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낙원에 들이닥친 지정학
경상남북도 크기에 괌기지 뒷마당
美 중국군 배치 가능성 배제 안해
협정파기 안될 시 정권교체 시도도
호주 '태평양패밀리' 내세워 설득
우크라이나에 세계 이목이 쏠려있는 사이 태평양에선 향후 폭발의 뇌관이 될 수 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적도 바로 밑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와 중국이 최근 베이징에서 안보협정을 맺은 것이다.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중국의 필요에 따라 군대도 파견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솔로몬제도는 중국군이 파병되거나 주둔할 것이라는 건 억측이라고 부인하나, 이 지역에 대한 연고와 이해를 가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일본, 프랑스는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솔로몬제도만 잘 구슬리면 단박에 '제1열도선' '제2열도선'을 넘어 태평양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 미국 등 서방에겐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열도선이란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정해 놓은 단계적 군사전개권역이다. 제1열도선은 북쪽으로부터 일본열도 남단 가고시마-오키나와-대만 동쪽 앞바다-필리핀 루손섬과 팔라완섬-보르네오-싱가포르를 잇는 선이다. 이 안에 대한민국의 영해(영토 기점 12해리, 약 22km 바다)는 물론 배타적으로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수역(200해리, 370km)까지 들어있다. 동지나해는 물론이고 중국이 암초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불법적으로 군사기지를 만들고 있는 남지나해의 구단선 해역도 제1열도선 안에 있다. 중국은 제1열도선의 영역권 확보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 현재는 제2열도선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일본의 태평양 섬인 오가사와라제도-사이판·괌-파푸아뉴기니로 이어지는 선이 제2열도선이다.
그런데 솔로몬제도는 제2열도선에서도 밖으로 1000km 이상 더 동쪽으로 나간 해역에 있다. 여기에 해군기지나 군비행장을 건설한다면 중국으로선 단번에 제2열도선도 뛰어넘어 서태평양에서 미국, 호주, 일본과 세력다툼을 벌일 수 있게 된다. 현재까지는 중국 군함이 제2열도선 밖으로 나갈 때 심한 견제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솔로몬제도의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로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이다. 이곳은 미국 괌의 뒷마당이자 호주의 앞마당이다. 프랑스의 서태평양 영토인 누벨칼레도니(뉴켈레도니아)는 바로 이웃이다. 그들 사이에 중국 군대가 주둔한다는 건 이들 국가들에게 심각한 안보위협이다.
솔로몬제도는 파푸아뉴기니 동쪽의 군도로 호주 대륙으로부터 2000km, 미국령 괌기지로부터는 동남쪽으로 3000km 떨어져 있다. 누벨칼레도니는 1000km 정도 거리에 있다. 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면적은 2만8896㎢다. 경상남북도 크기(섬과 부산 대구 울산은 제외)로 만만치 않다. 태평양에 산재한 섬나라 가운데 육지 면적이 가장 넓다. 인구는 70만여명으로 피지(90만여명)보다 약간 적다. 관광산업이 주업으로 수도 호니아라는 크루즈기항지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남태평양의 낙원이 하루아침에 강대국 각축전의 무대가 된 것은 현 마나세 소가바레 총리 정권의 친중적 행보에서 기인한다.
소가바레 총리는 2019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면서 줄곧 친중적 행보를 보여 왔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78년 독립한 솔로몬제도는 형식상으로는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국가원수인 영연방 국가다. 그럼에도 친중 노선을 걷는 것은 결국 경제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관광산업이 무너지자 중국으로부터 경제원조가 더 필요하게 된 것이 이번 안보협정 체결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그 틈을 이용했다. 중국이 아프리카 홍해 연안의 지부티에 군사기지를 구축하는 방식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경제원조를 하다 자국민이나 자국기업 사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파견하고 이윽고 군사기지를 만드는 방식이다. 중국은 적어도 하와이 서쪽의 태평양에서만은 자국이 미국 이상의 힘의 우위를 가져야 한다는 '원대한' 꿈(중국몽)을 갖고 있다. 미국, 호주, 일본 나아가 프랑스 등 태평양에서 나름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는 국가들은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자 먼저 미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
미국은 중국과 솔로몬제도가 안보협정에 중국이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지 않다고 밝힌데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안보협정 체결이 발표된 후 브리핑에서 "포괄적인 협정의 특성상 솔로몬제도에 중국군이 배치될 가능성은 열려있다"며 "(안보협정은) 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해치고 불미스러운 선례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일행을 이번 주말 솔로몬제도로 급파할 예정이다. NSC는 캠벨 조정관의 솔로몬제도 방문과 관련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파트너십 강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은 소가바레 총리를 만나 안보협정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안보협정 파기까지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에 대한 대가로 경제원조와 안보우산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피지 방문 중 호니아라에 대사관을 다시 개설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만약 미국의 설득에 소가바레 총리가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정권교체도 불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솔로몬제도가 뚫리면 이웃한 바누아투도 흔들리게 된다. 특히 경계하는 것은 미국 하와이에서 마셜제도-미크로네시아-괌으로 연결되는 미국의 태평양 구축선이 위협받는 일이다. 더군다나 중국은 마셜제도 바로 밑의 키리바시까지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솔로몬제도와 키리바시는 미국에게 남지나해에서 중국이 벌이는 불법적 군사기지 건설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지닌다. 미국으로선 결코 괌 뒷마당에 중국이 군사적 교두보를 확보하게 방치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이 그래도 이러한 미국의 의지에 맞선다면, 무력충돌은 불가피하다.
◇호주
이번 안보협정에서 가장 당황한 나라는 호주다. 호주는 중국과 솔로몬제도간 협정 타결 기미가 보이자 국제개발·태평양 장관을 호니아라에 보내 협정을 맺지 말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소가바레 총리는 중국의 군사기지 건설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요구를 거절했다. 솔로몬제도를 비롯해 태평양 섬나라들에게 호주라는 존재는 절대적이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사실상 보호자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태평양 패밀리'(Th Pacific Family)라는 외교적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태평양 섬나라들이 자연재해나 국내적 소요가 발생할 때 호주는 구호팀이나 군대를 파견해 해결해줬다. 작년 11월에만 해도 대만과 단교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되자 호주는 경찰병력을 파견해 안정화시켰다. 호주가 '우리는 한 가족이다'라며 솔로몬제도를 달래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작용하는 것이다.
호주는 현재 반(反)중노선의 선봉에 서있다. 정확히 말하면 중국 공산당 정권의 패권적 외교와 위구르족 인권탄압 등에 대해 미국과 함께 목소리를 높여온 것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 국제사회가 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한 첫 국가도 호주였다. 그러자 중국은 호주산 와인, 바다가재, 석탄 수입 등에 고율관세를 매기거나 막았다. 그러나 호주는 끄덕 안했다. 그만큼 호주는 인권, 국제규범, 통상관행에서 전범(典範)이 되고자 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안보협정이 체결됐으니 호주는 결코 솔로몬제도의 행보를 좌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호주는 미국 영국 등 앵글로색슨계 국가간 파이브아이즈(Five Eyes)라는 정보공유협정을 맺고 있고, 쿼드(Quad)와 오커스(AUKUS, 호주-영국-미국 안보동맹)로 이중삼중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일본과 프랑스
일본과 프랑스도 중국과 솔로몬제도간 안보협정을 예의주시 중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솔로몬제도를 침공해 2년여 지배한 적도 있다. 소수지만 일본인 후예도 살고 있다. 오가사와라제도와 솔로몬제도는 거리는 좀 떨어져 있지만, 일본이 태평양으로 진출할 때 연결되는 고리다. 일본은 중국을 제1열도선에서 봉쇄하는 전략을 구사 중이다. 그런데 솔로몬제도에 중국 군대가 파병된다면 일본은 뒤통수를 내주는 꼴이 된다. 일본도 안보협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동맹인 미국과 보조를 함께 하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프랑스 또한 은근히 긴장할 수밖에 없는 형세다. 어쩌면 가장 긴장해야 할 국가인지 모른다. 위치상 솔로몬제도는 미국, 호주, 일본보다도 프랑스 누벨칼레도니와 더 가깝다. 프랑스는 현재 대선 2차 투표가 진행되는 과정이어서 외교적 대응을 할 겨를이 없겠지만, 사태를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이웃에 중국 군함이 드나들고 중국 군용기가 뜨고 내린다면 평화의 섬 누벨칼레도니는 불안해진다. 특히 누벨칼레도니에는 상당수의 프랑스 본국인들이 산다. 27만여명의 인구 가운데 약 30%인 8만여명이 프랑스인들이다. 물론 공용어도 프랑스어다. 주목할 점은 누벨칼레도니가 전기차 배터리에 없어서는 안 될 니켈의 세계적 매장지라는 점이다. 세계 부존량의 약 10%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누벨칼레도니는 프랑스가 꼭 지켜야 할 영토다. 대선 후 프랑스도 중국과 솔로몬제도간 안보협정에 대응하는 행보를 보일 것이 확실하다.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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