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식량 걱정 중국이 초강대국 꿈꾼다고?](http://contents.dt.co.kr/images/202202/2022021102109969660001[1].jpg "[이규화의 지리각각] 식량 걱정 중국이 초강대국 꿈꾼다고?")
"중국의 현재 경작 가능한 땅은 2억5000만 에이커(약 100만㎢)로 10억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 미국의 경우는 인구 2억3000만 명에 경작지는 4억 에이커다. 2000년이 되면 중국의 인구는 2억 더 늘어날 텐데 식량수입에 의존하지 않고도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 식량을 수입하게 되면 국제수지와 국가전략에 타격을 받게 된다."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가 34년 전 '강대국의 흥망'에서 중국의 식량 문제를 제기한 이후 중국의 식량 사정은 더 악화됐다. 중국이 발표하는 통계와 세계식량농업기구(FAO) 자료를 종합하면 현재 중국의 경작지는 1억 7500만~2억 에이커(78만~81만㎢)로 추산된다. 인구가 4억 이상 늘어나 14억1000만 명(중국 당국 발표)인데 경작지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도시화 산업화 사막화로 인한 결과다.
반면 미국은 인구가 1억3500만 명 증가한 3억3500명이지만 경작지 변화가 거의 없다. 중국은 낮은 1인당 영양(음식)섭취량을 감수하며 2003년까지는 그럭저럭 식량을 자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세계 최대 곡물 수입국이다. 식량자급률은 85%에 그친다. 중국인이 많이 먹는 돼지고기 사육을 위한 콩은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글로벌식량안보지수'를 보면 중국은 35위(2019년 기준, 한국은 29위)에 그친다. 미국은 싱가포르와 아이슬랜드를 제외하면 실질적 1위다. 중국 국토는 세계 지표면의 6%를 점하는데 인구는 17.5%나 된다. 단순히 국토면적과 인구 규모를 들여다봐도 중국은 근본적인 식량 문제를 안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케네디 교수는 중국이 초강대국, 아니 강대국이 되기 위한 조건에서 결정적 결함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도 시진핑 중국공산당 주석은 패권국화로 나아가고 있다. 오는 10월 공산당 대회에서 10년 집권 후 퇴임 관례를 깨고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 경제, 군사, 사회 방략을 구사 중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중국 국가(인민해방군가)가 울려 퍼지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도 그 수단의 하나다. 시진핑 영도 아래 중국이 세계에 우뚝서는 모습을 보일 수만 있다면 올림픽에서 반칙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식량 확보 트라우마
중국은 지리적 기후적 조건이 결코 좋은 땅이 아니다. 현재 국토의 17%가량인 170만㎢가 사막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홍수와 가뭄, 태풍, 한파 피해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수확 감소로 중국은 작년 옥수수 수입량을 전년 대비 3배 이상( 2600만톤) 늘려야 했다. 중국 정치에서 식량의 확보는 그 무엇보다 중대한 과제다. 고대 한, 수, 당나라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운하와 관개수로를 만들어온 것도 다 '백성의 호구'(식량)을 책임지지 못한 정권은 붕괴했기 때문이다. 중국사의 수많은 민란과 반란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에서 비롯됐다.
중국 공산당은 올해도 '국가 전략적 문제'로 3농(농촌 농민 농업)의 발전을 내세우며 식량의 안정적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앙농촌공작회의는 시진핑 주석이 직접 주재한다. 작년부터 중국 공산당은 아파트와 공장 건설 등을 위한 농지 전용을 더 엄격히 규제하기 시작했다. 중국 경작지의 감소는 사막화 등 자연재해에도 기인하지만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농지 전용이 가장 큰 원인이다. 게다가 현재 경작지의 20%는 오염이 심각한 상황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특히 식량안보를 직접 챙기는 배경에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다. 마오쩌둥이 벌인 소위 공업생산 배가 운동인 '대약진운동'으로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최소 3000만 명에서 최대 7000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공산당은 부인하지만 1998년 중앙당교가 펴낸 중대사(史)에는 이 기간 비정상적 원인으로 4000만 명의 인구가 감소했다는 기록이 있다. 공산당도 공식적으로는 1000만 명 정도가 아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공급망 재편, 식량 국수주의 상존
식량 확보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엔 더욱 더 사활적 문제다. 특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공급사슬(supply chain)의 병목으로 인해 해외로부터 식량수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국가가 곡물수입국 세계1위 중국이다.
최근 쌀 수출 1위국인 인도가 쌀 수출을 중단했고 캄보디아도 따랐다.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급속 확산하면서 쌀 수출 2, 3위인 태국과 베트남도 쌀 수출을 중단했다. 국제 쌀값이 급등하자 당시 국내서도 쌀값 앙등을 겪은 바 있다.
전 지구적으로는 지구의 농업생산력이 100억 명을 부양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아직 20억명의 여유가 있다. 문제는 인구 및 경작지와 농업기술의 편재(偏在)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현재 경작 가능 면적의 3분의 2 정도만 경지로 쓰고 있다. 미국의 농업생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은 얼마든지 식량 증산이 가능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기후와 토양 조건도 매우 뛰어나다. 중국은 5000년을 경작해온 지친 땅이지만 미국은 고작해야 200년도 안 된 '신선한' 땅이다.
미국이 잉여농산물로 넘치기 때문에 세계 최대 식량수입국 중국은 평화 시에는 엄청난 바잉파워를 갖는다. 중국은 미국의 농산물 최대 구매자로서 '갑' 노릇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미국은 을일 수밖에 없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무역보복을 가하면서 한해 1억톤의 콩을 수입하라고 압박한 것만 봐도, 미국에게 과잉 생산된 농산물 처리가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전쟁 시에는 이 상황이 완전 거꾸로 바뀐다. 식량은 무기가 된다. 적에게 '군량미'를 수출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전쟁으로 글로벌 물류망이 무너지기 때문에 제3국으로부터 식량을 수입할 수도 없다. 전시에는 각국이 식량을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식량 국수주의가 극에 달하는 것이다.
◇식량 자급 없인 중국몽은 헛꿈
지난해 11월 중국 당국이 식량을 아끼고 비축해 두라는 말 한마디에 중국은 난리가 났었다.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행동을 강화하며 대만을 향해 침공도 불사하겠다는 우회적 경고 메시지 성격이 짙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무너진 공급망으로 인해 재부상한 식량위기 가능성에,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놀란 데서 나왔다는 해석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작년부터 세계 식량가격지수가 급등하는 등 향후 1~2년 내 세계 식량 수급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었던 참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이 사재기에 나서 대형마트와 시장에서 쌀, 밀가루, 콩 등이 동났다. 심지어 배추 한 단을 서로 차지하려고 난투극까지 벌였다. 중국은 경지 면적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문제지만 절대적으로 농업생산성이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다.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중국은 제 아무리 경제력과 국방력이라는 하드파워를 갖춘다 해도 미국을 따라갈 수도, 패권국화에 성공할 수도 없다.
세계적 지정학자 조지 프리드먼은 저서 '100년 후'에서 중국은 결코 패권국이 될 수 없다고 단정했다. 중국은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 속에서 성장한 국가다. 2001년 미국이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킴으로써 비로소 중국은 날개를 달 수 있었다. 중국은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가이고, 그 무역의 핵심은 생명줄인 식량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일이다. 식량을 자급할 수 없는 국가가 어떻게 초강대국이 될 수 있는가. "노"라는 것이 역사가 방증한다. 중국이 초강대국이 된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것이 국제정치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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