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로 우크라이나 침공 한달
나토, 핵사용 우려 강력 제기
이상주의 패권 '민족'에 한계
러는 쇠퇴, 중공 견제가 과제
나토, 핵사용 우려 강력 제기
이상주의 패권 '민족'에 한계
러는 쇠퇴, 중공 견제가 과제
![[이규화의 지리각각] 러시아가 침략했는데 왜 미국을 원망하나](http://contents.dt.co.kr/images/202203/2022032502109969660001[1].jpg "[이규화의 지리각각] 러시아가 침략했는데 왜 미국을 원망하나")
러시아 침공 한 달을 맞아 24일(현지시간) 나토, EU(유럽연합), G7 정상들이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정상들은 러시아와 인접한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에 4개 전투단을 배치하는 데 합의하고 중국을 향해서는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가 위협하고 있는 핵무력 사용에 대응한 준비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주일이면 수도 키이우(키에프)를 점령하고 전쟁을 끝낼 것으로 예상했던 러시아는 전황이 여의치 않자 당황해 하고 있다. 군수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통신과 통합 작전도 이뤄지지 않는 등 고전 중이다. 일부 점령지에서 러시아군이 패퇴하고 전의를 상실한 러시아군이 전장을 이탈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초조해진 러시아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국 정보당국의 분석도 나왔다. 브뤼셀에 모인 나토와 G7 정상들은 이 점에 주목하면서 러시아에 엄중 경고를 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대비해 비상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푸틴 대통령이 고전 끝에 소형 전술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러시아가 만약 핵을 사용한다면 미국은 개입도 불사할 움직임이다. NYT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주도로 구성된 '타이거팀'(Tiger Team)이 핵무기를 비롯한 러시아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에 대비한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아직까지는 미국이 거리를 두고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핵을 사용한다면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는 설명이다. 미국이 이끄는 나토 역시 마찬가지다. 나토의 유럽 주축국인 영국 프랑스 역시 러시아의 핵 사용에 대해 매우 강경한 경고를 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이 지금 어디로 튈지 모를 형국이다. 제3차 세계대전의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여기서 21세기 백주(白晝)에 어떻게 이렇게 뻔뻔하고 모멸적인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록 강제력은 없지만, 국제법은 모든 침략전쟁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아무리 숭고한 의의를 갖는다 해도 불법성은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자국(自國)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푸틴에게 면죄부는 천부당 만부당이다. 수많은 인명 살상과 도시 파괴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없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전쟁의 전체 책임이 100이라면 푸틴의 책임은 아마 95%는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5%의 책임과 원망은 어디 몫일까. 이웃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웃의 적들을 끌어들여 시끄럽게 파티를 열고, 그것도 모자라 욕까지 해댄다면 그 이웃은 기분이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언짢은 데서 나아가 불안해 할 것이다. 이런 일이 계속 된다면 웬만해선 이웃 간 싸움이 아니 날 수가 없다. 그러니까 푸틴은 층간소음에 화가 치밀어 윗집에 올라가 문을 박차고 이웃을 폭행한, 난폭한 아랫집 사람쯤으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층 집에 파티를 열라고 종용한 든든한 '빽'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엉클 쌤' 미국이다. 따라서 5%에서 절반 정도는 쌤 아저씨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미국 이상주의 외교정책의 한계
"용감한 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와 민주주의 시민입니다. 러시아가 여러분의 나라에 간섭하는 것을 막아내야 합니다. 미국은 여러분 편입니다." 2014년 3월 지금은 고인이 된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의원단을 이끌고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수만 명의 군중 앞에서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켰다. 이때는 친러시아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EU와의 제휴협정을 포기하자 대규모 반정부 시위(마이단 혁명)가 한창이던 때였다. 결국 야누코비치 정부 전복시위는 성공했고 그는 러시아로 탈출했다.
이처럼 네오콘(공화당 신보수주의자)이나 민주당 진보주의자들 할 것 없이 미국의 엘리트들에겐 미국의 가치 즉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세계에 확산하는 데에 열정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1992년 소련이 해체된 후 유일 슈퍼파워가 된 미국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자유주의적 이상주의가 더욱 강한 기조를 띨 수밖에 없었다. 이상주의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등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반민주, 권위주의, 독재, 반인권 국가를 힘을 동원해 압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이다. 클린턴, 조지 W.부시, 오바마와 현 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외교정책은 이 기조를 따랐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소말리아 시리아 등 많은 곳에서 실패했다. 수 조 달러를 투입하고 수천 명의 병사를 잃었지만 얻은 것이라곤 여전히 원리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이 득세하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땅이다. 자유와 정의라는 건국이념으로 출발한 미국이 이상주의를 외교정책으로 삼은 것은 생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외교정책이 투사되는 국가의 국내 사정과 민족주의적 정서를 간과하는 우를 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도 미국이 나토의 동진(東進)과 민족적 배경을 무시한 우크라의 서구화를 일방적으로 촉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지정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원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들이 이구동성 지적하는 것은 미국의 외교정책, 최강대국 미국의 세계전략 실패다. 지나친 자만에 더해 힘이 투사되는 국가의 민족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무시함으로써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현실주의 지정학의 대가들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이상주의 외교정책의 전통을 잇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에 이상주의적 외교정책의 맹점에 빠지지 말고 현실주의적 접근을 할 것을 조언한다.
◇현실주의 지정학 대가들의 조언
존 J.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최근 '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지 기고에서 미국이 이끄는 나토의 동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러시아로서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중국이 캐나다, 멕시코와 동맹을 맺는 것을 미국이 좌시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고 했다.
러시아로서는 1999년 체코 헝가리 폴란드에 이어 2004년 루마니아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3국이 나토에 가입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으나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만큼은 나토 가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우크라이나에 대해선 민족적 문화적 친밀도와 동족 관념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등을 돌리고 서방과 손을 잡는 데에 분노가 폭발한 것이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스티븐 M. 월트 하버드대 교수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일찌감치 예견했다. 그는 '미국 외교의 대전략'(The Hell of Good Intentions)에서 "나토가 동유럽으로 확장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며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정책은 당초 의도와는 달리 민주주의 확산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미국 우위를 약화시켰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대러시아, 대중동 확산 및 개입정책에 '한눈팔 동안' 중국이 부상했음을 그 반례로 들었다. 월트 교수는 탈냉전기 30년간 미국 외교의 실패는 자유주의 패권이라는 그릇된 대전략을 채택한 필연적 결과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왜 미국 엘리트들은 그런 전략을 고수해왔는가. 월트 교수는 자유주의 패권에 대한 미국 외교정책 커뮤니티의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자유주의 패권이 미국과 나머지 세계를 위한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처럼 생리적으로 미국인이라면 자유와 정의를 앞세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단, 여기서 월트 교수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이는데, 그런 정책이 그들 자신들에게도 이득이 되어왔다는 사실이다. 자유주의 이상주의 패권정책은 이들 외교안보 기득권층(블롭 the Blob)에게 권력과 지위를 보장했다는 것이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The Great Delusion)에서 자유주의 이상주의 외교정책의 바탕에는 자유주의 국가들로만 세계가 이뤄질 때 평화롭고 안전해질 수 있다는 '민주주의 평화론'이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는 실패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자유주의 이론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에는 자유와 민주주의만 있는 게 아니다. 자유주의 이상주의가 다른 나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민족주의와 현실주의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고 특정집단의 구성원이어서 자국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에 반발하는 속성이 있다고 본다. 독재자 밑에서도 배가 부르면 만족해하는 사회가 있기 마련이다. 러시아와 중공이 그 좋은 예다. 따라서 자유주의 이상주의 외교정책자들은 자유주의와 다른 두 이념, 즉 민족주의 및 현실주의 간의 차이를 분명히 알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 외교전략 타깃은 러시아가 아니라 중공
미어샤이머 교수는 공격적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이제 미국은 자유주의적 이상주의 외교정책을 버리고 현실주의에 입각해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고 봉쇄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러시아는 쇠퇴 중이고 지역의 패권국도 될 가망성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러시아에 힘을 소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월트 교수도 같은 생각이다. 미국이 유럽과 중동에 힘을 집중하는 동안 중국의 부상이 이뤄진 점을 반성하라고 한다. 월트 교수 역시 향후 미국의 외교정책은 강력한 현실주의에 입각해 중공에 대한 전략적 견제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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