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중층빌딩 빼곡한 서울도심, 막대한 공간 낭비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규제 해소 예고
서울도심 건축 녹지 공간 경쟁력 떨어져
"위대한 도시는 부단히 변화하며 인도"
롯데월드타워 있지만 랜드마크는 도심에
뉴욕 런던 멜번 수백년 성당 옆에 마천루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이규화의 지리각각] 중층빌딩 빼곡한 서울도심, 막대한 공간 낭비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를 보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다. 세운상가 위에 올라가 종로2가와 청계천, 을지로 모습을 보면서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말 시의회 시정 질문에 답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얼마나 갑갑하고 화가 치밀었으면 '피를 토하고 싶다'고 했을까. 누구라도 세운상가 주변 을지로와 청계천 사이 3·4·5·6가 골목에 들어가 보면, 여기가 과연 수도 서울 맞나 하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은 소용없다. 어떤 곳은 포장 블록도 뜯겨져 맨땅이 드러나 있고 기름때가 오염수와 엉겨있다.(2021년 8월 13일 자 [이규화의 지리각각] '이건 땅과 서울에 대한 모독이다' 보도)

오 시장은 그 원인을 우선 10년 동안 방치된 도시행정에서 찾았다. 전 시장의 보존과 관리 우선 도시재생정책이 처절하게 실패했음을 단언했다. 오 시장은 "세운지구 일대는 낙후돼 상업용과 주거용으로도 못 쓰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2월 기자 간담회에서는 세운지구를 북한산-창덕궁-종묘-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의 고리로서 활용한다는 전제 아래 전면적으로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준공된 지 54년 된 세운상가와 그 일대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슬럼화가 깊게 진행돼 보존과 관리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고 전면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오 시장의 말처럼 녹지를 확보하려면 역시 철거가 답이다. 서울시는 조만간 세운지구 개발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그런데 세운지구 문제는 서울 도심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도심은 도시화와 산업화가 본격화한 1960년대 이후 도심 개발의 마스터 플랜 부재 속에 방치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도심의 상징성 때문에 온갖 규제들이 가해졌다. 단적인 사례가 내4산(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 내에서는 건물의 최고 높이가 110m를 넘을 수 없다. 120m까지, 또는 그 이상 허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극히 예외적이고 흔치 않다. 그러다 보니 도심은 20~30층 중층(최근 세계 도시 건축 추세로 볼 때 고층은 30~50층 정도다) 높이의 고만고만한 빌딩들로 빼곡히 들어차게 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강남개발로 상대적 소외를 당했고 발전 동력인 기업 본사와 공공기관의 이탈이 가속화됐다. 2000년대 초까지 20년간 서울 도심의 공동화현상은 심각한 문제였다. 도심에 다시 관심이 환기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2005년 청계천 복구사업의 완공이다. 이후 도심 가치의 재발견이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결정적 전기가 이제 막 열리고 있다. 도심 규제의 한 축이었던 청와대(대통령 집무실이라는 국가보안시설)가 사라지는 것이다. 오는 10일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옮겨가고 청와대가 국민 공원으로 전환되면서 청와대와 관련된 갖가지 규제들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 따라서 이제 서울 도심의 환골탈태를 기대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G10에 어울리지 않는 서울 도심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고 서울의 중심은 4대문 안 도심이다. 4대문 안 도심이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의 도심(CBD)은 국가 상징의 역할도 한다. 가로와 건축 디자인, 전통문화와 역사 및 현대예술, 자연을 끌어들인 녹지, 첨단기술이 접목된 편의시설과 의·식·주가 조화된 직주(職住)복합 공간으로 변모해가는 것이 현재 세계 주요 도시의 발전 추세다.

그러나 현재 서울 도심은 도회적 디자인, 녹지, 공간 활용성 등에서 뒤떨어진다. 통합적 도심 이미지가 결여돼있으며 혼란한 인상을 준다. 도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축적 디자인에서 뉴욕, 도쿄, 런던, 프랑크푸르트, 심지어 베이징 등 세계 경쟁 도시에 밀린다. 도심 빌딩 디자인과 미학은 도시의 경쟁력인데, 서울 도심은 내세울 게 많지 않다. 중층의 고만고만한 빌딩들 숲이다. 디자인적 창의성과 미학에 대한 고민보다는 주로 기능에 치우친 건축물들이다. 오 시장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 같은 도심의 낙후성을 지적한 것일 터이다.

◇도심의 재발견, 재창조는 세계적 트렌드

도시경제학 석학인 하버드대 경제학과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도시의 승리'(Triumph of the City)에서 "위대한 도시는 정적이지 않다. 부단히 변화하며 세계를 변화의 길로 인도한다. 도시들은 새로운 인재와 새로운 생각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물들을 제공하기 위해 변신해야 한다"고 했다. 도시는 구조물, 곧 건축이고 건축 제한은 도시를 과거에 묶어 놓으면서 도시의 미래 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의미다. 결국 현대 국가간 경쟁은 도시간 경쟁이다. 특히 메트로폴리탄 간 경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세계 각국은 저마다 도시 혁신과 경쟁력 제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도심 재탄생의 사례로 파리의 라데팡스, 뉴욕의 허드슨야드, 도쿄의 도시재생, 그리고 2032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한 호주 브리즈번의 퀸즈 워프 개발사업 등을 들 수 있다. 라데팡스는 1958년 라데팡스개발청을 설립해 파리의 부도심(副都心)에 새로운 도심 기능을 부여하는 대규모 개발 사업이었다. 설계에서 완료까지 30년 지속된 사업에서 특히 배워야 할 점은 도로·지하철·철도·환승터미널·주차장 등을 모두 지하에 배치하고 지상은 보행자 전용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사업의 화룡점정은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세운 신(新)개선문 '라 그랑드 아르슈'(La Grande Arche)였다. 이후 개선문 이상의 관광명소가 되었고 파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뉴욕 맨해튼의 허드슨야드 개발사업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개발 사업이다. 250억 달러(29조원)가 투입돼 2025년 완공될 예정이다. 맨해튼 미드타운 서쪽 허드슨 강변의 낡은 철도역과 주차장, 공터 11만 3000m²의 부지에 총 16개의 초고층 빌딩을 짓는 중이다. 오피스, 레지던스, 호텔, 쇼핑센터, 공연예술센터 등이 들어서며 가장 높은 빌딩 지상 390m에는 뉴욕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도 배치했다. 허드슨야드가 유명세를 탄 것은 15층 나선형 계단 형태의 인공물 베슬(Vessel) 때문이다. 이 독특한 구조물은 호기심과 스릴을 자극해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도쿄는 아베 총리가 2차 집권기(2012년~2020년)에 2002년 고이즈미 총리 때 제정된 도시재생특별법을 개정해 도심 재개발에 대대적인 규제완화와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활력을 회복했다. 최근 10여년 동안 도쿄의 스카이라인은 극적으로 변해왔다. 40층 내외의 디자인이 뛰어난 주상복합 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중앙정부와 도쿄시 정부가 용도제한을 완화하고 용적률을 높여주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민간 재개발이 활기를 띠었기 때문이다. 도쿄는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지만 의외로 초고층 빌딩이 많지 않다. 그러나 내년에는 63층 390m의 초고층인 도쿄 토치빌딩이 완공된다.

호주 브리즈번의 퀸즈 워프 개발사업도 참고할 만하다. 브리즈번강 연안에 관광레저·엔터테인먼트·쇼핑을 아우르는 도심 복합개발 사업으로 부지 약 12만㎡에 36억 호주달러(약 3조1000억원)를 투입해 내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호주 제3의 도시 브리즈번은 올림픽을 계기로 국내를 벗어나 세계적 비즈니스허브를 지향하고 있다. 최근 10여년간 도심 디자인 르네상스를 전개 중이다. 이미 90층 내외의 초고층 빌딩이 여러 개인데도, 추가로 초고층 빌딩을 짓는 퀸즈 워프 사업에 착수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도심 변화의 전기

오세훈 시장은 지난달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 사대문 안 고도제한을 풀고 용적률을 높여 녹지를 확충하겠다고 했다. 도심에서 용적률을 높여주고 고도제한을 풀면 공공 기여하는 부지가 늘어난다. 거기에 나무를 심고 잔디를 깔겠다는 말이다. 도심의 고밀도 재개발 길이 열리는 셈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옮겨가면 현재 15~20m로 제한된 청와대 주변 효자동, 삼청동, 구기동, 부암동 건물 높이가 대폭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4층 내외에서 도로변은 그 2배 10층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다. 더 큰 변화는 종로, 청계천로, 을지로, 퇴계로 등 핵심지역의 고도제한이 대폭 풀릴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도심의 최고층 빌딩은 종로2가 SK서린빌딩으로 36층 145m이다. 현재 도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G10 국가의 수도 도심의 랜드마크로는 어딘가 부족하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와 여의도 파크원은 부도심에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 메트로폴리탄의 랜드마크는 대개 도심에 있다.

랜드마크가 꼭 건물일 필요는 없다. 파리의 개선문이나 런던의 빅벤, 도쿄의 스카이트리 송신탑처럼 구조물이나 조형물도 상징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한다. 서울 도심도 랜드마크 건축 움직임이 있었다. 2006년 중구가 청계천 변의 세운상가 일대 3~4만평 부지에 220층 높이 960m의 마천루 건설 방안을 추진했었다. 서울시가 반대해 중단됐지만 중구청이 내세우는 건립 취지는 이해가 간다. 중구청은 중구가 서울의 한복판 중심이면서도 개발이 강남과 여의도에 밀려 갈수록 낙후되고 있다며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지어 랜드마크를 삼으면 업무·관광·쇼핑의 도심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자리 창출 등 막대한 경제적 효과는 물론이다. 중구청은 토지의 효율적 이용 측면에서도 중저층의 건물보다 수십 배의 이득이 있다고 보았다.

중구청은 서울시의 반대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서울시는 도심 경관과 문화재 보존을 위해 도심에 초고층 빌딩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구청은 역발상을 들이댔다. 초고층 빌딩은 그 자체로 새로운 도시경관을 창출하며 새로운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구청의 주장은 일 리가 있다. 뉴욕 맨해튼, 런던, 멜번, 심지어 프랑크푸르트까지 수백 년 된 성당 바로 옆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 있다. 그들이 문화재의 가치를 몰라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울 도심의 5대궁을 비롯한 각종 문화재들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일과 도심에 초고층 빌딩을 짓는 것은 직접적 연관이 없다.

서울 도심은 여전히 녹지가 부족하다. 경복궁 옆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주거시설의 공원화,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세종대로 가로 공원 확충 등은 모두 도심 녹지의 확보를 위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적 접근이 아니라 도심의 건축 규제를 대대적으로 푸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대 도시는 탄소배출 감축과 에너지 효율, 경제성을 고려할 때 수평화가 아니라 수직화(vertical)로 가고 있다. 건물의 바닥 면적(건폐율)을 줄이고 키를 높여 공중(空中)의 공간을 확보하는 초고층화가 대세다. 20~30층 내외의 단조로운 스카이라인은 보기도 안 좋고 공간적으로도 낭비다. 서울 도심을 역동적인 모습으로 바꿔가야 한다. 허드슨야드, 도쿄 도시재생, 브리즈번 퀸즈 워프 개발사업처럼 중앙정부와 시정부가 협력해야 성공한다. 또 사업의 안전성과 계속성을 위해 법으로 뒷받침하고 주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 도심의 고도제한을 풀어 수직화하면 얻는 효과는 막대하다. 더 넓은 녹지, 더 많은 공간, 드라마틱한 스카이라인, 확대된 조망권, 도회적 감성 창출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도시와 도심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계기로 서울 도심을 전면적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이규화 논설실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