수적 효과 봐야
렌조 피아노 621m 111층 '트리플원'넘어서나
도시는 생물, 전원 꿈꾸는 현대인 감성 고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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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지리각각] 용산 수직도시, 주4일제·업무혁명 담아내야


서울시가 지난 26일 용산 철도정비창 일대 약 50만㎡의 개발 청사진을 발표했다. 용산정비창은 서울에 남은 마지막 노른자위 대규모 가용지다. 서울의 한복판에 위치한다. 도시의 상징성이 될 잠재력 높은 중심거점이었지만 지난 15년간 방치돼왔다. 용산은 서울의 광화문 도심과 여의도, 강남이 이루는 삼각 업무지구의 중심에 있어 교통과 지리적 강점이 뛰어나다. 게다가 다른 지역이 갖고 있지 못한 배산임수의 지형적 이점도 매력이다. 능히 '처(處)할만한' 천하 길지임이 분명하다.

◇초고층빌딩은 개도국이나 짓는다?

서울시는 이 지역을 초고층 마천루들이 들어서는 수직(垂直)도시로 개발할 계획이다. 마천루 사이에 드넓은 공원과 녹지가 펼쳐지고, 글로벌 테크기업들이 입주하는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 최초로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해 법적 상한 용적률 1500%를 뛰어넘어 3000% 이상도 허용하겠다고 했다. 그리 되면 100층은 물론 150층까지 가능한 초고층 빌딩 숲이 들어설 수 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556m, 123층)보다 더 높은 마천루도 가능하다.

초고층 경쟁이 개발도상국이나 열중하는, 한물 간 유행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높이에의 열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중국,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 사우디 같은 개도국이나 산유국에서만 부는 바람도 아니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최근 초고층 붐이 일고 있다. 뉴욕 맨해튼은 지금도 400~500m 급 초고층 맨션이 경쟁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미드타운에서 진행 중인 허드슨 야드 개발 사업은 평균 층수 60층의 16개 초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런던은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샤드빌딩(The Shard, 309.6m, 72층)이 런던올림픽(2012년)에 맞춰 완공돼 개장됐다.

◇마천루는 저주인가

초고층빌딩은 한쪽에서는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 막대한 비용이 투자되는 마천루 건설은 의욕적으로 시작하지만 완공 시점에서는 버블이 꺼지면서 건축주나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는 가설, 1931년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되는 시점에 대공황이 왔던 점에 착안해 주장됐다)를 말하지만, 도시의 랜드마크 효과를 포함한 다양한 역할로 인해 여전히 도시계획에서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마천루 건설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완공되고 나면 그것을 적극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더 샤드도 반대가 없지 않았다. 빌딩을 지으려면 수백 년 된 유적급 건물을 허물어야 했다. 완공 후에는 역시 유서 깊은 주변 저층 건물들이 상대적으로 빛이 바랠 것이었다. 하지만 끝내 허용됐고 지금은 런던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됐다. 현재도 런던은 샤드를 넘어서려는 마천루 계획이 꿈틀대고 있다.

롯데월드타워도 공군의 비행 공역이 겹치는 문제 외에 여러 반대 여론이 있었다. 재벌의 부동산 투기라는 관점에서 보는 부정적 시각에서부터 초고층이 도시미관을 해친다고 주장하는 논리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완공됐고 반대했던 사람들도 이제 롯데월드타워 사진을 SNS에 열심히 퍼 나른다. 도시의 초고층화를 반대해 재건축 아파트도 35층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도 서울시 홍보물에 롯데월드타워를 열심히 활용했다.

다른 높은 초고층 빌딩들이 우후죽순 들어섰지만 맨해튼의 상징물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빠지지 않는다. 지금도 전망대는 인기다. 선진 각국에서 마천루를 계속 짓거나 지으려는 움직임을 보면 마천루의 저주 가설(假設)은 가설일 뿐이다. 저주였다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여전히 뉴욕의 랜드마크로 살아남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용산 초고층빌딩의 효과

도심의 마천루는 다양한 효과를 유발한다. 도시의 디자인적 건축적 경관적(景觀的) 랜드마크 효과는 기본이다. 들어선 입지뿐 아니라 주변지역까지 상업적으로 발흥시킨다. 높이 올라가려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지역을 광역으로 확대하면 그 도시로, 국가로 외래 관광객을 이끌어 도시와 국가의 개발을 촉진한다. 허드슨 야드, 용산정비창 모두 철도부지로 저개발 낙후지역이었다. 허드슨 야드는 아직 완공은 안 됐지만 새로운 뉴욕의 랜드마크가 돼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건폐율을 낮추고 전체 건축면적을 높여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효과는 아마도 가장 기본적인 마천루의 이점일 것이다. 500m 이상의 초고층 빌딩은 50층 내 중층 빌딩보다 보통 4배의 건축비가 든다고 한다. 하중과 바람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건축보강에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 벽이 두꺼워지고 엘리베이터 공동(空洞) 확보로 인해 공간적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도화된 건축자재와 최첨단 공법 덕분에 이런 제약요소들을 극복할 수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초고층 수직도시는 지리적 공간적 상징성 외에 희소성 가치에서도 뛰어난 강점이 있다. 아직 공식 발표는 안했지만, 현대차 그룹이 국내 최고층으로 추진하던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50층 빌딩 3개로 짓는 방향으로 수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BC에 마천루 기능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용산국제업무지구가 그 대안이다.

2007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처음 기획될 때 밑그림에는 세계적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트리플원' 타워가 있었다. 621m 111층으로 당시 세계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서울시가 26일 밝힌 개요도는 참고용일 뿐이라 해도 빌딩들의 디자인 수준이 형편없다. 최고의 입지에 최고의 디자인이 들어서야 한다.

◇'都4田3' 라이프 스타일, 어떻게 넘을 건가

서울시는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들어 '직·주·락(職住樂)'의 라이프 스타일이 가능한 꿈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직주락 복합공간이란 일·주거·여가를 함께 제공하는 도시를 말한다. 세계적 테크기업들의 아시아 본사 등을 끌어들이려면 직주락에서 매력 포인트를 한껏 올려야 할 것이다. 6000가구의 공동주택과 상업공간 분양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업무공간을 채우는 일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도회적(都會的) 세련성을 추구하는 고연봉의 다국적기업 전문경영인, 임원, 개발자, 테크니션들을 만족시키려면 웬만한 차별성 갖고는 안 된다. 롯데월드타워는 완공 5년이 지났는데도 현재 공실률이 10%가 넘는다. 입주자들을 만족을 넘어 감동시켜야 사업적으로 실패하지 않는다.

서울시는 직주뿐 아니라 '락'에도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팝뮤직, 푸드, 패션, 게임 등 K-콘텐츠를 복합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가치(價値) 지향 책임 소비'를 하는 최근의 동향도 염두에 둬야 한다. 특히 이런 경향은 오피니언 리더나 트렌드 세터들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에 모방과 확산이 빠르다. 가령 초고도 패션니스트들은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을 내려다본다. 그들은 동료들이 갖지 않은 어디 구석진 부티끄에서 나만의 개성을 표현할 스터프(stuff)를 찾는다. 서울시는 두바이를 참고할 게 아니라 보스톤의 뒷골목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유의할 점은 산업전환의 급변에 따른 업무방식과 여가시간의 변화를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도시계획가 에버니저 하워드는 산업화 진전을 반영해 도시생활의 편리성과 전원의 쾌적성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이상적 도시설계 트렌드를 이끌었다. 그가 구상한 것은 '가든 시티'였다. 반면 20세기 중반 르 코르뷔지에는 미래도시는 유리와 강철, 유리섬유강화시멘트 등 건자재 기술의 발달로 마천루들이 들어서고 그 사이에 공원이 조성되는 고밀도 콤팩트 도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20세기말과 21세기 들어 현대 도시계획은 르 코르뷔지에 쪽으로 기울었다. 이번 서울시의 용산정비창 수직도시 구상도 르 코르뷔지에 아이디어에 가깝다. 초고층 빌딩 숲과 그 사이사이 정원을 넣어 전체 면적의 50%를 녹지로 개발한다는 구상은 바로 르 코르뷔지에의 아이디어다. 지금까지 도시계획 문법으로 보면 정답이다.

그러나 도시는 생물(生物)이다. 계속 변한다. 도시는 경제와 산업이 어떻게 변모하고 그 안의 도시인들이 어떤 생활양식을 띠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향후 도시에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교통과 업무방식, 여가선호다. 교통 측면에서 보면 UAM(도심형항공모빌리티) 일반화로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대폭 줄일 것이다. 업무방식은 AI와 로봇의 발달로 주4일 근무제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그에 따라 여가 선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임이 확실하다. '주 4일은 도시, 3일은 전원'(都4田3)에서 생활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정착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하워드의 도시개념으로 회귀해 '가든 시티'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런 변화를 감안해 도시설계를 해야 용산 수직도시가 외면 받지 않고 과잉개발의 덫에서 벗어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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