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처리에 여야가 전격 합의한 날 30여년 전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한 말을 떠올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 회장은 '4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한국 정치와 정치인들을 저격했다. 정치인들의 거센 반발로 이 회장 본인은 물론 기업들도 난처한 상황을 겪기도 했지만, 4류라는 단어는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정치권은 지난 22일 국회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에 전격 합의하면서, 파국의 위기에서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그러나 이날 합의는 철저히 그들만을 위한 것으로, 4류 정치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중재안에 따르면 검찰은 오는 9월부터 선거사범, 공직자 범죄수사를 할 수 없게 된다. 2주 후면 정권을 내줘야 하는 구 정권은 물론 새 정권 모두 권력비리의 부담을 덜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협치를 위해 서로 한발씩 물러섰다고 치장했지만 정작 이번 조치가 누구를 위한 양보였고, 누구를 위한 타협이었는지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 70여년 동안 정치권력을 감시해 온 검찰의 수사권을 왜 갑자기 박탈해야 하는지, 또 사법부의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면서 왜 정작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었는지 국민들은 궁금하다.
'검수완박'이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권력비리를 감싸기 위한 것이라는 비난에는 입을 닫았다. 법안처리에 결사 반발하던 국민의힘이 하루만에 돌연 여당과 손을 잡은 것도 석연치 않다.
당장, 국민 대다수는 대한민국 형사사법체계를 흔들고 국론을 둘로 쪼개면서까지 '검수완박'이 필요한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실제 최근 주요 여론조사 기관이 전국의 만18세 이상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50%가 검찰 수사권 폐지에 반대한 반면 찬성한 사람은 39%에 불과했다.
또한 응답자의 65%가 충분한 논의를 거친 이후 4월 이후에 처리해도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정치권이 국민들을 위해 '검수완박'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정작 전체 국민의 3분의 2가 조기 법안처리를 반대한 것이다.
법안처리 강행, 강력저지로 극한 대결양상을 보였던 여야가 하루만에 전격적으로 손을 잡은 것도 선뜻 이해가 안 된다. 국민을 위해 여야가 한발씩 양보했다는 생각보다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고려해 막후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만 키운다.
정치권은 이번 타협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이 자신들을 위한 정치적 흥정의 부산물은 아닌지 제대로 해명해야 한다. '검수완박'이 구 정부에는 그간 권력의 비리를 덮어주고,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에는 향후 권력형 비리 수사를 저지할 수 있는 차단막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만약, 자신들의 비위를 무마시키기 위해 절충한 것이라면, 국회 스스로 국민의 대표기관임을 포기한 것이다.
'검수완박' 논란이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는 지금, 국민들은 그저 답답할 뿐이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지만, 가계나 기업 모두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경제위기와 맞닥뜨리고 있다.
반도체 등 원부자재 공급난은 더 심화되고 있고, 물가는 10년 만에 4%대까지 치솟으며 가계나 기업 모두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공포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경제성장률이 추락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도 임박했다.
가계, 기업 모두 이처럼 동시다발적인 '퍼펙트 스톰'에 비상이 걸린 지금, 민생은 온데간데 없고 정치권은 '검수완박'이 촉박하다며 또 그들만의 잇속을 채우려 하고 있다. 이제 국민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지켜봐야 한다. 정치권의 검수완박이 제대로 된 사법체계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치부를 숨기고 회피하기 위한 결과물인지 말이다.
"한국 정치는 4류 정치"라는 30여년 전 이건희 회장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ICT과학부장
![[최경섭 칼럼] `4류 정치`, 비리 덮겠다고 야합한 그들](//contents.dt.co.kr/images/202204/2022042502102269046001[1].jpg "[최경섭 칼럼] `4류 정치`, 비리 덮겠다고 야합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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